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본 문서는 20XX년 1월 18일 오후 13시 30분 경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서 발생한 청파대교 테러를 구제하기 위한 작전의 지침서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숙지하시어 작전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침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 연합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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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대교는 인천광역시 중구와 동구를 연결하는 현수교 형태의 교량입니다. ‘청파대교 테러’란 해당 교량에서 발생한 아래 사건들의 집합을 뜻합니다.
당일 13시 30분 경 청파대교를 주행하던 12톤 덤프트럭 두 대가 급격히 방향을 전환하여 사이 구간을 봉쇄. 이로 인해 38중 추돌 사고 발생.
덤프트럭에 탑승하고 있던 남성 4인이 각 트럭의 차체에 방화. 이후 추돌 사고 피해 차량들에 불을 옮겨 붙인 뒤 도주.
불길에 놀란 시민들이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편 차선으로 탈출을 시도하며 반대편 차선에서 15중 추돌 사고 발생.
인명피해: 사망 21명, 부상 68명
테러에 사용된 덤프트럭의 번호판을 토대로 차량의 소유주를 추적하였으나, 범행 발생 당시 소유주는 자택에 머물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자신의 덤프트럭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음이 드러났습니다. 현재 수사 당국은 그 어떤 유의미한 단서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해당 테러는 전 세계 약 12개국에 퍼져 있는 극단주의 종교 단체 ‘만물의 눈’에 의한 소행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본 작전의 목표는 테러에 가담한 신원 미상의 남성 4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테러가 발생하기 이전의 과거에서 이들을 체포함으로써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고 ‘만물의 눈’을 추적하는 것입니다.
신원 미상의 남성들에 관한 아래의 정보 중 최소 1종 이상을 확보해 주십시오.
이름, 얼굴, 신체 특징, 거주지, 소속 집단 또는 직업
타임워킹 준비를 마친 후, 트리거를 시행하여 20XX년 1월 18일 13시 00분에서 13시 28분 사이의 시간으로 향하십시오.
차량, 도보, 그 밖의 활용 가능한 다른 수단을 활용하여 청파대교의 공항 방면 차선으로 진입하십시오. (차량을 이용한 진입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진입 이후에는 아래의 수칙을 준수하시기 바랍니다.
1. 짙은 안개에 놀라지 마십시오.
20XX년 1월 18일은 전례 없이 해무가 짙은 날로, 이례적으로 안개로 인한 기상 특보가 발효된 날이었습니다. 청파대교 인근은 평상시에도 짙은 해무로 인한 높은 사고의 위험을 자랑하니 시야 확보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게 되는 것들이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2. 청파대교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면 1차선으로 주행을 시작하십시오.
사건 발생은 13시 30분 경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지 않으며, 사건 발생에는 언제나 몇 분의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도로면의 상태를 육안으로 살핀 뒤, 도로면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하위 항목을 따르십시오.
2-1. 바닥에 길게 이어진, 물 (또는 기름) 이 샌 자국으로 추정되는 선 하나가 보일 경우
덤프트럭 2대 중 1대가 작전 차량보다 앞서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속하여 앞서 가는 트럭이 가시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주행하십시오.
2-2. 바닥에 길게 이어진, 물 (또는 기름) 이 샌 자국으로 추정되는 선이 두 개로 보일 경우
덤프트럭 2대 중 2대가 모두 작전 차량보다 앞서 가고 있는 상황이며, 트럭 2대가 모두 테러 구간에 진입하였으므로 머지않아 급정거할 것입니다. 초입의 갓길에 정차하여 추돌 사고에 휘말리는 것을 방지한 뒤 수사를 시작하십시오.
2-3. 바닥에 물 (또는 기름) 자국이 보이지 않을 경우
덤프트럭 2대 모두 아직 대교에 진입하기 전입니다. 후방의 덤프트럭이 육안으로 확인될 때까지 적정 속도로 주행하십시오.
3. 도로면을 확인한 이후에는 즉시 1차선을 벗어나 2차선으로 주행하십시오. 갓길로의 주행 역시 장려됩니다. 절대 1차선으로 재진입하지 마십시오.
사건 당시 2차선으로 주행하던 차량의 1/3 가량이 추돌 및 화재 피해를 입었던 반면, 1차선으로 주행하던 차량은 전원 전소하였습니다.
4. 만약 주행 도중 흰색 승합차 (2X년 출시 모델 현대 스타리아) 가 시야에 들어올 경우 서서히 감속하십시오. 현재 방화에 직접적으로 사용된 덤프트럭을 제외하면 ‘만물의 눈’과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차량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 해당 차량은 갓길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으며, 운전자와 동승객 모두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작전의 본 목적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해당 차량에 대한 조사를 함께 진행하여 주십시오.
5. (진위 판별 불가로 삭제된 항목입니다.)
6. 덤프트럭 탑승자 중 185cm 내외의 신장을 보유한 남성과 마주하였다면 유의하십시오.
사건 당일 피해 차량 승객 중 한 명은, 화재가 발생한 직후 도보로 교량을 탈출하려 하였으나 얼굴을 가린 장신의 남성이 자신을 막아세웠다고 증언했습니다. 피해 승객이 언성을 높여 비킬 것을 요구하자 해당 남성은 승객을 강제로 넘어뜨려 제압한 뒤 욕설을 내뱉고 사라졌습니다. 폭력적이며 다혈질적인 성향으로 파악되니 직접적 마찰을 지양하시되,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 그의 성향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을 권고합니다.
7.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마십시오.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작전이 개시되면 연합의 규정에 따라 소형 특수 장치로 영상을 촬영해야 합니다.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십시오. 몇 회에 걸쳐 테러 공작을 방해받으며, ‘만물의 눈’은 경찰 당국 외의 조직이 자신들을 추적하고 있음을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불필요한 의심의 단서를 제공하지 마십시오.
8. 정체 불명의 소리에 놀라지 마십시오.
주행 도중 차체가 덜컹거리며 바깥으로부터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돌풍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청파대교 인근은 짙은 해무와 더불어 강한 바닷바람으로 악명이 높음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지침서의 내용이 유출, 훼손, 조작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지체 없이 본부에 문의하십시오.
무탈한 모습으로 현재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과실이 있는 곳에 책임도 있나니,
당신의 시간에 행운이 깃들기를. 단결.
- ITA 아시아 연합본부 본부장, 리 치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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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서의 마지막 줄에는 리 치앙 아저씨가 덧붙인 한 문장이 더 있었다. 시원하다 못해 화끈하기까지 한 말투를 보아하니 이건 리 치앙 아저씨 본인이 적은 것이 확실했다.
나는 굳이 그 내용을 소리내어 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내가 말했다.
“끝이에요.”
“....... 이것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네. 까다로운 것 같기도 하고, 쉬운 것 같기도 하고.” 효신이 말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해솔이 내뱉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누가 가요?”
나는 태블릿 화면의 스크롤을 올렸다. “이번에는 참전 인원까지 지정해 줬어. 여기 봐.”
참가 권고 인원: 허연수, 서해솔 2인.
해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시에 연수 형이 눈썹을 찡그리며 웃어 보였다. “내가 또 가야 해?”
“차량 진입을 권고한다잖아요. 오빠밖에 면허가 없으니까 당연하죠.” 효신이 말을 받았다.
“아, 귀찮게. 진짜 너무너무 귀찮은데.”
“아까는 다 살릴 수 있다면서 자신만만하더니. 오빠가 안 가면 무슨 소용이에요?”
소파에 홱 드러누운 연수 형은 별안간 내게 물었다.
“지침서에 다른 말은 없었어? 물리적 제재는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지. 만약 걔네가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라거나, 뭐 그런 내용 없었어?”
내가 말했다. “...... 방어해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연수 형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그 양반이 그렇게 점잖은 표현을 썼을 리가 없는데.”
몸을 일으킨 연수 형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긋 웃어 보였다.
“세민아, 그 양반이 뭐래? 뒤에 다른 말 더 있지?”
나는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만약 그놈들이 주제파악도 못 하고 설치면, 차로 들이받아서라도 바다에 처넣고 오라고 하셨어요. 뒤처리는 연합에서 알아서 하시겠다고.”
잠시 멀뚱히 나를 바라보던 연수 형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그 양반이 내뱉은 소리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