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나는 검색창에 글자를 입력한다. ‘청파대교 테러’.
곧이어 뉴스 기사와 웹문서들이 주르륵 나열된다.
청파대교 완공 2주년… 이름 둘러싼 갈등 여전
청파대교 해무로 인한 삼중 추돌 사고 발생,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어
청파대교 통행료 인상… 이용객 부정적 반응 잇따라
나는 스크롤을 끝까지 내렸다. 작은 글씨가 검색 페이지 마지막에 적혀 있다.
관련이 있는 검색결과를 모두 표시하였습니다.
테러니 방화니 하는 언급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솔과 연수 형이 현재로 귀환한 이후, 연합은 영상에 기록된 얼굴과 신체 특징을 기반으로 남자를 추적했다.
연수 형이 그를 도발해 정면에서 촬영한 얼굴은 헷갈릴래야 헷갈릴 수가 없이 명확했고, 그의 신원을 조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머지 않아 연합은 테러가 발생하기 이틀 전의 시간대로 향해 남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말이 좋아 확보지, 그냥 짐승처럼 끌려가던데.” 라고 해솔은 말했다.
테러가 일어나기 이전의 시간대에서 남자가 구금되었으므로, 테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자연히 연수 형이 그 남자를 바다에 처박아 버린 일도 없던 일이 되었다.
아시아 연합본부의 본부장이자 싱가포르 지부의 회장인 리 치앙 씨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바다에 처박아 버렸다고? 하여튼 이럴 때만 말을 잘 들어.”
그리고 나서 얼마 뒤 본부 수신함에 새로운 문서가 도착했다.
[작전 완료 공지]
구제 대상 건 1의 명칭을 ‘청파대교 테러’ 에서 ‘청파대교 테러 미수 사건’으로 변경함을 알립니다.
타임워커들로 인해 과거가 바뀌면, 현재의 사람들은 그렇게 바뀐 과거가 원래부터 진실이었다고 기억하게 된다. 오직 타임워커들만이 변해 버린 과거가 원래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러니 청파대교 테러를 기억하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오직 우리 다섯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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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솔의 트리거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해솔이 본인이 트리거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탓이었다. 트리거를 열람할 권한이 있는 지부장 연수 형만이 해솔의 트리거를 알았다.
남들 앞에서 행하기 민망한 행동일 수도 있고, 트리거를 드러내는 게 자기 약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 숨기는 것이겠지만, 작전에 참여한 직후의 해솔이를 보면 대체 그 트리거가 뭐길래 저 애가 저렇게 힘들어하는지 조금은 궁금해지곤 했다.
작전을 끝내고 나면 해솔은 그렇잖아도 하얀 편인 얼굴이 더 창백해져서는 돌아왔다. 그럴 때면 가뜩이나 차가운 인상인 애가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예민한 분위기를 풍기곤 해서, 우리 중 누구도 먼저 쉽사리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귀환 후 해솔은 으레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까지 제 방에 틀어박혔다. 어디가 아픈 건지 아니면 그냥 우울한 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청파대교 작전에 다녀온 후 해솔은 어김없이 방에 틀어박혀서는 나오지 않았다. 가끔 밤중에 그 애의 방 앞을 지나면 몸살이라도 난 건지 앓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효신아. 해솔이 감기 걸렸대?”
“글쎄?” 내가 묻자 효신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작전에서 다쳐서 온 거 아냐? 매일 밤마다 끙끙 앓는 거 같던데. 그때 화상 입은 게 아직 덜 나았나?”
“무슨 소리야, 범인들 체포하면서 테러도 없던 일이 됐는데. 당연히 화상도 없던 일이 됐지.”
효신이 지적했다.
“정 걱정되면 오빠가 한번 들어가 봐. 나는 무작정 들어가기가 좀.”
나는 정색했다. “이미 서로 추한 꼴 다 봐 놓고 이럴 때만…… 그리고 나도 못 들어가.”
“왜?”
“몰라서 물어? 해솔이가 나한테 하는 걸 봐.”
내 말에 효신은 아, 하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솔은 내게 유독 퉁명스러운 편이었다. 사실 퉁명스럽다는 표현은 조금 사실에 맞지 않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
나를 대할 때의 해솔은 시퍼런 칼날 같았다. 원체 조금 차가운 성격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내게는 유독 더 그랬다.
해솔과 나는 일 년 정도 같은 동네에 살았다. 해솔이 중학생, 내가 고등학생일 때의 일이었다. 그때는 썩 나쁘지 않은 사이였던 것 같은데, 연합에 들어온 이후 다시 만난 해솔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연합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해솔은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알고 지내던 사이의 후배가 연합에 들어온 것이 반가워 아는 체를 했더니, 돌아온 것은 싸늘한 빈정거림이었으니까.
형이 웬일로 이렇게 반갑게 인사를 다 해? 답지 않게.
나는 고개를 휘저어 그 애가 나를 보자마자 내뱉었던 말을 기억 속에서 흩어 버렸다.
효신이 그런 나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해솔 오빠 저러는 거 하루이틀도 아니고. 며칠 더 저러다가 괜찮아지겠지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효신의 말은 반만 맞게 되었다.
해솔은 과연 며칠 지나지 않아 평소처럼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온 뒤 해솔이 가장 먼저 입에 올린 말은 조금 이상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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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애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간만에 다함께 모인 자리에서 대뜸 이상한 말을 입에 올리는 해솔을 연수 형이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해솔아?”
“청파대교에서 봤던 흰색 스타리아. 그 안에 타고 있던 여자애랑 외국인 운전자 있잖아요, 흔적도 없이 사라졌잖아요.”
“....... 너 방에 틀어박혀서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었어?”
연수 형이 어이없다는 듯 내뱉자 효신이 거들었다. “어디 아픈 줄 알고 내내 신경쓰고 있었는데, 괜히 걱정했다. 그쵸?”
해솔은 효신을 힐긋 째려보고는 도로 말을 이었다.
“사전 조사관이 가져온 정보에도, 지침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잖아요. ‘흰색 스타리아 탑승자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라고. 실제로 연수 형이랑 내가 청파대교 파견 나갔을 때에도 중간에 사라져 있었고.”
연수 형이 장난기를 싹 지운 얼굴로 물었다. “네가 이런 말을 이유 없이 꺼낼 것 같지는 않은데.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해솔이 잠시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본부의 데이비드 씨한테 부탁을 좀 해서 관련 기록을 찾아봤어요. 처음 테러 당시에도 그 스타리아는 아무도 없는 빈 상태로 발견됐었대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사고 현장에서 차가 빈 채로 발견된 거면, 사고에 희생됐거나 대피했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잖아요.”
모두가 해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차분하기 그지없는 해솔의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그런데 둘 다 아니었대요. 청파대교 희생자 중에 그 나이대의 외국인 여성이나 어린 여자애는 없었대요. 그렇다고 사건 현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찍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래요. 그냥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이상하잖아요. 그 안에서 죽었는데 유해가 수습이 안 된 거였거나, 아니면……”
해솔이 망설이며 얼버무린 말을 효신이 대신 끝맺었다.
“시간여행자거나.”
공기 중에 적막이 감돌았다.
“그 둘이 타임워커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연수 형이 묻자 해솔이 답했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모르는 일이 얽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연수 형이 입을 열었다.
“타임워커일 가능성은 낮을 거야. 생각해 봐, 우리 지부가 전 세계 ITA 지부 중에 제일 평균 나이가 어려. 세민이 다현이 연합 처음 들어왔을 때 기억나지? 열일곱 살짜리가 타임워커로 깨어났다고 연합 전체가 난리도 아니었어.”
여지껏 말없이 있던 다현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연수 형은 우리를 차례로 보며 말을 이었다.
“십 대 후반이 타임워커로 발현하는 것도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치는 마당에, 그 여자애처럼 어린 나이대에 발현한 케이스는 없어. 그 여자애, 잘 쳐 줘야 초등학교 저학년처럼 보였다며?”
해솔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수 형이 말했다.
“그러니까 타임워커는 아닐 거야. 애초에 그 나이에 간절하고 절박하게 시간을 돌리고 싶어할 일이 뭐가 있겠어?”
그 말을 듣던 해솔의 표정이 묘해졌다.
연합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바는 아니지만 타임워커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도는 가설이 있었다. 타임워커가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은, ‘특정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하게 바랄 때’라고.
이를테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 몇 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강렬하게 바란다거나,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텐데 하고 바란다거나.
해솔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일들이 나이를 가려서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세상엔 별의별 삶이 있으니까, 모르는 일이죠.”
연수 형이 잠시 해솔을 멀뚱히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만 네 말대로 ‘우리가 모르는 일’이 얽혀 있는 것 같기는 해.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 아니라 누군가 고의적으로 기록을 지웠다던가, ‘만물의 눈’이 몰래 빼돌린 끄나풀이라던가.”
잠자코 듣고 있던 다현이 입을 열었다.
“....... ‘만물의 눈’이요. 생각보다 한국에 더 깊이 침투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다현은 확실하지도 않은 추측을 입에 올리는 성격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 말에는 한층 무게감이 더해졌다.
연수 형이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사전 조사관이 가져온 수사 기록을 보면, 모든 준비가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지. 테러에 사용된 덤프트럭이 도난당한 시점도 생각보다 더 오래 전이었고, 테러 후에도 경찰이 아무런 단서를 잡지 못했던 것도 그렇고.”
그 말이 시사하는 바는 명백했다.
“그러니까 이건, ‘만물의 눈’이 이미 한국에 뿌리내린 지 제법 되었다는 뜻이야. 이 정도로 오래 심혈을 기울였다면…….”
연수 형이 덤덤히 내뱉었다. “청파대교는 아마 시작에 불과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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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찰나 누군가 방문을 작게 노크했다.
나는 이 노크 소리의 주인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방문을 열자 다현이 눈앞에 서 있었다.
“잠깐 들어가도 되지?”
나는 방 안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응, 그럼.”
다현이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조용히 닫았다.
달칵. 문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확인한 다현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오늘은 별일 없었어? 들키지는 않았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다행이다. 애들이 작전 한 번 나갈 때마다 수명이 30년은 줄어드는 기분이야.”
다현이 앉을 수 있도록 작은 의자를 끌어다 놓으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비밀 때문에 늘 다현이 덩달아 고생이었다.
다현이 의자에 앉았고, 나는 내 침대 발치에 걸터앉았다. 몸을 등받이에 기댄 다현이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효신이가 아까 뭐라고 하더라. 왜 항상 너한테만 백업을 맡기냐고. 너만 꿀 빠는 것 같아서 얄밉대.”
딱 효신이 할 법한 소리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백업도 마냥 편한 건 아닌데.”
“그래도 직접 작전 뛰는 것보다야 훨씬 낫잖아. 효신이가 너 다음 작전에는 무조건 끌고 가겠대.”
다현의 말에 나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
“나도 안 가고 싶어서 안 가는 건 아닌데. 나는 가고 싶어도 못 가잖아.”
다현이 마주 웃었다. “그렇지. 너는 못 가지.”
희미한 스탠드 불빛이 방 안에 일렁였다. 청파대교 작전 당시 영상에서 보았던, 연수 형과 해솔이의 얼굴 위로 일렁이던 주홍색 불빛이 그 위로 겹쳐 보였다. 그 둘을 둘러싸고 타오르던 맹렬한 불길도.
나라고 그 짐을 나눠 지고 싶지 않은 게 아닌데.
나도 같이 힘들어하고, 같이 울고, 같이 땀을 닦으며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정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나는 현재가 아닌 시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그 어느 시간대도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오직 현재만을 살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타임워커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