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영은사 방화 구제 작전 (1)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그니까 부처님 오신 날 전날에, 인왕산으로 템플 스테이를 하러 들어가서, 사주 보는 사람 흉내를 내거나 귀신 보는 척을 하라 이거지. X나 끝내주는 계획인데.”


해솔이 비웃는 투로 내뱉었다.


“불경하기 짝이 없네. 부처님이 노하셔서 벼락이나 안 내리시면 아주 다행이겠어.”


그러나 연수 형도 비협조적인데다 오만하기까지 한 ITA 지부장들을 대한 경험이 수 년이었다.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연수 형은 이렇게 받아쳤다. “부처님이 설마 그런 걸로 벼락을 내리시겠어, 자애와 인자의 상징이신데. 그리고 실제로 사주 봐 주시는 스님들도 얼마나 많이 계신데. 그게 왜 불경이야?”


효신이 해솔을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오빠 진짜 귀신 본 적 없어?”


해솔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없어.”


“왜?”


“....... 여기서 왜냐는 질문이 왜 나와? 귀신 안 보는 데에도 이유가 필요해?”


턱을 괸 효신이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아니, 그렇게 생겨서는 귀신이 안 보인다는 게 더 신기해서.”


해솔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생겨서는’?”


“오빠 얼굴에서 냉기가 뚝뚝 흐르잖아. 아니 보통은 음기라고 하나? 아무튼.”


둘 사이의 대거리가 길어질 것 같자 연수 형이 효신의 입에 감자칩을 멋대로 물려 주며 말했다.


“근데 해솔아. 너 어릴 때 절 다녔었어?”


그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 안의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해솔이 서늘한 눈매를 내리깐 채 입을 다물어 버린 탓이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다소 당황한 듯 보인 연수 형을 향해, 해솔이 뒤늦게 말했다.


“....... 지침서에는 정확히 누가 절 다녔다는 말은 없었는데. 왜 저라고 생각했어요?”


연수 형이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했다. “세민이는 무교인 거 내가 아니까. 네가 예전에 뭐 절 다니네 비슷한 소리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자 해솔이 내 쪽을 아주 잠시간 힐긋 보았다. 일 초도 되지 않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눈빛은 내가 해솔의 눈치를 살피게끔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는다는 투로, 해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다니긴 했어요. 중학생 때쯤에 잠깐.”


그건 분명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짧게 언급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캐묻고 싶은 사실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쯤에서 그냥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


작전은 이튿날 아침으로 정해졌다. 백업은 효신, 그리고 때마침 한국에 머물고 있던 데이비드 씨가 함께 서 주기로 했다. 데이비드 씨와 함께하면 상세한 사전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이 바로 백업 모니터링에 투입할 수 있어 편했다. ‘빅 브라더’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그는 뉴욕 본부에 들어앉은 채로도 태평양 건너 한국 지부에 일어난 일을 이미 상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우리보다도 사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불이 시작된 지점이 제일 안쪽이라며? 이름이 뭐더라, The Hall of Medicine Buddha?”


데이비드 씨의 말에 연수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한국어로는 약사전이라고 해요.”


“그런데 내가 살펴본 바로는 화재 양상이 좀 이상하다던데. 목격자들 말로는 꼭 그 전각이 저절로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바닥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타오른 불이 전각을 삼켜 버린 것처럼 말이야.”


데이비드 씨는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그놈들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꼭 ‘천벌’이라는 느낌을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 같지 않나?”


천벌.


연수 형은 자못 놀랐다는 투로 말했다. “....... 그런 정보는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도 모르고 있던 건데.”


데이비드 씨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래서 백업에 나만한 인재가 또 없지. 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내 손바닥 안이니까. 마음먹으면 너희들 일기장까지 볼 수 있다고.”


누군가 웃으며 거들었다. “그래서 일기는 이제 수기로 쓰려고요. 전자화된 문서는 믿을 수가 있어야죠.”


“빅 브라더의 시대에 걸맞는 발상이군.” 데이비드 씨는 양 소매를 걷었다.


“자, 준비됐으면 이제 가지.”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효신과 데이비드 씨는 모니터링실로 향했고, 해솔은 며칠 전의 과거로 향했고, 다현은 사건의 맥락이 적힌 쪽지를 들고 과거의 나를 몰래 찾아와 작전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나는 어김없이 나만을 위한 방에 들어앉아 커튼을 치고 문을 걸어잠갔다. 그런 다음 안락의자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쏟아져 들어오는 새로운 기억을 되짚었다.


-


저녁 나절의 사찰에서는 가느다란 목탁 소리와 불경 읊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래 나와 해솔이 만나기로 한 장소는 사찰 정문 앞이었다. 그러나 약속된 시간보다 15분이 더 흘렀지만 해솔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별 수 없이 먼저 절의 입구로 들어가 템플 스테이 등록 절차를 마치고 해솔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솔이 빠른 걸음으로 사찰의 정문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해솔이 미안하다는 표시인 듯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원체 하얀 편인 해솔의 얼굴은 숫제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눈가는 살짝 붉었다.


대체 트리거가 뭐길래 타임워킹만 했다 하면 애가 저렇게 수척해질까.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어색함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 일단 숙소로 가서 짐 먼저 풀자.”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는 나를 해솔이 제지했다. “그 방향 아니야.”


내가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해솔은 휙 앞장서며 말했다.


“거기는 아닌 거 확실하잖아. 딱 봐도 예불 드리는 전각처럼 생겼는데.”


“어떻게 알아?”


“....... 나 절 다녔다고 했잖아.”


해솔의 말에 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의 나는 해솔이 절에 다닌 적 있다는 사실을 듣기 전이었으니까. 과거로 찾아온 다현이 전해 준 쪽지에, 해솔이 절에 다닌 적 있다는 언급 같은 건 없었다.


내 얼굴을 힐긋 본 해솔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뭐야? 바로 어제 말했는데도 기억이 안 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해솔은, 이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툭 내뱉었다.


“진짜 기억 못 하나 보네. ……. 하긴 형은 항상 그랬지. 자기한테 중요하지 않은 건 그냥 잊어버려.”


그 말에는 뼈가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새 까먹었냐고 핀잔을 듣는 건 작전을 참여할 때면 으레 있는 일이었다. 현재의 기억을 모두 가진 채 과거로 향하는 다른 애들과는 달리, 나는 과거에 머무르던 상태 그대로 다현이 건네 주는 짧은 정보에만 의존해야 했으니까. 다른 애들이 현재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같은 건 알 도리가 없었다. 그건 내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었으니까.


다만 방금 해솔의 말은 그걸 감안하더라도 조금 더 의미심장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 목소리는 꼭……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심 상처를 받은 듯한 목소리였다.


-


템플 스테이 이용객의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은 사찰의 다른 전각들과 마찬가지로 1층짜리로 된 전통 목조 한옥이었다. 우리는 오른쪽 방에 짐을 내려놓았다. 왼쪽 방은 아직 사람이 들지 않아 텅 비어 있었다.


“이 옆방이 그 경찰 방이겠지?”


내가 말하자 해솔이 중얼거렸다. “아직 안 들어왔나 본데.”


“그럼 우선 절 다른 곳이라도 좀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볼까.”


해솔은 대답 대신 나를 지나쳐 방문을 휙 열어젖혔다. 해솔이 나를 스쳐 지나가자 라벤더 같기도 하고 섬유유연제 같기도 한 향이 훅 코끝에 끼쳐 왔다.


해솔에게선 어울리지도 않게 항상 좋은 향이 풍겼다. 얼굴은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제압할 수 있을 것처럼 서늘하게 생겨선 이상하게도.


나는 그 잔향을 뒤따라 방을 나섰다.


저녁 예불을 드리는 모양인지 중앙의 커다란 전각 안에서 수십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겹쳐 들려왔다. 덕분에 절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우리 외에는 없었다.


커다란 나무 기둥 뒤에 선 해솔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뺀 채 전각 안을 살폈다.

나도 함께 전각 안으로 시선을 주었다. 묵직한 금빛을 띄는 불상 셋이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뭐 이상한 점이라도 보여?”


잠시 전각의 문 너머를 응시하던 해솔이 답했다. “....... 아니. 별다른 건 안 보여. 사람 제일 많은 중앙 대웅전에다 영역표시할 깡은 못 됐던 모양이지.”


몸을 물린 해솔은 다른 전각이 있는 쪽으로 망설임 없는 걸음을 내딛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불경 소리가 들려왔고, 머리 위로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걸어 둔 연등이 바람결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낮은 불경 소리가 우리의 뒤를 희미하게 좇아 왔다.


영은사의 전각은 총 세 곳이었다. 방금 지나쳐 온 대웅전, 조금 더 안쪽의 화엄전, 그리고 불이 최초로 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사전. 대웅전을 지나자 그렇지 않아도 적막하던 주위는 한층 더 고요해졌다. 대웅전 너머의 공간으로는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탓이었다.


우리는 주위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화엄전과 약사전을 순서대로 둘러보았다. 그러나 리 치앙 씨의 지침서에 적혀 있는 것과 같은 ‘이상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보다 조금 더 조예가 깊을 해솔 역시 딱히 눈에 띄는 점은 없다고 답했다.


약사전에서 뒤돌아 나오며 내가 말을 꺼냈다. “사실 연합에서 추측하는 것처럼 경찰이나 다른 외부인의 소행이면, 절 안에는 별다른 표식이 없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만물의 눈’은 가뜩이나 자기들 흔적 남기기 싫어하고, 굳이 시간을 들여서 표식을 남기다가 들킬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고.”


해솔이 무심히 답했다. “다 털어 봤는데도 절 자체에는 이상한 점이 없으면 외부인 소행이라는 게 조금 더 확실해지겠지. 일단 아직 안 본 공간도 있으니까…….”


두어 걸음 앞서 걸어가던 해솔이 천천히 멈추었다. 덩달아 해솔의 목소리 역시 천천히 낮아졌졌다.


“....... 거기까지는 봐야지.”


저만치를 응시하던 해솔이 한결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나는 해솔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공양간, 그러니까 식당을 겸하는 공간 쪽에서 한 스님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못 본 체하고 얼른 자리를 피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주위에 움직이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덕분에 우리는 쉽사리 시선을 잡아끌었다. 우리를 발견한 스님이 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감해졌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예불이 한창이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이 진행될 시간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외부인이 여간해서는 발을 들이지 않는 절의 가장 안쪽이었다. 이곳에서 뭘 하고 있었냐고 캐묻는다면 답변이 궁해지기 십상이었다.


우리를 향해 합장을 한 스님이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두 분 법우님들. 계속 두리번거리고 계시던 듯한데, 혹시 길을 잃으셨는지요?”


해솔은 표정 변화 없이 손을 모아 합장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태연자약히 입을 열었다.


“저희는 템플 스테이로 왔습니다. 숙소를 막 배정받았는데 방에 이불이 모자라서요. 어디에 말씀드려야 하나 헤매고 있었습니다.”


유순한 인상의 스님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말했다.


“아, 그러셨군요. 보통 인원수에 맞춰서 침구류를 넣어 드리는데. 템플 스테이 담당 사무실은 어린이법당 옆에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나요?”


“네, 길은…….”


내가 길을 안다고 말하고 얼른 빠져나가려는데, 해솔이 무슨 생각인지 선수를 쳤다.


“아뇨, 어린이법당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네요. 혹시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스님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인근으로 가고 있었답니다. 따라오시지요.”


스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나는 해솔을 힐긋 보았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해솔이 작게 소근댔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일단 전부 유의깊게 봐야지. 혹시 모르잖아.”


자박자박 모래를 밟는 스님의 발걸음 뒤로 우리의 경계에 찬 발자국이 점점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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