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대교 테러 구제 작전 (1)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송출 상태가 좋지 않은 듯 화면이 지직거린다. 몇 초간의 노이즈 이후 화면이 밝아진다.


“아, 켜졌다.”


화면 너머로 두 명의 남자가 이곳을 응시하고 있다. 옅은 갈색 머리칼을 한, 사람 좋은 인상을 지닌 미형의 남자 하나. 그리고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차가운 인상의 남자 하나. 연갈색 머리칼 쪽이 연수 형이고 흑발 쪽이 해솔이다.


“잘 보이나?”


“거기다 대고 물어 봤자 대답 못 해요, 형.”


해솔의 말에 연수 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렇지.”


이쪽을 바라보며 연수 형이 물었다. “잘 듣고 있지, 세민아? 미래에서?”


나는 픽 하고 작은 웃음을 뱉었다. 그 말이 맞았다. 저들은 과거에 있고, 나는 미래에 있는 셈이었다.


이건 사건 당시로 향한 연수 형과 해솔이가 남긴 영상이었다. 과거로 간 요원들이 기록 장치를 통해 영상을 촬영하면, 그 영상은 라이브 스트리밍처럼 실시간으로 연합의 서버에 업로드되게끔 설정되어 있었다. 현재에 남아 있는 요원들은 과거로부터 업로드된 영상을 현재에서 동시에 모니터링하며 ‘백업’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오늘의 백업은 나였다. 나는 우리 지부의 모니터링실에 앉아 화면으로 과거를 보고 있다. 전에는 없었던, 새롭게 생겨나게 된 과거를.


화면 속 연수 형이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기록 시작하겠습니다. 올해 첫 사건이지 이거?”


해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건번호 1이겠네. 구제 대상 건 1. 청파대교 테러 사건.

참가 요원은 한국지부의 허연수, 서해솔.

구비 물품은 연합 소유의 개조 차량 1대, 유사시를 대비한 테이저건 1정, 요원 서해솔의 트리거 수행을 위한 물품 1종…… 그리고 소화기 1대. 별 쓸모는 없어 보이지만. 누가 집어넣은 거야 이거?”


“형.” 해솔이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연수 형을 제지했다.


“현재 시각은 13시 10분입니다. 차량 탑승하겠습니다.”


연수 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작전 지침서 2항 따라 진입 시작하겠습니다.”


연수 형이 운전대를 잡았다. 차량이 부드럽게 주행한다. 한동안 연수 형과 해솔은 말없이 정면의 창문 너머를 응시한다.


“아, 확실히 안개가 장난이 아니네. 헤드라이트 켜야 하나 이거?”


“안개등 켜요, 형.”


“오, 해솔이 안개등이라는 말은 어떻게 알아? 코찔찔이 아기 시절에 들어와서 면허도 없으면서.”


해솔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전방을 주시하던 연수 형이 입을 열었다.


“1차선에 기름 자국 보입니다……. 선은 하나뿐입니다. 지침서 따라 가속하겠습니다.”


차량이 차선을 변경한 뒤 속도를 높인다. 안개 탓에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풍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해솔아, 혹시 전방에 덤프트럭 보이면 나한테 말해 줘.”


“네.”


무덤덤하게 답하던 해솔이 전방을 응시한다. 몇십 초간 차 안에 적막이 흐른다.


우우웅, 하는 이상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눈을 찡그린 채 한곳에 시선을 고정한 해솔의 눈빛이 한순간 변한다.


“....... 형.”


“응?”


“형. 저기 봐요. 1차선.”


운전대를 잡고 있던 연수 형이 고개를 까딱여 해솔이 가리킨 방향을 흘긋 본다.


“흰색 스타리아요.”


연수 형의 눈이 가늘어진다. 해솔이 몸을 앞으로 당겨 차창 가까이 얼굴을 붙인다.


“뭐가 좀 보여?”


“아뇨. 안개 때문에 잘 안 보여요. 더 가까이 가야 뭐가 보이든 말든 하겠는데요.”


“기다려 봐.” 연수 형이 속력을 조금 더 높인다. 전방의 스타리아와 거리가 좁혀진다.


“지침서 4항에서 언급된 차량으로 추정되는 스타리아 발견했습니다. 운전자 식별 시도해 보겠습니다.”


차량이 스타리아 가까이 따라붙는다. 연수 형과 해솔이 모두 옆에서 주행하는 스타리아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안 보여요.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만 겨우 알아보겠어요.”


“음.” 연수 형이 찰나 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돌연 내뱉는다.


“어떻게 도발이라도 좀 해 볼까? 창문 안 내리고는 못 배기게.”


해솔의 서늘한 눈매가 보기 드물게 동그래졌다. “네? 그게 무슨-.”


해솔의 되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수 형이 엑셀을 밟았다. 차량이 우웅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연수 형이 핸들을 거칠게 꺾었고, 그와 동시에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차량이 아슬아슬하게 스타리아 앞으로 끼어들었다.


“형 미쳤어요? 여기 1차선이에요!”


해솔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수 형의 얼굴은 태평해 보였다.


연수 형이 다시 차선을 변경했다.


“저기서 눈 떼지 마, 해솔아.”


연수 형이 핸들을 도로 휙 틀었다. 차량이 1차선에 살짝 들어서려는 듯했다가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뒤편을 주행하던 스타리아가 주춤하더니 추월하려는 듯 속력을 높였다.


그에 지지 않고 연수 형도 덩달아 가속하기 시작했다. 해솔이 이마를 짚었다.


“형 제정신이에요? 운전 똑바로 해요 제발.”


“나 운전 잘 해. 너 털끝 하나 안 다칠 거니까 걱정 마.” 연수 형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덤덤히 내뱉었다.


해솔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연수 형의 말이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연수 형은 누구와 함께 파견되든지 간에 동행한 요원을 책임지고 무사히 귀환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우리 중 최연장자라고는 하지만, 스물다섯이 채 되지 않았던 시절의 허연수가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 한국 지부의 지부장 자리를 꿰차고 다른 지부장들 앞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 영 근거 없는 인선은 아니었던 셈이다.


연수 형은 위협적으로 운전을 계속했다. 깜빡이를 껐다 켰다 반복하며 얄밉게 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예 상대를 먼저 보내고 뒤편으로 빠질 생각인지, 스타리아가 갑작스레 감속했다. 그러나 연수 형은 놓아 줄 생각이 없다는 듯 덩달아 차를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해솔이 중얼거렸다. “....... 내가 스타리아 차주였으면 그냥 형 들이받아 버렸을 거예요.”


“그래서 나라가 너한테 면허를 안 내준 거야.”


연수 형이 쾌활하게 말을 받기가 무섭게, 스타리아가 차량 앞으로 홱 끼어들었다.


차체가 흔들리며 연수 형과 해솔의 몸이 잠시 기우뚱했다.


연수 형이 순식간에 가라앉은 눈빛으로 스타리아의 뒤를 좇았다.


“갓길로 들어가네, 갑자기.”


다급히 차선을 변경한 스타리아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연수 형과 해솔은 말없이 그쪽을 응시했다.


“해솔아. 지금 몇 시야?”


“....... 13시 21분이요.”


“아직 몇 분 여유 있네. 잠깐 확인해 보자.”


연수 형이 핸들을 부드럽게 돌려 갓길로 차를 움직였다. 차량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스타리아 뒤에 정차한다.


“안에 누구 타고 있는지만 좀 보자.”


해솔이 안전벨트를 풀었다. “제가 내려서 보고 올게요.”


스타리아 차량은 내리는 사람도 없고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미동도 없이 고요히 정차해 있다.


기록 장치를 챙겨 차에서 내린 해솔이 스타리아 가까이 다가간다.

짙은 안개를 헤치고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스타리아 차량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차창 가까이 다가간 해솔이 돌연 우뚝 멈추어 선다.


정적.


가만히 멈춰선 채 차량 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해솔이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세민이 형.”


갑작스레 화면 너머로 흘러나온 내 이름에 나는 흠칫 놀랐다. 답을 주고 싶었으나 해솔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영상의 볼륨을 높였다.


해솔이 내뱉는다.


“....... 세민이 형. 지침서에 써 있던 게 이 차가 맞아요? 흰색 스타리아, 맞아요? 아, 답을 들을 수도 없고. 돌겠네 이거.”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긴 해솔이 말한다.


“어린애가 타고 있어요. 대여섯 살쯤 된 것 같은 여자애가 조수석에.”


그러고는 의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 웅크리고 있는데. 겁에 질린 것처럼.”


해솔이 천천히 차량 가까이 다가간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톡톡 두드린다.


이내 창문이 아주 살짝 내려간다. 운전자의 눈만 겨우 보일 듯 말 듯한 틈이었다.


해솔이 차분한 목소리로 묻는다. “괜찮으세요? 갑자기 정차하시길래, 차에 문제가 생기신 건가 해서.”


화면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다시 뚜렷해진다. 초점이 창문 틈 사이로 드러난 운전자의 눈에 맞추어진다.


운전자의 눈동자는 눈에 띄게 밝은 갈색이다.


외국인인가?


운전자는 아무런 말이 없다. 해솔이 거듭 묻는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그 말을 하며 해솔은 창문 너머 조수석으로 시선을 준다.


“아이가 아파 보이는데요.”


운전자가 조수석을 돌아보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창문을 조금 더 내린다.


그러자 운전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귀와 목을 가리는 두건을 쓴 외국인 여성.

그 옆에 고개를 숙인 채 웅크려 있는 어린 여자아이.


둘은 모두 겁에 질린 듯 보인다.


해솔이 다시금 묻는다. “괜찮으세요?”


외국인 여성은 알아듣지 못한 듯 해솔을 마주보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본다.


아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동시에 해솔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해솔을 곁눈질로 힐끔대고 있는 그 아이는, 한국인이다.


“어디 아파?” 해솔이 차분히 물었다. 저 정도면 해솔 치고는 엄청난 다정과 인내를 발휘한 말투였다.


그러나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 아닌 모양이었다. 한참을 말이 없던 아이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느리게 입을 뗀다.


“불신자……”


“응?” 해솔의 눈이 살짝 커졌다.


“믿지 않는 사람하고는 말하지 말랬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뱉은 아이가 다시 웅크려 고개를 묻었다. 해솔은 창가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차창이 다시 올라갔다.


운전석에서 내린 연수 형이 해솔 가까이 다가왔다. “안에 누구였어?”


해솔은 연수 형을 이끌고 차량으로 돌아가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외국인 여자 한 명, 한국인 여자애 한 명이요. 둘 다 겁에 좀 질려 있어요.”

연수 형의 눈이 동그래졌다. “겁에 질렸다고? 혹시 내가 너무 운전을 쓰레기처럼 했나?”


해솔이 한심하다는 듯 연수 형을 보았다. “아니, 그건 맞긴 한데…… 그것 때문만은 아닌 거 같아요.”


둘은 멈추어 서서 스타리아 차량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외국인 여자에 한국인 여자애라니. 둘이 무슨 사이인지, 왜 대뜸 멈춰서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떨고만 있는지 아무것도 감이 안 잡혀요. 운전자는 제 말을 못 알아듣는 눈치였고, 여자애는 저한테 이상한 말을 했어요.”


“무슨 말?”


“‘믿지 않는 사람하고는 말하지 말랬어요.’ 이렇게 말했어요.”


“믿지 않는 사람…….” 연수 형이 그 말을 따라 읊조렸다.


“모르는 사람하고 말 섞지 말라는 뜻인가? 꼭 유괴 예방 교육에서 할 것 같은 말인데.”


“그러니까요. ‘만물의 눈’하고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아요. 특히 그 여자애가. 뭐라고 해야 하지, 좀 기이하다고 해야 하나.”


연수 형이 미소인지 비소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괴담 같은 데 보면 이런 정체 모를 애하고 말을 섞었다가 정신이 이상해지던데.”


“정말 정신이 이상해지긴 한 것 같은데.”


해솔이 저만치 앞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저쪽에서 이상한 불빛 보이지 않아요? 게다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것 같아요.”


둘은 말없이 전방을 응시한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기도 하고, 조명 같기도 한 주황색 빛이 일렁인다.


빛은 점점 커진다. 차츰 둘의 표정에 당혹이 어린다.


연수 형이 해솔의 팔을 잡아채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해솔아. 타. 시간이 앞당겨졌어.”


“네?”


해솔을 차에 밀어넣은 연수 형이 뒤이어 운전석에 올랐다.


“범행 시각이 앞당겨졌다고. 저거 불이야. 너도 방금 그 열감 느꼈지?”


차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한다. 화면에 표시된 시간은 13시 24분이다.


“6분 정도 당겨졌어. 이미 불을 지른 것 같아. 도주하기 전에 트럭 가까이 접근하려면 서둘러야 해. 우리는 전방 트럭 쪽으로 가자.”


밝은 빛이 덮쳐 오나 싶더니 차량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한다. 연수 형이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었다.


나란히 앉은 연수 형과 해솔의 싸늘한 얼굴 위로 주홍색을 띠는 빛이 일렁인다.


추돌 사고를 당한 차량들로 도로가 엉망이 되어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차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1차선을 따라 불길이 일직선으로 맹렬히 뻗어나가고 있다.


“불길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른데. 일단 갓길로 가요.” 해솔이 침착하게 내뱉었다. 연수 형은 갓길로 차를 몰았다.


말없이 엑셀을 밟던 연수 형이 픽 웃음을 뱉었다. “아……. 어쩐지 기름이 샌 것치고는 자국이 일정하더라니.”


“무슨 말이에요?”


“1차선에 있던 자국. 기름이 샌 게 아니야. 기름을 일부러 흘리면서 간 거야. 불길이 순식간에 퍼지게 하려고.”


연수 형은 서로가 서로를 들이받은 채 정체되어 있는 차들 사이를 피해다니며 방향을 바꾸었다.


머리맡의 손잡이를 움켜쥔 해솔이 말을 받았다. “덕분에 중앙분리대 너머로 대피하기도 어렵게 됐네요. 반대편 차선으로 소방차가 진입하기도 어려울 거고.”


“그렇지. 그래도 갈 사람들은 가.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연수 형이 1차선 쪽으로 고갯짓을 해 보였다.


불길이 퍼지자 사고 차량 바깥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다급히 몸을 피한다. 불타는 트럭과 잔해에 도로와 비상 통로가 모두 가로막혀 오갈 수 없게 되자, 몇몇 사람들이 튀어오르는 불티를 뚫고 중앙분리대를 넘으려 하고 있다.


“형, 근데 우리는 어떻게 나가요? 바다로 뛰어드는 거 말고는 진짜 답이 없어 보이는데.”


해솔이 묻자 연수 형이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해솔아. 벨트 잘 맸지?”


“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해솔이 이맛살을 찌푸리자, 연수 형은 시원한 눈매를 휘며 씩 웃어 보였다.


“그럼 가자. 들이받으러.”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 계기판의 바늘이 순식간에 휙 돌아갔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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