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영은사 방화 구제 작전 (3)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 법우님. 어깨에 삿된 것을 얹고 오셨네요.”


해솔이 의미심장하게 내뱉었다.


남자의 미간이 순식간에 오그라들었다. 그 험악한 기세에 나는 절로 움츠러들 뻔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남자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 문장이 우리에게는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라고 자연스럽게 번역되어 들렸다.


그러나 해솔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해솔은 서늘하기 짝이 없는 눈매를 들어 남자를 빤히 응시했다. 아니, 정확히는 남자의 어깨 위 허공을 응시했다.


“법우님. 어깨가 무겁지는 않으셨어요? 꽤나 오래 달라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거.”


호들갑 없이 무덤덤한 목소리가 도리어 섬뜩함을 더했다. 남자는 알 수 없는 소리에 기분이 상한 티를 숨기지 않으며 내뱉었다.


“이상한 말씀 자꾸 하실 거면 문 닫겠습니다. 전 사이비, 조상신 그런 거 안 믿어요.”


남자가 팔을 뻗는 것보다 해솔의 손이 문을 파고드는 것이 먼저였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손길로 문을 틀어잡은 해솔이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이 사이비를 믿든 안 믿든 저는 관심없고요. 제가 모계 쪽으로 신줄을 타고나서 영안이 좀 있습니다. 사실은 귀찮아질까 봐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어깨에 붙어 있는 그거 빨리 떼내지 않으면 상 치르겠다 싶어서 굳이굳이 와 본 거예요. 뭐 그래도 무시하시겠다면야 저는 별 수 없고.”


맹세코 해솔과 함께한 지난 세월 동안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다. 순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원체 차가운 인상인 해솔이 작정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어쩐지 그 말에 이유 모를 오싹함이 깃들었다. 이 말을 허투루 흘려보냈다간 큰일이 날 것만 같다는 예감을 주는 오싹함.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신줄이요? 영안이요? 그게 다 뭡니까?”


해솔이 차분히 답했다. “모계 쪽이 대대로 신을 모셔요. 무당을 하신다는 뜻이에요. 그 영향인지 저도 어려서부터 좀, 굳이 봐서 좋을 것 없는 게 자꾸만 보입니다. 원혼이라던가, 성불하지 못하고 떠도는 혼이라던가 하는 것들이요. 지금처럼요.”


해솔은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의 어깨 위를 가리켰다.


남자가 눈썹을 찡그린 채 해솔을 멀뚱히 보았다. 대관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 말을 믿어도 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해솔은 남자를 힐끗 보았다가, 남자의 어깨 너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어디 보자. 꽤나 젊어 보이니 조상신은 아닌 것 같고. 할 말이 분명히 있어 보이니 떠도는 잡귀도 아니겠고.”


뻔뻔하다 못해 놀랍기까지 한 연기력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정말 그 자리에 무언가 있구나 하고 착각할 법했다. 나는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을 감추었다. 해솔이 말한 자리에 있다는 귀신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해솔의 태연함이 무서워서였다.


남자가 굳어 버린 동작으로 자신의 어깨 위를 힐끔 훔쳐보았다. 이 정도로 자세히 말하니 정말 뭐라도 있는 건가 싶은 긴가민가한 얼굴이었다.


해솔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덫을 놓았다. “아하, 알겠다. 법우님 경찰이시죠?”


그 말에 남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티는 내지 않았으나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 분명했다.


걸려들었다.


그 뒤를 이어 차가우면서도 교묘한 해솔의 목소리가 남자의 귀를 파고들었다.


“척 보면 알아요. 말했잖아요, 무당 집안이라고. 꼬인 것을 바로 풀어 주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성공하는 형국이니 경찰이라는 직업은 잘 고른 것 같고. 포승줄도 보이니 타고난 것도 맞는 것 같은데……”


해솔이 손을 턱에 가져다댄 채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어깨에 달라붙어 있는 저게 걸린단 말이죠. 억울한 것 같은 표정을 보아하니 어쩌면,”


해솔은 남자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쐐기를 박았다.


“구하지 못했던 피해자라거나 뭐 그럴지도 모르죠.”


그 말에 남자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나와 해솔은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이 정도면 거의 넘어온 것 같았다.


가짜 무당 집안의 아들, 해솔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가서 말씀하시죠. 대화가 길어질 것 같으니.”


해솔이 거들었다. “그래요, 방 안도 좀 봅시다. 기운이 사특해서 옆방까지 흘러나올 지경이니까.”


-


누워서 쉬고 있었던 모양인지 방 안에는 이불이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주위를 눈으로 훑었다. 방화와 관련된 물건이 있는지, ‘만물의 눈’ 소속으로 의심할 만한 흔적이 있는지.


서둘러 이불을 걷어 치운 남자가 방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가 그 뒤를 따라 바닥에 마주 앉자, 남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 말씀해 주세요. 제 어깨에 붙어 있다는 사람, 어떻게 생겼는지.”


이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그에게는 정말로 마음에 걸리는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느낀 것을 해솔도 느꼈을 것이었다. 해솔은 다시 남자의 어깨를 빤히 보는 척하더니 술술 대답했다.


“이승을 떠나시고 시간이 제법 되셨나 보네요. 모습이 아주 뚜렷하지는 않아요. 다만 젊은 여자분인 건 알겠는데…….”


“젊은 여자요?” 남자가 말을 가로막고 되물었다. 그 물음은 정말 몰라서 묻는다기보다는 알면서 확인하는 투에 가까웠다.


당혹을 순식간에 감추어낸 해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떠오르는 분이 있으신가 보죠?”


해솔이 떠보듯 은근하게 물었고, 남자는 말을 잇지 못하더니 어렵사리 내뱉었다.


“혹시…… 혹시 여러 명인가요?”


걸리는 사건이 한두 개가 아니었나. 아니면 한 번에 여러 명의 피해자를 냈던 사건? 내가 조용히 생각을 거듭하는 사이 해솔이 말을 이었다.


“한 명뿐이에요. 일단은요.”


남자는 긴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머리를 감쌌다. 우리는 그가 스스로 입을 열기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머리를 금방이라도 쥐어뜯을 듯하던 그 남자는 느릿하게 고개를 다시금 들었다.


“........ 저를 미워하고 있나요? 아니면 저와 같이 저승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건가요?”


“죽이려는 건 아니에요. 일단 지금은 가만히 붙어 있기만 해요.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는 것 자체가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왜 법우님께 붙어 있는 건지, 원하는 게 뭔지는 자세히 이야기를 해 봐야 알겠는데요.”


해솔이 몸을 낮추어 남자 가까이 숙이며 입을 열었다. 기회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짐작 가는 사람이 있으신 거죠?”


다 알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목소리.


오래된 한옥의 작은 방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남자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소리만이 우리 사이 공기를 메웠다.


오랫동안 망설이던 남자가 이내 답을 구하는 눈빛으로 해솔을 보았다.


“....... 제 아내 같아요. 아니, 아내 될 뻔했던 사람이요.”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나와 해솔은 일순간 굳었다. 그러나 해솔의 표정 변화는 겉으로는 평소의 무감한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잠시 말을 갈무리한 후 해솔이 내뱉었다.


“세상을 떠나셨나 보죠? 불의의 사고로.”


“........ 네.”


남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아니, 잇지 못했다. 문 앞에서 마주쳤을 때까지만 해도 거대한 태산 같았던 그는 지금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래성처럼 보였다.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는 건 해솔의 전문 분야는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쉰 뒤 해솔 대신 목소리를 내었다.


“아내 분 떠나보내시고 한동안은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남자의 입에서 목이 멘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보다는…… 그 사람이 힘들었겠죠. 많이 아팠겠죠. 커피 끓이는 물에 살짝 데기만 해도 너무 아프다고 토로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뜨거운 불길을 어떻게 견뎠을지.”


불길. 나와 해솔은 다시 한 번 시선을 교환했다.

화마로 아내를 잃은 남자가 의문의 종교에 발을 들이고, 아내를 앗아 간 사고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분풀이한다. 아주 터무니없는 가정은 아니었다.


조금 더 캐 보라는 내 시선을 받은 해솔이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화재 사고였나요?”


“비슷해요.” 남자는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듯 말을 아끼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해솔은 한 번 문 것은 놓치지 않았다. “고의에 의한 방화였나 보죠? 아내 분이 이렇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곁을 계속 맴돌고 계신 걸 보면.”


그 말을 하며 해솔은 남자의 어깨를 다시금 힐긋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해솔의 철저함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남자가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한 자씩 내뱉었다.


“맞아요…… 고의에 의한 사고였죠. 아니, 테러였어요 그건.”


내 주의를 잡아채는 또 다른 단어가 튀어나왔다. 테러라니.


나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남자는 아랫입술을 이리저리 깨물다가, 끝내는 입을 열었다.


“코리아나항공 테러 사건 아시죠. 9년 전에 일어났던.

제 아내는 그 사건의 희생자였어요.”


코리아나항공.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이 딱딱히 굳었다.


온몸에 차가운 물을 뿌린 듯, 전신의 피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솔과 남자의 목소리가 어째서인지 아까보다 한결 더 먼 곳에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알죠. 인천에서 출발해서 파리로 가게 되어 있었는데, 경유지인 홍콩에서 사고가 났던 항공기. 거기에 아내 분도 계셨군요.”


해솔의 목소리가 웅웅댔다.


“맞아요. 두 달 후면 결혼식이었는데…… 범인은 잡히지도 않았고. 누구 짓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그날 이후로 영영 효영이를…….”


말을 이으면서도 목이 메는지 연신 말을 멈추는 남자의 목소리가 뒤를 이어 웅웅댔다. 이상했다. 분명 이 사람들은 내 옆과 앞에 앉아 있는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굽이쳐 들리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눈앞이 핑 도는 것 같았다.


“형?”


내가 고개를 떨구자 해솔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형, 왜 그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해솔이 내 팔을 붙들었다. 그제야 조금 정신을 부여잡은 나는 이마를 짚으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잠깐 어지러워서.”


해솔은 그제야 붙잡고 있던 내 팔을 놓아 주었지만, 여전히 눈에는 미심쩍은 기색이 가득했다. 남자는 텅 비어 버린 듯한 눈으로 그런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겠지. 귀신을 본다고 우리 입으로 말했으니 대충 신기 때문에 그러려니, 기운이 허약하려니 하고 알아서 합리적인 설명을 만들어낸 채일지도 몰랐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내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해솔은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 그 사건의 범인이 아직 안 잡혔으니, 정말 아내 분은 그것 때문에 여기 머물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남자가 회한 가득한 쓴웃음을 뱉었다. “그러게요. 명색이 경찰인데, 대체 구 년이라는 시간 동안 뭘 했는지.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노력했는데, 조금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걸 찾아 백방으로 돌아다녔는데…….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어요.”


속이 울렁거렸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의식적으로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겠지. 그 당시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기장과 승무원들을 포함해 전원이 사망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 누구도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내지 못했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저리쳐질 만큼 잘 알았다.


코리아나항공의 KO138 항공기가 상공에서 불꽃을 내며 터지던 순간,

나와 다현도 그 안에 있었으니까.


그날은 우리가 열일곱 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할 뻔했던 날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현이 간절히 내 손을 움켜쥐었던 날.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비행기를 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절박하게 외쳤던 날.


그리하여 처음으로, 다현이 자신의 타임워킹 능력을 깨닫게 된 날.


-


“효영이는…… 제 아내는 그 비행기의 승무원이었어요. 아내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 버리고 나서 얼마나 미친놈처럼 그 사건만 파헤쳤는지 몰라요.”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암만 파헤쳐도, 범인은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 짓을 한 4년 5년씩 하니까 조금씩 허망해지더라고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 이런다고 효영이가 돌아오지는 않는데.”


남자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시울은 어느덧 붉어져 있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무책임해진 걸 효영이도 알았나 봐요. 이렇게 옆에 찾아와서 붙어 있는 걸 보면요. 그렇죠? 저한테 정신 차리라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생각해서라도 진실을 밝히라고……. 그런 말을 하려는가 보죠. 효영이는 원래 그랬으니까. 성정이 올곧고, 나약한 소리는 안 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걸 싫어했으니까.”


해솔은 아무런 말이 없이 그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의 눈에서 기어이 감추어 두었던 미약한 눈물이 흘렀다.


“제가 정말 못났네요. 얼마나 내가 못미더웠으면 거기서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따라붙어서 답답해하고 있을까…….”


남자의 자세에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우리는 그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의연하게 참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던 해솔이 무감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질책하려고 오신 게 아닐 거예요.”


남자가 눈을 들어 해솔을 보았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영문을 몰라 하는 얼굴이었다.


해솔은 여전히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질책하려고 오신 게 아니라, 혼자서도 잘 버텨내고 있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뭐 그런 말을 하려고 오신 거예요.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인 기운은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보다는,”


남자를 위아래로 흘끔 본 해솔이 덤덤히 덧붙였다.


“....... 법우님을 많이 아끼셨던 것 같네요.”


아까는 사특한 기운이 옆방까지 퍼져 나올 지경이라고 했으면서,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태연히 말을 바꾸는 해솔이었다.


하지만 뻔뻔하다거나 웃기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해솔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름의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저 입에 발린 소리 한 마디를 못 하는 애가, 다정한 말을 입에 올리면 알러지 반응이라도 일으키는 줄 아는 저 애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그리고 그 위로는 확실히 남자에게도 먹힌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흔들리는 눈으로 해솔을 바라보더니, 이내 눈가를 훔치며 이렇게 말했다.


“.......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어서.”


소리 없는 훌쩍임이 방 안을 메웠다.


숨을 고른 남자가 천천히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효영이…… 제 아내가 어깨에 붙어 있는 게 저한테도 해가 된다고 하셨죠. 그럼 돌려보내야 하나요? 효영이한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해솔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얼마간 말이 없던 해솔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미련을 버리세요.”


남자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해솔은 힘주어 다시 내뱉었다.


“미련을 버리세요.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어떻게든 내 손으로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미련. 그런 것들이 혼을 불러들이는 미끼처럼 작용합니다. 그냥 지금까지 하셨던 대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세요. 그럼 아내 분도 알아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실 겁니다.”


당연한 듯 들리지만 명쾌한 말이었다. 해솔의 서늘한 눈빛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해솔을 보는 남자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붉어진 눈으로 해솔을 응시하다 이내 고개를 숙여 보이며, 남자가 말했다.


“........ 고맙습니다.”


나는 조용히 남자에게 티슈를 건넸다.


진짜 무당이네 신줄이네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온통 거짓말로 점철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해솔이 한 말에는 순전히 옳은 구석밖에는 없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소박하고 작은 방 안에서는 한동안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훌쩍임만이 새어나왔다.


-


방을 나섰을 때는 어느덧 이른 별들이 하늘에 총총 박혀 있었다. 내가 물었다.


“아닌 것 같지?”


주어도 없는 모호한 질문이었지만 나와 해솔, 모두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 응.” 무언가를 쉽사리 긍정하는 법이 없는 해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가 억지로 참았던 눈물을, 그럼에도 붉어졌던 눈시울을 기억했다. 그런 눈빛을 하고서 그런 눈물을 매달고 있는 사람이 범인일 리 없었다.


죽은 아내가 옆에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생각해서라도 진실을 밝히라고’ 말하러 온 게 아니겠느냐 묻는 성정의 사람이 이런 일을 벌였을 것 같지 않았다.


자신도 불우하게 사랑하는 이를 잃었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하는 이를 똑같이 앗아 갈 계획을 세웠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로써 다시 원점이 되었다. 해솔은 눈을 들어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형. 지금 몇 시야?”


“10시 13분.”


“한 시간 좀 안 되게 남았네. 범행 시각이 당겨질지 어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우리가 숙소로 사용하는 한옥과 똑같이 생긴 건너편의 한옥을 바라보았다. 방 하나에 불이 밝혀져 있었고, 자기들끼리 떠들다 킥킥대는 아이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디딤돌 위를 살폈다. 신발은 네 켤레였다. 어린이용 신발 세 켤레, 여성용 운동화 한 켤레.


기지개를 켠 해솔이 덤덤히 내뱉었다. “어쩔 수 없지. 몰래 돌아다녀 보자. 사찰 안쪽 마지막으로 한번 쭉 훑고, 돌아와서 저 숙소를 감시하든지 하자고.”


우리는 아까보다 한층 더 신중해진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내려앉자 사찰 내부는 한층 더 고요해졌다. 바깥을 나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그마저도 무언가를 옮기는 사무 보조 직원이나 다음날의 식자재를 미리 확인하는 공양주 보살 정도가 다였다.

조금 전과 같은 순서로 우리는 전각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큰 대웅전, 그 너머의 화엄전. 그러나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불상에 뭐 딱히 이상한 건 없어?”


내가 물으면 해솔이 답했다. “없어. 수인도 제대로고, 배치도 제대로고.”


“형, 거기 탱화 자세히 봐봐. 뭐 이상한 거 없어?”


해솔이 물으면 내가 답했다. “....... 없는 것 같아. 색도 제대로 되어 있고, 기괴하거나 이상하게 그려진 부분도 없고.”


그러니까, 사찰의 모든 것은 멀쩡했다.


불상은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있었고, 손 모양은 많은 불상들이 흔히 취하고 있는 손 모양이었고, 탱화의 색에도 문제가 없었다.


‘만물의 눈’이 남긴 흔적은 없는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리는 결국 사찰 가장 안쪽의 약사전으로 몰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살피며 해솔이 낮게 말했다. “이미 일주문은 닫혔다고 했지?”


내가 속삭였다. “정문 말하는 거지? 닫혔어. 밤 10시부터 출입을 막는다고 했으니까.”


“그럼 범인도 이미 사찰 안에 잠입해 있다는 소리인데.”


“정문 폐쇄 이후에 담을 넘는다거나 해서 몰래 들어왔을 가능성은 없나?”


앞서 걷던 해솔이 작게 말했다. “글쎄. 이제 보니까 담장도 꽤나 높아서 맨몸으로는 넘기 힘들 것 같은데. 뭐 의자나 도구 같은 걸 써서 몰래 넘으려고 해도 어떻게든 눈에 띄었을 것 같다는 말이지.”


그럼 범인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뜻인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연합에서 가장 의심했던 그 경찰의 소행이 아니라면,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어린애들을 인솔해 온 그 어린이집 교사일까? 그도 아니면,


“잠깐만.”


내 상념을 해솔이 잘랐다. 약사전 앞 모퉁이에서 불현듯 멈추어 선 해솔은 재빨리 전각의 측면 기둥 뒤로 숨어들어간 뒤 내 팔목을 냅다 잡아끌었다.


“쉿.”


해솔이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해 보였다. 나는 해솔이 시키는 대로 침묵을 지킨 채 기둥 뒤에 함께 몸을 숨겼다.


해솔은 약사전의 입구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전각의 세 나무 문 중 가운데에 있는 문이 열렸다.


안에서 걸어나온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까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던 패명 스님이었다. 전각의 청소를 마친 모양인지 한 손에는 작은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흰 고무신을 정갈히 신은 스님이 돌로 된 계단을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이쪽으로 올 것 같,” 내가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하기가 무섭게 해솔이 내 팔목을 잡아끌고 전각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전각 뒤편으로 살금살금 돌아갔다. 패명 스님이 얇은 자갈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박, 자박.


전각의 뒤편으로도 이어지는 오솔길이 하나 있었다. 스님의 발걸음 소리가 어째서인지 멀어지지 않고, 도리어 전각을 빙 둘러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템플 스테이와는 일절 관계가 없는 약사전을 어슬렁거리다 목격되면 딱히 둘러댈 말도 없었다. 차라리 밤 마실을 나온 척 뻔뻔하게 밀고 나갈 거였다면 진작에 먼저 아는 체라도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수상쩍게 숨어 버린 이상 그럴 수도 없었다. 숨으려면 끝까지 숨어 있어야 했다.


우리는 기둥과 기둥 사이 공간으로 가 몸을 숙였다. 그리곤 탱화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장식되어 있는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림자가 우리를 잘 숨겨 주기를, 멀리서 보면 그림의 무늬 때문에 우리 모습이 어느 정도 희석되어 보이기를 기도하면서.


자박, 자박.


발소리가 가까워지나 싶더니 이내 스님의 옷자락이 보였다. 스님은 빗자루를 든 채 오솔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와 해솔은 행여 숨소리라도 들릴라 호흡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말 그대로 가만히.


나는 스님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우리가 기대어 있는 벽의 무늬가 덩달아 시야각 안으로 살짝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에야말로, 나는 숨을 멈추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숨을 일부러 멈춘 것이 아니라, 숨이 절로 멎은 것이었다.


스님의 뒷모습이 작아지다 오솔길 저만치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해솔이 한숨을 내뱉었다.


“십년감수했네.”


그렇게 고개를 돌린 해솔은 내 표정을 보고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의아하다는 얼굴로 해솔이 물었다. “뭐야? …… 왜?”


멍하니 벽을 응시하던 내가 천천히 손가락으로 내가 본 것을 가리켜 보였다.


“해솔아. 이것 봐.”


해솔이 내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우리가 기대어 있던 벽에 그려진 부처님의 눈이 흰자위를 드러낸 채 위를 향하고 있었다. 부릅뜬 채 천장을 빤히 바라보는 것처럼.


리 치앙 아저씨의 말이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떠다녔다.


불상의 눈이 위를 쳐다보고 있을 경우 즉시 그 전각을 떠나라. 눈동자가 위를 향하고 있는 불상은 들어 본 적도, 마주쳐 본 적도 없다.


늦은 봄 날씨였음에도 순간적으로 오한이 들었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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