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ITA 최고위원회에서 알립니다. 지난 2월 14일 오전 7시 경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에서 발생한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가 구제 대상 건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현재 사전 조사가 마무리되었으며, 작전 수행을 위한 지침서가 배포되었으니 본부 수신함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알림을 수신한 이후 48시간 이내에 작전을 개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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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연합본부에는 ‘타임워커를 세 명 이상 모으고 싶다면 홍다현 한 명만 부르면 된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홍다현이 가는 곳이라면 항상 왼쪽에는 이효신, 오른쪽에는 박세민이 따라붙는다고.
효신은 처음 입단했을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다현을 잘 따랐다. 다현을 보면 이제는 곁을 떠난 친언니가 생각난다고 했다.
효신의 친언니는 효신이 연합에 들어오기 일 년 전쯤 병으로 사망했다고 들었다. 타임워커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막지 못하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에 그 말은 제법 의아하게 들렸다. 시간을 되돌려 언니를 일찍 병원에 데려간다거나 하면 되지 않나?
그런 우리의 의문을 읽어낸 듯 효신은 말했었다. “당연히 수도 없이 시간을 돌려 봤지. 그런데 안 됐어. 안 막아지더라. 진단명 하나를 막으면 다른 진단명이 생겨. 검진 당일까지는 깨끗한데, 언니가 죽었던 날이 가까워지면 귀신같이 없었던 병이 발병해. 꼭 죽을 운명이었던 것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언니 이야기를 할 때의 효신은 평소의 활발한 성격을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울적한 표정으로 변하곤 했으니까.
아무튼간에 언니를 잃고 마음 둘 곳이 없어진 채 연합에 들어온 효신은, 언니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또 다른 ‘언니’, 다현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가족보다도 더 오래 붙어 지내는 사이였으니 효신이 다현에게 크게 의지하며 다현을 졸졸 따라다니게 된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경우가 조금 달랐다. 나와 다현만이 공유하는 그 이유 때문이다.
어쨌든 나나 효신이나 둘 다 언제나 다현과 무조건 함께한다는 점은 똑같았다.
이번 작전도 마찬가지였다. 작전에 함께할 사람을 고르라는 질문에 효신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이름을 외쳤고, 다현은 예상했다는 듯 귀찮음이 묻어나는 얼굴로 자신도 이번 작전에 따라가겠노라 말했다.
그렇게 나와 다현은 효신의 주도 하에 작전에 사용할 세례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종의 코드네임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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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타……. 율리아나……. 마르시아……. 아, 율리아나 어때? 언니 생일이랑 제일 가깝고. 언니랑 뭔가 잘 어울린다.”
다현의 세례명을 어렵지 않게 골라낸 효신이 내 쪽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 세민 오빠는 생일이 언제였지?”
“원래는 외웠던 것처럼 말하지 마. 기대도 안 했어.”
“아니, 6월이었던 건 기억해. 다현 언니랑 비슷했잖아. 말하지 말아 봐! 내가 맞힐 테니까.”
효신이 나를 빤히 보더니 내뱉었다. “....... 14일?”
“아니야.”
“아, 19일!”
“됐다, 비켜라 그냥.” 내가 손짓하자 효신이 모니터 앞을 막아세웠다.
“아 진짜 기억났어! 13일. 맞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효신이 기세등등하게 모니터를 가리킨다.
“오빠 생일 딱 있네. 안토니오 하자. 많이 쓰는 이름이라 자연스럽고 좋네.”
세례명을 받아 적던 다현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은 정말 들으면 딱 알아? 이게 세례명인지 아닌지?”
효신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답했다. “들으면 딱 안다기보다……. 세례명으로 많이 쓰이는 이름들이 있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생뚱맞은 이름이 튀어나오면 좀 의아해 보이긴 하지. 우리도 똑같이 한자로 된 두세 글자여도 이게 한국식 이름인지 중국식 이름인지 감이 오잖아. 딱 그런 느낌?”
그때 별안간 방문이 열렸다. 연수 형이 흐느적 방 안으로 들어오며 냅다 말했다.
“야 세민아, 너 이번 작전 꼭 가야 해?”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눈은 동그래졌고, 효신의 눈은 가느다래졌다.
“왜요?” 나와 효신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
“해솔이 그날 다른 일 있대서 자리 비운대. 그럼 나 데이비드 씨랑 단둘이 있어야 하잖아.”
김이 탁 풀린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효신이 턱을 괸 채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금 그걸 이유라고 대는 거예요? 내가 같이 갈 사람 정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약속했잖아요.”
“아니, 그래도. 데이비드 씨는 좀 어렵단 말이야.”
답지 않게 군소리를 하는 연수 형을 보며 내가 말했다.
“리 치앙 아저씨도 그때 한국 들른다던데. 치앙 아저씨한테 같이 있어 달라고 할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아니, 그거나 그거나.” 연수 형이 힘없이 소파에 널브러졌다.
항상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모습의 연수 형이 세상에서 딱 하나 어려워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중년 남성과 단둘이 남는 자리였다. 연수 형은 리 치앙 씨도, 데이비드 카슨도 어려워했다. 자신보다 훨씬 까마득한 나이의 사람들이 우르르 모인 자리에서는 목소리를 잘만 내면서, 오히려 아버지뻘의 남성과 딱 둘만 있게 되면 이상하게 긴장을 했다.
“그 나이대 아저씨들은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랑 교류한 경험이 많이 없어서 그런가?”
소파에 드러누워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는 연수 형을 보며 나와 다현은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도 자세한 사정은 몰랐다. 그저 아버지가 계시지 않고, 이른 나이에 떠나보냈거니 짐작만 할 뿐이었다.
“갑자기 마음 바꿔서 안 오신다고 했으면 좋겠네.”
그러나 연수 형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데이비드 씨를 태운 유나이티드 항공기는 인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그것도 원래 데이비드 씨가 도착하겠다고 말한 시간보다 하루 더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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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들, 잘 지냈나?”
로비로 들어서며 데이비드 씨가 손을 흔들었다. 그 자신도 많은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데이비드 씨는 항상 우리를 ‘젊은 친구들’ 이라고 불렀다.
연수 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데이비드 씨의 포옹에 응하며 말했다.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은 몰랐어요. 비행기를 앞당기신 거예요? 급할 일도 아닌데.”
그가 하하 웃으며 연수 형의 어깨를 두드렸다. “간만에 한국에 올 생각을 하니 신이 어지간히 나야 말이지. ‘만물의 눈’ 소행이라기에 궁금함을 못 참았던 것도 있고.”
해솔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직 확실하진 않아요. 추측뿐이지.”
그런 해솔의 무뚝뚝함이야 하루 이틀 보는 게 아니라는 듯, 데이비드 씨는 자연스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보면 알겠지. 자, 그래서 모니터링실은 어디지?”
데이비드 씨의 도착이 예정보다 앞당겨지면서 우리의 작전도 예정보다 빨라지게 되었다.
“곧 봐, 오빠.”
“이따 봐.”
나란히 내게 인사를 건넨 효신과 다현은 트리거를 통해 먼저 과거로 사라졌다. 내 손을 잡고 있던 다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이후에, 나는 조용히 바깥으로 향했다.
우리 지부의 건물 뒤편에는 넓은 뜰 한가운데에 단층의 아주 자그마한 임시 주택이 놓여 있었다. 내가 트리거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연합에서 마련해 준 장소였다.
작전에 참여해야 할 때면 나는 이곳으로 와 문을 걸어잠그고 작전이 마무리될 때까지 조용히 숨어 있었다. 내 트리거를 위해 주변 사람들은 반경 1km 내로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었고, 내가 보이지 않는 동안 사람들은 내가 과거에 가 있으리라 생각할 것이었다.
문과 창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블라인드를 친 뒤 나는 방 한구석에 마련된 안락의자에 앉았다.
남들이 참여하는 작전은 백업을 통해 영상을 확인하지 않으면 전말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내가 참여하는 작전은 백업을 서지 않아도 모든 일을 알 수 있었다.
과거가 바뀌면, 바뀐 과거의 기억이 새롭게 머릿속 한켠에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다현이 데리고 다니는 과거의 내가 경험한 것들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머릿속에 순차적으로 쌓이게 된다. 마치 영화를 상영하듯이.
나는 눈을 감았다. 다현과 효신이 방금 막 나흘 전으로 갔으니, 나흘 전에 머무는 과거의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이제 슬슬 기억나기 시작할 것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쉰 나는 머릿속을 뒤져 새롭게 들어차는 기억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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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아, 일어나. 작전 가야 해.”
방에서 잠들어 있던 나를 다현이 흔들어 깨운다. 문 앞에서는 효신이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다.
“오빠 원래 밤낮 완전 바꿔서 생활하지 않아? 새벽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오늘 고생 좀 하겠네.”
효신이 나를 보며 킥킥 웃는다. 지금은 20XX년 2월 14일 새벽 5시 50분이다. 다현은 효신이 몸을 돌린 틈을 타 내게 쪽지를 건넨다.
나는 쪽지를 받아든다. 지금 눈앞에 있는 다현이 20XX년 2월 17일, 그러니까 4일 후의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과, 이번 작전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적힌 메모지였다.
이미 수도 없이 해 봐서 익숙한 상황이다. 미래의 내가 또 다른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나 보다, 하고 나는 덤덤히 생각한다.
쪽지를 눈으로 주욱 훑어본 뒤 주머니에 넣고 몸을 일으킨다.
새벽 미사는 아침 6시 30분에 시작한다고 했다. 아직 푸르스름한 어둠이 가시지 않은 도심에서 성당 건물에만 홀로 불이 밝혀져 있다. 예성1동 성당의 높게 솟은 지붕을 바라보며 다현이 기록 장치의 전원을 누른다.
“데이비드 씨, 그리고 연수 오빠. 잘 보이고 잘 들리시죠? 그러리라 믿겠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록 장치 너머에서 들려오는 답변은 없다. 그들은 미래에 있으니까.
다현이 짧게 숨을 내쉬며 차분한 음성으로 말한다.
“....... 기록 시작하겠습니다. 구제 대상 건 2. 예성1동 성당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
참여 요원은 홍다현, 이효신, 그리고 박세민.
구비 물품은 방독 마스크 5개입 10세트, 미사 참여를 위한 미사보 2매와 묵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발행본 성경 1부, 요원 이효신의 트리거 수행을 위한 물품 1종, 비상 탈출용 소형 망치 2대, 유사시를 대비한 전기충격기 1대입니다.
현재 시각은 오전 6시 19분입니다. 성당 진입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