발렌타인 테러 구제 작전 (2)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기록 시작하겠습니다. 구제 대상 건 2. 예성1동 성당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

참여 요원은 홍다현, 이효신, 그리고 박세민.

구비 물품은 방독 마스크 5개입 10세트, 미사 참여를 위한 미사보 2매와 묵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발행본 성경 1부, 요원 이효신의 트리거 수행을 위한 물품 1종, 비상 탈출용 소형 망치 2대, 유사시를 대비한 전기충격기 1대입니다.


현재 시각은 오전 6시 19분입니다. 성당 진입 시작하겠습니다.”


다현이 성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와 효신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겨울의 새벽 공기는 차갑다 못해 스산했다.


-


“안녕하세요, 자매님.”


다현이 들어가자 입구 근처에 앉아 있던 세 명의 사람 중 한 명이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일어난 사람은 젊은 여자였고, 앉아 있는 두 명은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어떻게 오셨나요?” 젊은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


다현이 공손히 목례한 뒤 말했다. “안녕하세요 자매님. 저희가 어제 지방에서 서울로 출장을 와서요, 오늘 하루는 서울에서 미사를 참여해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그 차분하고 나긋한 말투에는 의심할 만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여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이런 꼭두새벽부터 관광을 하겠다고 성당을 찾는 사람들은 없을 터였다. “아, 그러시군요. 여기 주보와 성가집 챙겨서 들어가시면 됩니다.”


뒤편에 앉아 있던 다른 여성 한 명이 방문자 명단으로 추정되는 종이를 꺼내며 물었다. “자매님께서는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나와 효신이 말없이 다현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소리 없는 긴장이 우리의 어깨를 짓눌렀다.


다현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홍다현 율리아나입니다.”


“홍다현……. 율리아나 자매님.” 여성이 다현의 말을 따라 중얼거리며 이름을 받아 적었다.


이윽고 고개를 든 그녀가 나를 향해 물었다. “뒤편에 계신 형제님께서는?”


나는 태연함을 가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현이 적어 준 쪽지에 나의 세례명이 있었다.


내 세례명은,


“박세민 안토니오입니다.”


틀리지 않았겠지. 나는 말을 마친 후 곁눈질로 다현을 보았다. 다현은 여전히 미동 없이 옅은 미소를 드리운 상태였다.


눈앞의 삼십 대 여성이 내 얼굴과 종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내 이름을 방문자 명단에 적어 넣었다.


“자매님께서는요?”


효신은 몇 초간 말이 없었다. 펜을 쥐고 기다리고 있던 여성은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고개를 들었다. 젊은 여성, 방문자 명단을 작성하고 있는 여성, 그 뒤편에 앉은 미사보 쓴 여성을 순서대로 일별한 효신은 그제야 느릿하게 입을 떼었다. 새벽녘 공기만큼 차디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효신 바르바토스.”


그러자 펜을 쥔 여성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효신을 보는 눈에 의아함이 서려 있었다.


곁에 서 있던 젊은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온기가 사라진 눈빛으로 효신을 빤히 응시했다.


나와 다현은 당황해서 효신을 힐끔거렸다. 이미 세례를 받은 바 있는 효신이 실수를 할 리는 없었다. 효신은 움츠러들지도 않은 채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뒤편에 앉아 있는 미사보를 쓴 여성만이 표정 변화가 없었다. 처음 효신을 보고 있던 자애로운 눈길 그대로 이곳을 바라보던 그녀는, 동료들이 아무런 말이 없자 그제야 영문을 몰라 자신 앞의 다른 여성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들을 서늘한 눈매로 바라보던 효신이, 돌연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해요. 발음이 비슷한 다른 이름이랑 헷갈렸어요. 저는 이효신 바르바라입니다.”


방금 전까지의 싸늘한 분위기는 없었던 것마냥 순식간에 녹여 버리는 무구한 웃음이었다. 이제 겨우 대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소녀가 제 나이대로 보이는 표정을 짓자, 뒤늦게나마 여성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바르바라 자매님이셨군요. 세 분 모두 환영합니다.”


젊은 여성이 팔을 뻗어 본당 입구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효신이 돌연 멈추어섰다. 그러고선 대리석으로 된 작은 대야에 있는 물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찍어 성호를 그었다.


저게 성수구나. 나와 다현은 시선을 교환한 후 효신을 따라 성수를 찍어 성호를 그었다.

우리의 뒤편에 꽂히는 시선이 선명히 느껴졌다.


-


본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향이 풍겼다.


“이건 무슨 향이지? 장미 오일 같기도 하고.”


효신이 적당한 뒷자리에 자리를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장미 향이 맞을 거야. 성모의 상징이 장미였던가, 그랬던 걸로 기억해.”


우리가 먼저 자리에 앉았고, 몇 분 후 다현이 곁에 와서 앉았다. 다현과 효신이 작은 파우치에서 흰 미사보를 꺼내 머리에 둘러썼다.


기도하는 척 손을 모은 효신이 낮게 속삭였다. “언니, 탈출구 확보했어?”


다현이 마찬가지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기도문을 외는 척 속삭였다.


“응. 주 출입구를 열어 두면 금방 알아차릴 것 같아서, 보조 출입구 두 군데 잠금장치 안에 솜 끼워 뒀어. 잠긴 것처럼 보여도 끝까지 잠기지는 않게. 그리고 혹시 몰라서 고해성사실 뒤편 창문에도 똑같이 해 뒀어.”


내가 물었다. “효신아. 아까 세례명은 뭐였어? 이상한 거라도 찾았어?”


그러자 효신이 짧게나마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있었지, 이상한 거. 조금 더 지켜보고 확실해지면 말할게.”


효신이 말을 마치자마자 파이프오르간 반주와 함께 성가가 울려 퍼졌다. 사제와 그 뒤를 따르는 향로를 든 복사가 엄숙한 걸음으로 중앙 단에 올랐다. 은은한 장미 향을 가로지르며 펄럭이는 넓은 옷깃이 우리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긴 미사의 시작이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언니, 오빠, 주위 사람들한테 이상한 거 없는지 잘 봐. 성경이 실은 성경이 아니라거나, 십자가가 우리가 아는 십자가랑 좀 다르게 생겼다거나.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묵주도 잘 봐. 그런 데에다 장난질을 쳐 놨을 수도 있으니까.


성스러운 기도문 사이사이로 우리의 낮고 불경스러운 속삭임이 오갔다. 성가의 화음 사이사이에 목소리를 숨기며 우리는 작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조금 전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했던 세 명의 여자를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폐쇄하기 딱 좋은 위치이기도 했고, 효신이 세례명을 말할 때 보였던 이상한 반응도 거슬렸다.

사제가 청하자 독서자가 단상에 올랐다. 입구에 앉아 있던 세 명의 여성 중, 효신을 그저 바라볼 뿐 별다른 날선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그 사람이다.


작은 성호를 그은 그녀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댄다. 듣기 좋은 낭랑한 목소리가 본당 안에 울려 퍼진다.


“창세기 6장 5절부터 23절까지입니다.”


우리 셋은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그녀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효신이 ‘이상하다’고 말한 것은 저 사람을 두고 한 소리였을까? 아니면 자신에게 유독 과민한 듯 반응하던 다른 두 사람을 두고 한 소리였을까?


너는 전나무로 방주 한 척을 만들어라. 그 방주에 작은 방들을 만들고,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여라……


나는 그녀의 차림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뜯어보았다.

흰 미사보. 단정한 남색의 블라우스. 검은 구두. 별다른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새도 제 종류대로, 짐승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것들도 제 종류대로, 한 쌍씩 너에게로 와서 살아남게 하여라.


독서는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나는 집중하는 척 손을 모은 채 곁눈질로 효신과 다현을 슬쩍 바라보았다. 다현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그러나 별다른 것은 찾아내지 못한 듯했다.


그런데 효신의 표정은 조금 이상했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이 순간 이후부터, 불신자들의 땅에 발을 들이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녀가 독서를 마쳤고, 신자들이 화답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뒤이어 사제가 독서대로 향한다. 향로를 든 복사가 그 뒤를 따른다.


사제가 복음을 봉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효신은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효신은 얼굴을 성경에 묻고 정신없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종이가 팔락, 팔락 하며 넘어가는 소리에 근처의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댔다. 다현이 효신의 어깨를 살며시 건드렸다.


“효신-.”


동시에 효신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낯빛이 파리하게 변해 있었다.


효신의 벌어진 입 사이로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그렇지만 충분히 들릴 만큼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찾은 것 같아.”


“뭐?”


“‘만물의 눈’ 찾은 것 같다고. 아니, 찾았어. 저 사람이야.”


우리는 몸을 효신 가까이 숙인다.


“왜? 묵주도 제대로고, 미사보도 제대로고, 겉으로 봐서는 이상한 게 없는데.”


다현의 말에 효신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여 내뱉었다. 때맞춰 복음 강독을 끝낸 사제의 목소리가 앰프를 타고 우리의 목소리를 덮어 준 덕에 다행히 그 말은 주위로 들리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다시 적막이 흐르고 파이프 오르간의 반주가 시작될 때, 우리 모두의 얼굴은 효신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방금 찾아봤어. 창세기 6장, 22절까지밖에 없어.

창세기에 6장 23절 같은 건 없다고.”


효신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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