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내가 일고여덟 번쯤 죽었을 때가 떠오른다. 우리가 가장 무디게 변했을 때.
혀뿌리부터 입천장까지 독으로 가글이라도 한 것처럼 시퍼렇게 변해 버리는 것도, 잠깐 꾸벅 졸다 눈을 뜨면 팔다리 중 하나가 사라져 있는 것도, 양치를 하다 세면대에 진홍색 거품을 뱉은 뒤 그대로 실신하는 것도 모두 익숙하다 못해 심드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내 주민등록이다.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그 밖의 신원을 증명하는 카드며 서류 따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모든 기록과 전산망에서 내 이름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그 다음으로 사라지는 것은 전화번호, 메신저, SNS 따위의 것들이다. 그 다음으로는 오래된 물건들, 오랫동안 나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기억, 비교적 최근에 산 물건들, 나와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의 기억 순으로 소실된다. 어쩐지 순서가 반대로 되어야 맞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그렇다.
내 몸은 가장 마지막에 사라진다. 의식이 먼저 흐려지고, 손끝과 발끝부터 시작해서 팔다리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한다.
이야기에서는 첫 문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연수 형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내게 닥친 일을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가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하겠다.
아니, 정정하겠다. 죽었다 깨어났는데도 못 한다. 죽었다 깨어났기 때문에 더 못 하게 되어 버렸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기상천외하게 죽임을 당할지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다 보면, 자연히 말수는 적어지고 어휘력은 떨어지게 된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첫 문장이 될까?
이야기는 지난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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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우리 비행기 못 떠요. 청파대교에서 테러 일어났대요.”
그날은 ITA 아시아 연합본부에서 긴급 회의를 소집한 날이었다. 우리 모두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짐을 챙기던 중 해솔이 별안간 들이닥쳐 내뱉은 말만 아니었더라면 그랬을 것이었다.
“청파대교?” 캐리어를 잠그던 연수 형이 해솔을 보며 되물었다.
“네, 인천공항 가는 길에 있는 그 다리. 덤프트럭 두 대가 다리 중간을 틀어막고 그 사이에 불을 질렀다는 거 같은데, 저도 급하게 봐서 모르겠어요. 뉴스 틀어 봐요 얼른.”
연수 형은 TV를 켰다. 이제는 찾는 사람보다 찾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아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된 물건이었지만 연합에는 반드시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 기물이었다.
TV가 켜지자마자 굵은 글자로 표시된 자막이 시선을 잡아챘다.
[청파대교 테러 발생 … 화재로 인해 진입 난항]
그 뒤를 이어 아나운서의 중저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속보입니다. 13시 30분 경 인천광역시 청파대교에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12톤 덤프트럭 두 대가 공항 방면으로 향하는 청파대교의 특정 구간을 막아세운 후 대규모 방화를 저질렀는데요,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화면이 전환된다. 인근을 지나다 급하게 호출된 듯 다소 느슨한 차림의 기자가 급하게 말을 꺼낸다.
“네, 이곳은 청파대교입니다. 덤프트럭 두 대가 다리의 중간 지점을 막고 있고, 트럭의 차체에서 시작된 불길이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도로를 주행하던 덤프트럭들이 갑작스럽게 방향을 가로로 전환하며 그 사이의 도로를 틀어막았고, 후방의 차량들이 이를 피하지 못해 다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기자의 뒤로 검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인다. 대교 위는 이미 화마에 휩싸여 있다.
“덤프트럭에 탑승하고 있던 신원 미상의 남성들은 도로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차체에 불을 지른 뒤 자취를 감췄습니다. 해당 구간에 갇힌 시민들이 중앙 분리대를 넘어 반대편 차선으로 대피를 시도하며 반대편 차선에서도 추돌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불타는 트럭과 사고 차량의 파편들로 인해 진입로와 비상 통로가 막혀 소방당국이 화재 진압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대교를 비춘다. 척 보기에도 서른 대는 넘을 것 같은 차량들이 줄줄이 앞 차에 코를 박은 채 불타고 있다. 불길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다리 난간에 바짝 몸을 붙인 채 서로 밀쳐내며 아우성을 친다.
화면 너머로 타오르는 불길에 시선을 주던 연수 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신원 미상의 남성들’?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하네.”
화면을 응시하던 해솔이 말을 받았다. “누구 짓인지 알 것 같아요? 신원 미상이라고 하는 걸 보면 남긴 흔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연수 형이 픽 웃음을 흘렸다. “흔적이 없다는 게 곧 흔적이나 마찬가지지. 보통 테러 집단이라고 하면 자기를 드러내지 못해서 안달이란 말이야. 이게 우리 업적이다, 우리가 이렇게나 강하다 하면서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그런데 쟤네는 저 정도로 일을 크게 쳐 놓고는 입 싹 닫고 사라져 버렸잖아.
그럼 안 봐도 선택지는 하나지. ‘만물의 눈’ 짓이야, 이거.”
‘만물의 눈’. 연합에서 최근 주시하기 시작한 극단주의 종교의 테러 집단이었다. 관심을 줄 가치도 없는 한미한 신흥 종교 모임인 줄로만 알았으나, 그들의 규모가 생각보다도 더 거대했으며 이미 여러 국가에 깊숙이 침투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연합은 한 발 늦게 알아차렸다.
연수 형이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화면 우측 상단에 작은 자막이 떠올랐다.
사망 12명, 부상 64명.
몇 초 후 자막이 바뀌었다.
사망 13명, 부상 67명.
“이거, 저희가 구제하게 될까요?” 가만히 뉴스를 보고 있던 효신이 물었다.
“아마도?” 연수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묻지 않아도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한국에 있는 타임워커라고는 우리 다섯이 전부였으니까. 우리 말고 달리 누가 나서겠는가?
연수 형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내뱉었다. “그래도 좀 의외네. ‘만물의 눈’이면 영미권에서 주로 활동하던 애들 아닌가? 한국에서까지 저 정도 규모로 일을 벌일 줄은 몰랐는데.”
해솔이 말을 받았다. “쟤네 이제 나라 안 가려요. 요즘은 아시아에서 오히려 더 난리일걸요. 저번에 싱가포르에서도 한 건 했을 텐데. 긴급 회의 잡힌 것도 그거 때문이잖아요.”
“그런가? 귀찮게 됐네 아무튼.”
화면 너머로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대화에서 긴장감이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막이 또 바뀌었다. 사망 14명, 부상 68명.
연수 형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군소리를 내뱉었다.
“아, 큰일이네 저거. 저 많은 수를 다 살리려면 시간이 얼마야 대체?”
효신이 물었다. “다 살릴 자신 있는 거예요?”
“응? 말이라고.”
마치 살려내지 못하는 경우의 수는 없다는 듯한 태평한 어조. 연수 형이 그린 듯 잘생긴 얼굴 위로 오연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해솔아, 비행기 미뤄. 네 말대로 못 타겠다. 그리고 싱가포르 지부에 연락해. 회의 못 가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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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 최고위원회에서 알립니다. 금일 오후 13시 30분 경 대한민국의 인천광역시에서 발생한 ‘청파대교 테러’를 구제 대상 건으로 선정합니다. 현재 사전 조사관이 파견되었으며, 사전 조사가 마무리되면 작전 수행을 위한 지침서가 배포될 예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규모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연합에서는 피해 규모와 영향을 검토한 뒤 해당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들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으로 이동해 사고를 막는 과정을 연합에서는 ‘구제’라고 불렀다.
특정 사고가 구제 대상 건으로 선정되면, 연합에서는 가까운 미래로 사전 조사관을 파견했다. 사전 조사관의 업무는 수사가 완료된 미래의 시점에 공개된 정보와 수사 기록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사전 조사관이 현재로 귀환하면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작전 지침서가 작성되었다.
“잠깐만, 해솔아. 이거 언제 온 알림이야?”
“3시 15분이요.”
“그럼 사건 터진 지 두 시간만인데? 웬일로 파견이 이렇게 빠르지?”
연수 형이 중얼거리자 해솔이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저번에 싱가포르가 제대로 당했잖아요. 단단히 벼르고 있었나 보죠.”
“아니, 작년 광화문 생화학테러 때는 일주일 뒤에야 겨우 파견 나오더니 싱가포르가 한 마디 했다고 일이 이렇게 빨리 돌아가네. 역시 지부가 힘이 있어야 해. 거긴 인원도 쥐꼬리만하면서 어떻게 본부로 그렇게 잘 진출하는지 몰라.”
효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속도면 오늘 저녁 전까지는 지침서 뜨겠는데요.”
소파에 늘어져 있던 연수 형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세민아, 너 지금 태블릿 있지? 수신함 한 번 확인해 줘. 뭐 업데이트된 거 없나 봐봐.”
“네.” 순순히 대답한 나는 태블릿을 켜 본부 수신함을 열었다.
업데이트 중 …….
업데이트 완료. 모든 문서함이 최신 상태입니다.
“어때? 지침서 떴어?”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입을 떼었다.
“네.”
그러자 방 안의 공기가 삽시간에 날카로워졌다. 연수 형이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그러나 순식간에 서늘해진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화면 띄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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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대교 테러 구제 작전 지침서]
본 문서는 20XX년 1월 18일 오후 13시 30분 경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서 발생한 청파대교 테러를 구제하기 위한 작전의 지침서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숙지하시어 작전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침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 연합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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