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 진압을 위한 지침서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본 문서는 20XX년 2월 14일 오전 7시 경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발생한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를 구제하기 위한 작전의 지침서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숙지하시어 작전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침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 연합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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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 (이하 발렌타인 테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의 예성1동 성당에서 발생한 테러를 뜻합니다. 20XX년 2월 14일 오전 7시 경, 새벽 미사가 진행 중이던 예성1동 성당의 본당 건물 내부에서 유독 가스가 퍼지며 미사를 주관하던 사제와 신자 43명이 전원 사망하였습니다.

미사가 거행되는 본당 내부에는 CCTV가 제한적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그마저도 2월 14일 전후의 기록이 소실되어 사건 당일에 관한 정보가 몹시 적은 상황입니다.


정황 상 극단주의 종교단체 ‘만물의 눈’의 소행으로 추정되나 확증은 없습니다. 테러를 저지하여 민간인을 생존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시되, 테러의 배후에 관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타임워킹 준비를 마친 후, 트리거를 시행하여 20XX년 2월 14일 오전 6시 30분 경으로 향하십시오.


예성1동 성당에 진입하기에 앞서 아래의 수칙을 숙지하십시오.


1. 세례명을 준비하십시오.

예성1동 성당은 외부인의 방문을 비교적 호의적으로 맞이하는 편이나, 성당 입구에서 사무를 보는 인원이 입장 전 세례 여부를 확인할 것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다’ 라고 답할 경우 방문의 목적을 별도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되므로 세례명을 미리 준비하는 것을 강력히 권고드립니다.


1-1.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그 외의 모든 개신교 분파에서 인정되는 유효한 세례를 받았을 경우 해당 세례명을 활용하시면 됩니다. 이름-세례명의 순으로 자신을 소개하십시오. (예: 허연수 프란체스코, 박세민 안토니오)

본래 거주지 인근에 다니던 성당이 있으나 오늘 하루만 예성1동에 방문할 일이 생겨 본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응답하십시오. 사무 보조 인원은 웃으며 본당의 입구로 안내할 것입니다.


1-2.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그 외의 모든 개신교 분파에서 인정되는 유효한 세례를 받지 않았을 경우 성당 진입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천주교구에서 제공하는 ‘세례명 찾기 서비스’ 또는 검색 엔진 등을 활용하여 본인의 생일을 입력한 뒤, 해당 날짜를 축일로 삼는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준비하십시오. 이때 본인의 성별과 다른 세례명을 선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십시오. 본인의 성별과 다른 세례명을 응답한다면 신자들은 알아차릴 것입니다.


2. 성당 진입에 성공하였다면 즉시 퇴로를 확보하십시오.

사건 당일 예성1동 성당의 본당 내부에는 짙은 농도의 유독성 가스가 유출되어 있었으며, 외부로 통하는 모든 문과 창문이 폐쇄되어 있었습니다. 피해자들 중 대부분이 창문과 문 인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연합에서는 테러에 가담한 자가 고의적으로 출입구를 봉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첨부드린 약도를 활용하여 아래의 통로 중 최소 1개 이상을 열린 상태로 확보하십시오. 모든 인원이 본당에 진입한 이후 통로의 상태를 확인하십시오. 누군가 통로를 폐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즉시 저지하십시오.

중앙 주 출입구 1개, 전면 보조 출입구 1개, 후면 보조 출입구 1개, 양 측면 창문 8개


중앙 주 출입구와 보조 출입구는 나무 장식이 덧대어진 철문으로, 잠금 장치가 고정되어 있을 시 물리적으로 여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유사 시 창문을 깰 수 있는 장비를 지참하십시오. 큰 가방을 들고 본당에 진입할 시 가벼운 소지품 검사를 진행하므로, 작은 가방 안에 충분히 숨길 수 있는 차량 탈출용 소형 망치를 권고드립니다.


3. 천주교식 미사의 예법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피십시오.

유독성 가스는 본당의 내부에서부터 유출된 것으로 파악되므로, 테러에 가담한 자는 가스를 살포하는 시점에 반드시 본당의 내부에 있을 것입니다. ‘만물의 눈’은 로마 가톨릭의 교리 및 예법 일부를 차용한 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아무리 천주교 신자를 감쪽같이 가장하고 있다 할지라도, 평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드러내고야 마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할 것입니다. 미사 도중 남들과 조금씩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면밀히 살피십시오. 아무리 작고 사소한 위화감이라 할지라도 큰 단서가 될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4. 3번 항목과 관련하여, 아래에 서술된 천주교식 미사의 기본 예법을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용의자를 식별해내는 동시에 주위 신자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함입니다.


미사 입장 시 성수를 찍어 성호를 그으십시오. (퇴장 시에는 성호를 긋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사가 무사히 끝나 본당을 퇴장할 일은 없을 것이므로 참고 차 알아 두십시오.)

입구에 놓인 주보와 성가집을 챙기십시오. 기도문을 외거나 성가를 부를 때 해당 서적들을 참고하시어, 기도문과 가사를 전혀 모른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봉헌과 영성체 시간을 제외하면 중앙 통로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본당의 양 옆 가장자리에 난 통로만을 사용하십시오.

봉헌과 영성체 시간에는 다른 신자들을 따라 줄지어 앞으로 나아간 뒤, 앞선 신자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십시오.


5. 본당 내부와 연결된 밀폐된 공간을 확인해 주십시오.

예성1동 성당의 본당 내부에는 아래와 같은 2개의 밀폐 공간이 존재합니다.


본당 후면의 유아실

본당 측면의 작은 문과 연결된 고해성사실


외부에서는 해당 공간들의 내부를 완전히 살피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미사 도중 해당 공간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는지를 함께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테러에 가담한 자가 해당 공간에 숨어 있지는 않은지, 해당 공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추가적으로 희생되는 사람은 없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5-1.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경우 5번 항목에서 선술된 밀폐 공간으로 향하십시오.


지침서의 내용이 유출, 훼손, 조작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지체 없이 본부에 문의하십시오.

무탈한 모습으로 현재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과실이 있는 곳에 책임도 있나니,

당신의 시간에 행운이 깃들기를. 단결.

- ITA 아시아 연합본부 본부장, 리 치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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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신아, 너 어릴 때 성당 다녔다고 하지 않았어? 언니랑 같이.”


해솔이 입을 열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효신을 돌아보았다.


효신은 말없이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렇긴 한데…… ”


말끝을 흐리던 효신이 별안간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켜 보이며 눈을 크게 떴다.


“....... 설마 나보고 가라고? 이거 내가 가야 돼?”


다시 한 번,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효신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라고? 진짜?”


“우리는 미사 잘 몰라서. 한 번이라도 참여해 본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연수 형이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내뱉었더라면 씨알도 안 먹혔을 부탁을 부드럽게 강요할 때 짓곤 하는 미소였다.


“아아! 왜 또 내가 가! 청파대교 직전까지 나 4연속 작전 뛴 거 다들 잊어버렸어?”


“너 아니면 누가 가, 이효신 마리아.”


“입 다물어 서해솔! 그리고 그거 내 세례명 아니야!”


“이제 오빠 소리는 아예 빼기로 한 거야?”


효신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해솔과 대거리하는 난장판 사이로 연수 형이 달래듯 끼어들었다.


“효신아, 이번만 부탁할게. 다음 작전은 무조건 너 열외로 하자. 대신 이번에는 너랑 같이 갈 사람 네가 직접 정해.”


그 말을 듣자 내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쩐지 내가 가게 될 것만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한층 짙어졌다.


그때 줄곧 조용히 있던 다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5-1번 항목 있잖아. 이게 다야?”


그 말에 우리는 화면에 띄워진 지침서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경우 5번 항목에서 선술된 밀폐 공간으로 향하십시오.


“뒤에 다른 말이라도 뭐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한 줄만 딱 적혀 있어서는 좀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 가서 어떻게 하라는 말이 안 적혀 있네.”


해솔이 말했다. “.......트리거를 행하라는 건가. 여차하면 아무도 안 보는 곳으로 도망가서 현재로 귀환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연수 형이 그 문장을 빤히 바라보더니 덧붙였다. “일단 내가 본부에 문의해 볼게. 어차피 내일쯤 데이비드 씨가 오시기로 했으니까, 데이비드 씨한테 물어봐도 되겠다.”


그러고는 연수 형이 효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효신아, 작전 누구랑 가고 싶어?”


잠시 앙다물려 있던 효신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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