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잠깐만요, 진짜 들이받자고요? 같이 바다로 뛰어들자고요?”
해솔이 황급히 외쳤지만 연수 형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엑셀을 밟았다. 차량이 전방에 멈춰선 차들을 제치고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갔다.
“형 미쳤어요? 바다로 뛰어들면 우리도 죽어요! 타임워킹이지 불사가 아니라고요!”
해솔이 조수석 손잡이를 움켜쥔 채 언성을 높였다.
연수 형이 아무렇지 않다는 투로 답했다. “죽기는? 여차하면 현재로 돌아가면 되잖아.”
해솔이 냅다 소리쳤다. “형이야 가능하겠죠! 트리거가 3초면 되니까! 저는 그게 안 된다고-.”
말이 끝맺어지기 전, 끼이익 소리를 내며 차량이 돌연 멈추어 섰다. 이마를 박을 뻔한 해솔이 치뜬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해솔이 무어라 항변하기 전, 연수 형이 손짓으로 해솔을 제지했다. 연수 형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다.
연수 형이 바라보는 곳에는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남루한 밤색 등산조끼를 걸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갓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연수 형이 말했다. “쫓아가자. 테이저 챙겨.”
그 말에 뒷좌석을 살피던 해솔이 당혹이 스민 목소리로 말했다.
“형. 테이저건 못 써요. 카트리지가 없어요.”
“뭐?” 연수 형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출발 전에 분명히 확인했잖아.”
“카트리지 보관함이 비어 있어요. 보관함이 바뀌었거나……. 누가 중간에 빼돌린 것 같은데.”
연수 형이 낮게 한숨을 뱉었다. “일단 내려. 저 남자 먼저 쫓아가자.”
연수 형과 해솔이 민첩한 동작으로 차에서 내렸다.
송출 상태가 좋지 않은 듯, 다시 화면이 지직거린다. 몇 초 후 연결된 화면 안에서는 연수 형과 해솔이 의문의 남자를 쫓아 달려가고 있다.
앞서 가던 남자는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흠칫하며 몸을 돌린다. 이윽고 그가 갓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그를 뒤따라 달리며 연수 형이 묻는다. “얼굴 봤어?”
“아뇨.”
“붙잡아서 후드 벗겨 보자. 일단 얼굴만 찍어 놔도 연합에서 추적할 수 있으니까.”
의문의 남자는 엉망이 된 도로 위를 달리며 차량 뒤에 몸을 숨겼다가 뛰쳐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는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도 뒤를 힐끔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안개와 화재 연기가 그의 형체를 한층 더 흐릿하게 만들었다.
나는 화면 너머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앞 차와 부딪힌 채 멈추어 선 SUV 사이로 남자가 방향을 틀었다. 말없이 그를 쫓던 연수 형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을 보니, 형의 시야에서 찰나간 그가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차량이 그의 머리를 완전히 가려 주지는 않았다. 움직이는 머리의 궤적을 잡아낸 해솔이 몸을 반대로 틀어 그를 앞질렀다.
문득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가 못해도 웬만한 SUV보다 반 뼘은 더 큰 것 같다는 느낌이.
최소 185cm는 되겠는데-.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지침서의 특정 항목이 떠올랐다.
덤프트럭 탑승자 중 185cm 내외의 신장을 보유한 남성과 마주하였다면 유의하십시오.
그 사람이다. 폭력적이고 다혈질적인 성향이라던 그 남자.
-
갓길에 주차된 하얀 스타리아 차량이 보인다. 아까 해솔이 창문을 두드렸던 그 차량이다.
검은 후드의 남자가 하얀 스타리아 차량의 문을 향해 뛰어간다. 그가 문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준다.
덜걱, 덜걱. 무언가 걸려 잠긴 듯한 소리만 날 뿐 문은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뒤쫓아오는 해솔과 연수 형을 연신 돌아보며 그 남자가 스타리아의 문을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남자가 스타리아 내부에 탑승하려는 듯 몸을 숙이는 순간, 어느새 코앞까지 쫓아온 연수 형이 그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어디 가려고.”
연수 형이 서늘하게 내뱉었고,
그 순간 남자의 마스크 너머로 큽, 하고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따라오던 해솔의 눈빛이 변한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듯한 눈빛.
“아, XX.” 해솔이 낮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러고는 목청껏 소리쳤다.
“형, 나와요!”
그와 동시에 차 안에 몸을 반쯤 들이는 척하던 의문의 남자가 돌연 몸을 날려 연수 형의 팔을 붙들었다.
의문의 남자가 연수 형을 차 안으로 떠민 후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해솔이 간발의 차로 팔을 뻗어 연수 형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연수 형을 냅다 잡아끈 뒤 있는 힘껏 밀쳐냈다.
쾅.
사방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흰색 스타리아 차량이 파열음을 내며 폭발했다.
지직거리던 화면이 픽 하고 꺼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억겁과도 같은 몇 분이 지나고, 화면이 다시금 연결된다.
산산이 조각난 파편 사이로 형체만 남은 스타리아 차량이 불타고 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없는 과거였다. 일어난 적 없는 과거.
원래 스타리아 차량이 폭발하는 것까지가 그들의 계획에 포함되어 었던 걸까? 원래 그날 스타리아 차량도 폭발하게 되어 있었지만 우연히, 다행스럽게도 불발로 남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끼어들며 과거가 바뀐 것일까?
화면 너머로 반쯤 쓰러진 해솔이 보인다. 연수 형이 해솔 가까이 몸을 낮추며 다급히 묻는다.
“해솔아,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둘 모두 엉망인 차림새였지만, 폭발에 휘말리지는 않은 듯했다. 그러나 연수 형을 멀리 밀쳐내며 본인이 폭발 차량과 더 가까이 서게 된 탓인지 해솔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아 보였다.
해솔의 뺨에 자질구레한 생채기가 수도 없이 나 있었다. 연수 형의 도움을 받아 상반신을 일으키며 해솔이 내뱉었다.
“아, 괜찮아요. 괜찮긴 한데…… 등이 진짜 뜨거워요.”
연수 형이 해솔의 등을 살폈다. 화상을 입었는지, 검붉은 빛이 살벌하게 해솔의 등을 좀먹고 있었다.
해솔이 이를 악물고 신음을 내뱉었다.
연수 형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해솔아. 지금 트리거 가능하지?”
간신히 상체를 지탱하고 있던 해솔이 고개를 들었다. “....... 왜요?”
“우리 차에 가면 네 트리거용 – 있어. 먼저 현재로 돌아가 있어.”
“형, 나 진짜 괜찮-.”
해솔의 말을 연수 형이 잘랐다. “먼저 돌아가 있어.”
어조는 부드러웠으나 연수 형의 목소리에는 이상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가 달리 ‘모든 동행자를 무사 귀환시킨 요원’으로 불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듯, 어쩐지 거역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단호함이.
이럴 때의 연수 형은 거스를 수 없었다. 해솔은 무어라 말하려다 도로 입을 다물었다.
연수 형은 천천히 일어나 저만치 멀어진 남자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말없이 생각에 잠긴 그 표정은 거리를 가늠하는 것도 같고,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던 연수 형이 이내 결정을 내린 듯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 대어 무언가를 끌렀다.
잠시 후 연수 형의 손에는 작은 브로치 크기의 물건이 들려 있었다. 그건 연합에서 배포한 여분의 특수 기록 장치였다. 실시간으로 영상 촬영이 가능한 장치.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연수 형은 남자가 이쪽을 돌아볼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추격이 멈춘 것에 위화감을 느꼈는지, 곧이어 남자가 뒤편으로 힐긋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연수 형은 특수 기록 장치의 전원을 누르고 남자 쪽을 향해 렌즈를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해 보였다. 기록 장치에 촬영 중임을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남자는 여전히 후드 차림에 얼굴을 꽁꽁 싸맨 상태였고, 이 거리에서 남자의 실루엣을 찍는다 해서 연합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확보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것은 순전히 도발을 목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내가 너를 촬영하고 있다고 드러내 놓고 알리는 행위.
연수 형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에게 그 도발은 확실히 먹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대놓고 자신을 찍고 있는 연수 형을 몇 초간 바라보더니, 위협적인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키도 키였지만 덩치가 연수 형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연수 형이 평균보다 더 큰 체격임을 감안해도 그랬다. 그 사실은 남자가 점점 가까워져 오자 더욱 명백해졌다.
보는 내가 다 긴장되었지만 정작 연수 형의 얼굴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남자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연수 형에게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연수 형이 왼쪽으로 몸을 살짝 들어 남자의 주먹을 피했다. 남자가 연수 형의 반대쪽 팔을 냅다 붙들고 호전적으로 내뱉었다.
“X만한 새X가....... 방금 나 찍었냐?”
연수 형이 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찍었는데?”
“지워, XX.”
남자가 연수 형에게 다시금 주먹을 날렸다. 이내 두 사람 사이에 몸싸움이 붙었다. 남자는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고, 연수 형은 남자의 공격을 피하며 눈으로 그의 빈틈을 좇았다.
그러나 체격 차이 때문인지 두 사람이 맞붙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남자는 지치지도 않고 맹렬히 달려드는 쪽이었고, 연수 형은 막는 데에 급급해 보이는 쪽이었다.
연수 형은 모든 공격을 어찌저찌 피하고는 있었지만, 보폭 큰 걸음으로 매섭게 몰아세우는 남자 때문에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었는지 남자가 연수 형을 갓길 쪽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가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밀면 밀리는 대로 순순히 물러나는 연수 형을 보며 나는 조금씩 의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 계속 가만히 있는 거지?
충분히 반격하고도 남을 텐데.
한 걸음, 두 걸음. 남자가 거듭 주먹을 휘둘렀다. 연수 형은 뒤로 계속해서 물러나기만 했다.
다시 한 걸음, 두 걸음.
“....... 아,”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었다. 남자가 연수 형을 거세게 밀치며, 연수 형이 그대로 떠밀려 난간에 부딪힌 탓이었다.
난간 아래는 까마득한 바다였다.
남자가 연수 형을 난간에 짓누르려 했다. 연수 형의 상반신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난간 밖으로 내밀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연수 형이 팔을 뻗어 남자의 멱살을 잡아챘다.
남자의 멱살을 쥐고 코앞까지 끌어당긴 연수 형이 남자의 후드를 잡고 거칠게 벗겨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일부러 당해 주기라도 했다는 듯, 남자의 옷깃을 틀어쥔 연수 형의 손길은 흔들림 하나 없이 굳건했다. 남자가 고개를 뒤로 빼려 했으나 연수 형은 그마저의 틈조차 주지 않았다.
연수 형의 손이 남자의 마스크를 쥐어뜯다시피 걷어냈다.
남자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고,
연수 형이 씩 웃어 보였다.
“야, 너 얼굴 봤어.
나중에 면회 갈 테니까 딱 기다려.”
남자의 얼굴이 영상에 선명히 잡혔다. 부리부리한 눈매, 얇은 입술, 이마 쪽에 나 있는 흐릿한 흉터, 왼쪽 턱의 작은 점까지.
거센 숨을 내쉬는 남자의 얼굴 위로 연수 형의 낭랑한 목소리가 겹쳤다.
“다혈질에 단순해서 이용해 먹기 쉬울 거라더니. 그 말이 딱 맞네.”
남자가 제 화를 이기지 못하고 연수 형의 멱살을 마주 틀어쥐었다.
“XX, 안 지워? 당장 안 지워?”
남자가 연수 형의 상반신을 거칠게 밀쳤다. 연수 형은 이제 금방이라도 난간을 넘어 바다로 곤두박질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겁을 먹기는커녕, 연수 형은 자신의 멱살을 틀어쥔 남자의 손목을 잡고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것 좀 놔 주라. 허리 아픈데.”
그 말이 어째서인지 남자의 분노를 돋운 모양이었다. “그냥 뒤져, XXX야!”
남자가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연수 형을 난간 너머로 밀었다.
상반신이 뒤로 넘어가는 와중에도 연수 형은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생글거렸다.
“같이 가자.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그리고는 남자를 끌어당겨 강하게 붙들고,
바다를 등진 채 남자와 함께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두 명의 성인 남성이 동시에 짙은 안개를 뚫고 추락했다.
청파대교 아래에는 어둡다 못해 검은색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바다가 자비 없이 입을 벌린 채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검게 요동치는 바다에 풍덩 소리를 내며 빠진 것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허연수의 트리거는 ‘높은 곳에서 뒤로 떨어지는 것’ 이었으므로.
“바다에 처넣어도 된다고 해서.”
익숙한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린 듯한 얼굴 위로 옅은 미소를 드리운 연수 형이 모니터링실의 입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