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두 분은 친구 사이신가요?”
앞서 걸어가던 스님이 우리를 뒤돌아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물었다.
나는 잠시간 망설였다. 긍정하자니 해솔이 미미한 불쾌감을 드러낼 것 같았고, 부정하자니 그건 그것대로 해솔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사이 해솔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후배 사이예요.”
그 담백한 대답에는 친한 사이라거나 하는 공치사는 조금도 붙지 않았다.
스님이 호의 어린 눈길로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대학 선후배이신가 보네요. 저는 남들 같은 대학 생활을 해 보질 못해서 그런 게 항상 부럽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스님의 얼굴은 제법 젊어 보였다. 많아 봐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처럼 보이는 그는 넓게 잡으면 우리와 또래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내가 물었다. “불가에 몸담으신 지 얼마나 오래되셨나요.”
스님이 답했다. “이제 햇수로 딱 10년이 되었네요.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요. 두 분은 어떤 번뇌가 있어 이곳을 찾으신 건가요, 아니면 그냥 마음 누이고 쉬고 싶어 오셨나요?”
그 목소리는 산중의 새가 조용히 지저귀는 듯했다. 스님을 잠시간 바라보던 해솔이 입을 열었다.
“제가 형을 끌고 왔어요. 요 근래 눈코뜰 새 없이 바빠서 좀 쉬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저는 원래 절을 조금 다녔거든요.”
스님은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역시 법우님이셨군요! 새로운 인연과 함께 오시니 기쁘네요.”
우리는 스님의 뒤를 따라 화엄전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섰다. 스님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을 내딛으며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작은 법우님께서는 절을 원래 다니셨다고 했죠. 가족들 덕에 덩달아 다니시게 된 건가요?”
해솔이 말했다. “....... 처음은 할머니 손에 이끌려 갔죠. 조금 더 머리가 큰 이후로는 그냥, 좀 쉬고 싶을 때마다 제가 알아서 다녔고.”
잠시간 우리는 말이 없었다. 앞서 걸어가던 스님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 세상 살이가 쉽지 않지요. 저도 출가를 꽤나 어린 나이에 했는데, 출가하기 전까지 이런저런 일들이 참 많았어서 원래 삶이란 이런 걸까 하고 그 어린 마음에 깊게도 번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해솔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 스님은 앞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하시지요? 법우님 이야기를 들으니 어린 날의 제가 겹쳐 보여 그렇습니다. 사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절을 찾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쉬고 싶어서’ 절을 찾으셨다면, 모르긴 몰라도 법우님의 지난날에도 이런저런 힘든 일이 참 많았겠구나 싶습니다.
스님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속세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제발 누구라도 나에게 답을 주었으면 좋겠고, 누가 좀 살려 주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 절박한 마음으로 찾게 되는 마지막 장소가 절이니까요. 실제로 그렇게 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도 하고요.”
스님은 이윽고 완전히 멈추어 섰다. 살짝 몸을 돌려 우리를 바라본 스님이 해솔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제가 감히 말을 얹을 문제는 아니지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지독하게 꼬여 있던 매듭이 풀리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요.”
스님의 얼굴에서 그릇된 감정이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만큼 선량한 얼굴. 속세를 등진 자에게서 보이는 깃털 같은 초연함.
해솔은 잠시 아무 말 않고 스님을 마주보고 있다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이 다시 몸을 돌려 앞서 걸어가며 한층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네요. 밥 짓는 연기도 올곧게 올라가고, 가까운 산이 평소보다 멀리 보이는 걸 보니 내일 아침에는 날이 맑겠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의 맑은 인상은 그가 입에 담는 말이 무엇이든 어련히 까닭이 있으려니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맑은 봄날이니 새벽 약수를 뜨러 가기 딱 좋겠네요. 저희 사찰은 약숫물을 떠다 마시거든요. 제가 제일 젊은 축이라 약수를 뜨러 가장 많이 가곤 한답니다. 아, 내일 약수를 떠 오면 조금 드릴까요? 한번 맛보시겠어요?”
스님은 우리에게 친근하게 물어 왔다. 나는 옅은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그가 떠 온 약숫물을 우리가 맛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 사찰은 오늘밤 송두리째 불타 버릴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스님의 무구한 웃음이 눈에 들어찼다. 그는 오늘밤 목숨을 건지는 쪽이었을까, 불길 속에서 명을 다하게 되는 쪽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내일의 날이 맑은지, 흐린지 알 수 없게 될 운명일지도 몰랐다. 내일의 약수를 맛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영영 다시는 맑은 날을 볼 수 없고, 약수를 맛볼 수 없게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다가올 미래를 아는 상태로, 다가올 미래를 모르는 사람과 같은 시간대에서 마주하는 일은 이름 모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내 걸음을 멈춘 스님이 저만치 현대식 한옥으로 된 작은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쪽이 어린이법당입니다. 오른쪽에 보면 작게 난 창문과 문이 있는데, 그 창문이 사무실과 연결된 안내 데스크예요. 거기에 침구류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면 잘 해결해 주실 겁니다.”
해솔은 스님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감사합니다, 스님. …….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씀하시지요.” 스님이 여전히 인자한 얼굴로 부드럽게 답했다.
해솔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스님은 법명이 어떻게 되시나요?”
의외의 질문이었다는 듯 스님이 유순하게 눈썹을 들었다. 해솔이 덧붙였다.
“이렇게 만나뵌 것도 인연인데. 저와 연을 맺으신 스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기억할까 해서.”
해솔의 입에서 매끄러운 문장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같이 서 있는 나조차도 헷갈릴 만큼 친절하고 입바른 투로 들렸다.
눈을 깜빡이던 스님이 이윽고 웃으며 답했다.
“패명(唄鳴)입니다. 염불 패 자에 소리낼 명 자를 씁니다. 염불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어 널리 퍼뜨리는 불자가 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좋은 뜻이네요.” 해솔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처럼 보여주는 법이 없는 그 미소가 내게는 어쩐지 집에서와는 정반대인 형제자매의 사회생활을 목격한 것마냥 오싹하게 느껴졌다. 해솔이 저렇게 웃을 줄도 알다니.
해솔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스님. 외람된 질문일 수 있지만, 혹시 본래의 이름은 무엇이셨나요?”
찰나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절을 둘러싼 산에서부터 들려온 새 지저귀는 소리가 선연히 귓가를 간질였다.
자애로운 미소를 짓던 스님이 고개를 살살 저으며 말했다.
“하하, 출가한 이후에는 속세의 이름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랍니다. 옛 이름은 이미 모두 지워 버렸지요.”
“그런가요? 저는 따로 법명을 받은 바가 없고 본명만 쓰고 있거든요. 스님의 본명은 무엇이셨을까 궁금해서 여쭤보았습니다.” 해솔이 어깨를 으쓱였다.
스님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또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옅은 웃음을 드리운 채 천천히 답했다.
“별것 있나요. 출가 이전의 저는 부처님 말씀을 소리내어 말할 줄 몰랐으니, 제 법명에서 목소리를 빼앗기면 그것이 속세의 이름이지요.”
불가의 일원답게 심오하면서도 우리 귀에는 살짝 아리송한 비유였다. 해솔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패명 스님.”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해솔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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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빼도박도 못하게 됐네. 이 상태로 더 돌아다니다간 괜히 의심만 살 테고.”
사무실에 들러서 받은 침구류를 양 손으로 든 채 해솔이 차갑게 내뱉었다.
친절해도 너무 친절해서 문제인 패명 스님은 우리가 어린이법당 옆의 템플 스테이 사무실을 제대로 찾아가는지 확인까지 한 후에야 손을 흔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꼼짝없이 템플 스테이 사무실의 안내 데스크로 찾아가 침구류가 하나 모자라다는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
사무실의 직원은 지금이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 진행 시간 아니냐고 물었고, 대답이 궁색해진 우리는 떠오르는 대로 ‘컨디션이 별로라 숙소에서 쉬려고 한다’라는 핑계를 대 버렸다. 그 덕에 해솔의 말대로 ‘빼도박도 못하고’ 숙소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아까 그 스님 보자마자 도망칠걸 그랬어.”
내가 말하자 해솔이 받아쳤다. “그래도 이왕 생긴 기회인데, 한 사람이라도 더 말 섞어 보면 좋지. 누가 범인일지는 아직 모르는 건데.”
문득 아까의 일이 생각난 나는 해솔에게 물었다. “아까 그 스님 법명은 왜 물어본 거야?”
해솔이 픽 웃었다. “말했잖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름이 궁금했다니까?”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그럼 본명은 왜 물어봤어? 뭐 걸리는 거라도 있었어?”
“딱히 수상해 보여서 그런 건 아니고. 말했잖아, 혹시 모르니까.”
해솔이 약간의 틈을 두고 덧붙였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연합에서 뒤를 털려면 법명보다는 본명이 편하지. 모든 행정처리에는 본명이 필요할 텐데. 결국 본명이 뭔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스님의 맑디맑았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런 사람을 앞에 둔 채 웃으며 뒤로는 연합을 통해 그 사람을 조질 가능성을 고민하다니, 어떤 면에서는 효신보다 해솔이 무섭기도 했다.
해솔과도 척지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나는 홀로 생각했다.
어느덧 해는 완전히 져 버리고, 늦은 저녁의 어스름이 사찰 전체에 깔리고 있었다. 산중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지는 듯했다.
숙소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틀며 내가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해솔이 무신경하게 툭 내뱉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들어가야지.”
“숙소로 그냥 들어가자고?”
내 말에 해솔이 장난하냐는 듯 힐긋 시선을 주었다. “옆방으로 들어가야지. 숙소에서 방 이동하는 것 정도는 모를 거 아냐. 무슨 수로 잡아내겠어?”
해솔이 턱짓으로 가리켜 보인 곳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우리 방 바로 옆에 난, 창호지가 발린 작은 문이었다.
그 사람도 숙소에 있나 보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나와 해솔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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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오기는 왔는데. 뭐라고 하면서 들어가지?”
문을 앞에 두고 인기척을 내기 직전, 나는 해솔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냥 옆방인데 인사하러 왔다고 해?”
“그건 너무 수상한데.”
“혼자 오셨냐고 물어봐?”
“무슨 헌팅 나왔어? 여기가 해운대야?”
“....... 혹시 치약 있으시냐고 물어볼까? 깜빡하고 안 가져왔는데 빌려 달라고.”
해솔은 기가 찬지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나는 문가에 가만히 서서, 해솔은 팔짱을 낀 채로 고민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솔이 예고 없이 퍼뜩 고개를 들더니 중얼거렸다.
“생각났어.”
그러고선 해솔이 냅다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흠칫 놀란 나는 해솔의 손을 잡아 막아세웠다.
“뭐라고 할 건데? 나한테도 말해 줘야지.”
“일단 따라서 들어와 봐. 생각이 있으니까.”
문간에 노크를 하기 직전, 해솔이 내 쪽을 향해 빠르게 읊조렸다. “적당히 장단이나 잘 맞춰. 말은 내가 할 테니까.”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그 길로 해솔은 문을 톡톡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례합니다. 계신가요?”
침묵이 흘렀다.
우리가 다시 인기척을 내기 직전, 방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잠긴 남자의 목소리가 안에서 새어나왔다.
“누구시죠?”
그 목소리에는 경계가 서려 있었다. 척 듣기에도 목소리의 주인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해솔은 일말의 동요도 없는 태평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옆방에 머물고 있는 학생들인데요,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나는 속으로 초를 세었다.
오 초쯤 지났을까, 남자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나무로 된 마루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창호지를 바른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반쯤 열렸다.
열린 문틈 너머로 시선을 주던 나는, 내 눈이 모르는 남자의 가슴팍 언저리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키가 컸다. 그것도 무척이나.
나와 해솔이 동시에 목을 치켜들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위압감이 흐르는 장신의 남자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결코 작은 키가 아님에도, 남자의 눈을 똑바로 보려면 고개를 꽤나 젖혀야 했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응시했다.
뒷목에 어쩐지 식은땀 한 줄기가 흐르는 것도 같았다.
“무슨 일이시죠?”
꼭 범인을 취조할 때나 쓸 것 같은 묵직한 목소리로 남자가 물었다.
나는 해솔을 곁눈질로 보았다. 냅다 방문을 열고 들이닥치자고 한 장본인은 어떠한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서늘한 눈매를 살짝 휘어 의뭉스러운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해솔이 말했다.
“이 방 안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서요. 법우님, 이 방 안에서 혹시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 보이지 않으셨나요?”
나와 남자는 동시에 해솔에게로 고개를 휙 돌렸다.
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해솔이 내뱉었던 ‘생각이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해솔이 남자의 어깨 너머를 뚫어져라 보며 걱정스러운 투로 내뱉었다.
“....... 법우님. 어깨에 삿된 것을 얹고 오셨네요.”
그러니까 이 녀석은, 귀신을 보는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