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나는 ITA 한국 지부 소속의 요원이다.
그러나 나는 타임워커가 아니다.
연합에서 날아온 ‘신규 요원을 위한 편지’를 받아들었던 날, 내 시선을 가장 오래 붙들어둔 것은 가이드라인의 마지막 즈음에 있는 대목이었다.
ITA는 연합에 소속되지 않은 미허가 타임워커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타임워커가 아닌 자가 연합의 시설, 기물, 정보 등에 접근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위 두 항목을 위반할 시 ‘어스름의 시간’에 수감되는 형벌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어스름의 시간이 뭘까. 한국 지부 사람들과 조금 친해진 이후 슬며시 운을 띄워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스름의 시간’? 듣고 보니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게는 나도 몰라. 내가 들었던 건 거기 한 번 들어가면 제정신으로 못 나온다는 것 정도?”
“그거 어떤 특정한 시간대에 갇히는 거라던데. 가뜩이나 X같은 일이 벌어지는 시간대인데, 똑같은 일을 매번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수천 번 수만 번 겪다 보면 미친다던데.”
“거기 들어가면 존재도 기록도 싹 잊혀서 완전 없던 사람이 돼 버린다고 들은 것 같아. 근데 굳이 알아서 좋을 거 없어. 어차피 너랑은 상관없는 일 아니야? 거기 실제로 들어가는 사람 백 명 중에 한 명도 안 돼.”
상관없는 일이라니. 그 누구보다 상관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게다가 그 대목은 타임워커가 아닌 자가 연합에 ‘접근’했을 때의 형벌을 명시한 것이었다. 고작 접근에 대한 처벌이 그 정도인데, 타임워커가 아닌 자가 연합에 ‘가입’해서 일원 행세를 하다 들켰을 때의 처벌은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을 강도일 것이었다.
나에게 다른 불손한 목적이나 야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럴 만한 배포도 성정도 못 된다.
그럼에도 내가 ITA에 들어와 타임워커인 체하며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다현 때문이다.
-
다현과 나는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함께해 온 오랜 친구 사이다.
열여섯 살 겨울 우리는 큰 사고에 휘말릴 뻔했고, 그 사고에서 우리를 구해내며 다현은 자신의 타임워킹 능력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당시 이미 한국 지부에 소속되어 있던 연수 형은 한국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줄곧 모니터링하고 있었고, 자신이 기억하던 ‘그 사고’의 피해자 수보다 실제 피해자 수가 줄어들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면서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사고 이후 서너 달이 지났을 무렵 연수 형의 권유로 우리는 나란히 ITA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게 어느덧 구 년 전의 일이다. 연수 형이 열아홉 살, 우리가 열일곱 살이던 시절.
다현은 내가 없이는 연합에 들어올 수 없었다. 정확히는, 다현은 내가 없이는 타임워킹을 할 수 없었다.
다현의 트리거는 나였다. 내 손을 잡고 눈을 감는 것.
그런 다음 가고 싶은 시간대를 머릿속으로 간절히 떠올리는 것.
연합에 들어온 뒤 나는 내 트리거를 ‘반경 1km 내에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잠이 드는 것’ 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야만 타임워킹을 하는 척 보는 눈이 없는 곳으로 숨어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타임워킹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한 나름의 안배였다.
그러나 요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이상 작전에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참여해야 하는 작전에는 항상 다현이 자원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현재의 다현이 작전 시간대로 이동해서, 작전 시간대인 과거의 내게 미리 전후 사정을 귀띔하고 동행하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작전에 참여하는 다현은 현재의 다현이고, 작전에 참여하는 나는 그때 그 당시에 머물고 있는 과거의 나인 셈이다.
어차피 열일곱 살 이후의 나는 다현이 타임워커라는 사실도, 내가 연합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므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효신이 벼르고 있다고 했으니 다음 작전에는 어쩐지 내가 가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다음 작전 역시 ‘만물의 눈’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다는 예감 또한 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만물의 눈’이 이미 한국에 뿌리내린 지 제법 되었다는 뜻이야.
이 정도로 오래 심혈을 기울였다면, 청파대교는 아마 시작에 불과할 거야.
과연 그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사건으로부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월 14일, 또 다른 테러가 벌어졌다.
-
“중학생 여름방학도 한 달보다는 길 텐데.”
거실로 들어서며 연수 형이 볼멘소리를 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효신이 핀잔을 주었다.
“오빠 원래대로면 직장인 할 나이잖아요. 직장인한테 방학이 어디 있어요?”
“고3이라고 생각해요. 고3은 여름방학 없다시피 하니까.” 해솔이 거들었다.
“넌 고3 해 본 적 없잖아.” 연수 형이 퉁명스레 내뱉었다.
그러나 해솔은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형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열아홉 되자마자 들어왔다면서요.”
연수 형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아, 알았어 시끄러워. 얼른 브리핑이나 해 봐.”
태블릿을 들고 있던 효신이 화면을 TV와 연결했다. 몇 개의 뉴스 기사 헤드라인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예성1동 성당 의문의 집단 돌연사… 인명피해 상당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 범인은 오리무중
예성1동 성당 ‘발렌타인 테러’ 충격… 신자 40여 명 사망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니, 발렌타인 테러니 부르는 말들은 언론사마다 제각각인데. 핵심은 2월 14일에 발생했다는 거예요.” 효신이 화면을 넘겼다.
“2월 14일 오전 7시 경, 예성1동 성당에서 새벽미사를 진행 중이던 신자들이 별안간 의문의 집단 죽음을 맞이했어요. 사인은 유독성 가스에 의한 중독이라고 하는데, 직접 보면 알겠죠. 아직 발표된 건 없지만 무색무취의 가스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신자들이 가스가 풀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숨이 막히고 중독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니까 그제서야 뒤늦게 바깥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어 있어서 그대로 사망했대요. 119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요.”
“범인은?”
“그걸 아직 몰라요. 그때 미사가 진행되고 있던 성당의 본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테러가 아니라 사고사 아니냐고도 말해요.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효신이 평소의 쾌활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눈을 첨예하게 빛냈다.
“이건 ‘만물의 눈’ 소행 같아요. 아직 확신할 순 없지만. 범행 장소로 선택한 곳이 성당인데, 굳이 사람이 덜 몰리는 새벽 미사를 타겟으로 삼았어요. 자기네 신의 뜻에 따라 징벌은 하고 싶지만, 동시에 자기네 정체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셈이 빤히 보이지 않아요?”
해솔이 느릿하게 내뱉었다. “....... 연수 형 말이 맞았네요. 청파대교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게.”
연수 형은 태연히 말을 받았다. “뭐, 각오하고 있던 일이지. 이거 어제 일어난 일이었지? 지금 몇 시지?”
“오후 4시 21분이요.”
“하루 반나절이 지났네. 사전 조사관은 파견됐나?”
“그런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효신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데이비드 씨가 한국으로 오신대요. 이번 사건 백업을 자기도 같이 서고 싶대요.”
연수 형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그 양반이 왜?”
“‘만물의 눈’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저번에 이어서 연속으로 테러 대상이 한국이니까 뭔가 있는 것 같다고, 직접 와서 확인하고 싶다나?”
데이비드 카슨은 삼십 대 후반의 유쾌하고 능글맞은 남자였다. 미국 지부의 지부장이자 ITA 본부 최고위원회의 일원인 그는, 연수 형을 빼면 전 세계 ITA 지부장들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했다.
공교롭게도 본부에서 그의 별명은 ‘빅 브라더’ 였다. 전산망을 다루는 일과 해킹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그는 연합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으나 이제 와서는 어쩐지 ‘만물의 눈’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처럼 들리게 되어 버렸다.
“음, 데이비드 씨가 온다면 백업은 걱정 없긴 하겠네. 작전 참전은 누가 하지 그럼?”
연수 형이 지나가듯 던진 말에 효신이 내 쪽을 홱 돌아보았다. 그 눈길이 따가웠다.
“세민 오빠 슬슬 갈 때 안 됐나?”
나는 태연자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가라고 하면 가지.”
“백업 그만 서고 작전 좀 나가 이제.”
거침없는 여동생마냥 나무라는 효신의 말에 내가 멋쩍게 웃었다. 다현이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세민이는 트리거가 까다로우니까 그래. 특히 서울 같은 데서는 더 어렵잖아, 사람이 많아서.”
효신이 부루퉁한 얼굴이 되었다.
“나도 트리거 까다로운데? 내가 맨날,”
연수 형이 효신의 말을 가로막았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본부에서 누구 배정해 주는지 보고 정하자.”
이윽고 연수 형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세민아, 본부 수신함에 뭐 온 거 있어?”
“잠시만요.” 나는 태블릿을 열어 본부 수신함을 업데이트했다.
업데이트 중 …….
업데이트 완료. 모든 문서함이 최신 상태입니다.
“지침서 떴어?”
몇 초간 화면을 응시한 후 내가 답했다.
“....... 네, 떴네요.”
-
[예성1동 성당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 구제 작전 지침서]
본 문서는 20XX년 2월 14일 오전 7시 경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발생한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를 구제하기 위한 작전의 지침서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숙지하시어 작전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침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 연합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열람을 위해서는 2급 보안 코드의 입력이 필요합니다.
코드를 입력한 후 다음 장으로 진행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