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영은사 방화 구제 작전 (4)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해솔은 덩달아 말을 잃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부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천천히 궤적을 그렸다.


“저기도 봐.”


기이한 부처의 시선을 따라 가상의 선을 그으며 위로 주욱 올라가니, 벽이 끝나는 곳에 작은 흠이 패여 있었다. 처마 바로 아래쪽 부근의 벽에.


“손 닿아?”


내 물음에 넋을 놓고 위를 바라보던 해솔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손을 뻗었다. 해솔이 까치발을 들어 팔을 있는 대로 뻗었다. 흠 안에 손가락을 밀어넣은 해솔의 표정이 변했다.


무언가를 잡아 내리며, 해솔이 말했다. “....... 뭐가 있어.”


해솔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가느다랗고 작은 열쇠였다.


우리는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림이 그려진 벽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벽으로 달려든 해솔이 다급한 손길로 벽을 이리저리 쓸었다. 내게 고갯짓을 해 보이며 해솔이 작고 빠르게 내뱉었다.


“형. 얼른 찾아봐. 열쇠가 있으면 분명 열쇠구멍도 있을 거야.”


나는 얼른 벽으로 손을 뻗었다. 얼마나 벽을 더듬었을까,


“찾았다.”


해솔의 손끝에 작은 홈이 걸렸다.


열쇠구멍 안으로 작은 열쇠를 밀어넣자 아귀가 들어맞는 느낌이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찰칵, 하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열쇠를 돌렸다. 혹여나 가느다란 열쇠가 부러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러운 손길로 열쇠를 반 바퀴 돌리니,


달칵.


작은 소리와 함께 그림이 그려져 있던 벽이 툭 튀어나왔다.

나와 해솔은 얕은 숨을 내뱉으며 벽을, 아니 벽인 줄로만 알았던 문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 너머에는 아래로 이어지는 짧은 계단이 도사리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


“나 참. 이래서 불 나는 거 아냐?”


성냥을 켜 작은 초에 불을 붙인 해솔이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가며 내뱉었다. 약사전 안에 불을 밝혀 두는 용도로 놓여 있던 성냥과 초를 가져온 것이었다.


나는 옆에서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 불빛을 더했다.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해솔은 대답 대신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지하에 발을 들였다. 해솔이 앞서 내려가며 지하 공간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였다. 계단을 모두 내려간 해솔은 두어 발자국을 걷나 싶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섰다.


“뭐가 보여?”


뒤따라가며 내가 물었지만 해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단을 마저 내려가며 물었다. “해솔아?”


여전히 해솔에게서는 아무런 답변도 들려오지 않았다. 해솔의 시선은 오로지 앞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어딘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며, 나는 해솔의 옆에 다가서서 정면을 향해 핸드폰 플래시를 비추었다.


그리고 불빛이 닿은 지하 공간의 전면을 눈에 담는 순간, 나는 조금 전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약사전 지하에 마련된 이 공간은 서너 평 정도나 될까 말까 싶은 작은 방이었다.


방의 한가운데에는, 약사전에 모셔진 불상과 똑같은 모양을 한 작은 불상이 놓여 있었다.


그 불상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전신을 덮쳐 왔다.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불상을 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노라고.


그 뒤편에는 조금 전 우리가 지나쳐 온 문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그림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부처와 보살의 모습을 담은 탱화 같았지만 아까의 그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림 역시 온통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와 해솔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해솔이 먼저 그러했듯, 나도 제자리에 못박힌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정면만을 바라보았다.


리 치앙 아저씨가 한 말은 왜 이렇게 잘 들어맞는 걸까.


지침서에 적혀 있던 말들이 머릿속을 날카롭게 찔러 댔다.


탱화가 온통 검은색일 경우 즉시 도망쳐라.

검은색만을 사용하여 그린 탱화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있을 수가 없다. 그 정도로 명백히 눈에 띄며 악의가 드러나는 변형을 가했는데도 아무도 막거나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에서 너희가 그 사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 류의 탱화가 확인되는 순간 지체 말고 다른 시간대로 도망쳐라.


지체 말고 다른 시간대로 도망쳐라.

지체 말고 다른 시간대로.......


사고의 흐름이 멈추었다.


나 같은 사람은,

다른 시간대로 도망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


촛불을 든 해솔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불이 일렁이며 검은 약사여래 불상에 부딪혀 기이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해솔의 얼굴이 무섭도록 싸늘해졌다.


“....... 손도끼야.”


약사여래 불상의 손에는 작은 손도끼가 들려 있었다. 가위도 아니고 칼도 아니고 무려 손도끼라.


리 치앙 아저씨의 표현에 추가하자면, 악질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다 되지 않을 만큼 악질인 셈이었다.


팔에 어쩐지 소름이 돋아나는 것도 같았다. 나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거북함을 물리치려 애쓰며 핸드폰 플래시를 이리저리 돌려 방 안을 비추어 보았다.


방 한구석에는 장작이며 종이 뭉치 같은 것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나와 같은 것을 본 해솔이 조소를 머금었다.


“누가 봐도 불 지르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 방인데.”


나는 플래시를 다른 곳으로 비추어 사방의 벽을 살폈다. “문제는 누가 이걸 갖다 놨느냐 하는 거지. 절 내부에 만들어진 공간이니까 내부인일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플래시를 천장에 비추었다. 천장에는 마찬가지로 검은색으로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다만 그것은 탱화 같지는 않았고, 오히려 성경에나 나올 것 같은 서양 전통 화풍의 그림이었다.


새 같은데. 독수리인가?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림의 정체에 관해 생각했다.


내 추측이 맞다면, 그것은 독수리였다. 검은 독수리가 천장을 가득 메우는 크기로 그려져 있었다. 독수리의 날갯죽지에는 화살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해솔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새가 왜 그려져 있지?”


“나도 몰라. 불교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새 같은 건 없어?”


내가 물었다. 해솔은 답이 없이 생각에 잠겼다.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해솔이 중얼거렸다.


“새.......”


그러다 한순간 해솔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해솔의 입술 사이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 아까 그 스님 법명 있잖아, 패명(唄) 맞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했지만 나는 성의껏 대답했다. “우리 길 안내해 주셨던 스님? 패명 스님 맞지.”


해솔은 천장을 바라보고 선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염불 패에 울 명……. 염불 패에 울 명.”


해솔의 눈빛이 순식간에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아, XX. 어쩐지 수상하더라니.”


나를 돌아보며 해솔이 차디찬 목소리로 내뱉었다.


“누구 짓거리인지 알겠어. 그 스님이 범인이야.”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 스님이 범인이라고?”


해솔은 한구석에 쌓여 있는 종이 뭉치 중 아무 낱장을 휙 집어들었다. 종이를 넓게 편 해솔이 종이 위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적어 보였다.


“법명은 염불 패 자에 울 명 자를 쓴다고 했어. ‘패명’은 이렇게 적는단 말이야.”


나는 바삐 움직이는 해솔의 손가락을 따라 눈으로 한자를 그려 보았다.


鳴.


해솔이 말했다. “이게 그 법명이야. 그런데 원래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까, ‘법명에서 목소리를 빼앗기면 그것이 속세의 이름’이라고 했어. 기억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솔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목소리를 빼앗기면.’ 그냥 비유적 표현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 염불 패, 울 명, 둘 다 입 구(口)를 변으로 가지고 있어. 이 한자에서 ‘입 구’ 자만 골라서 지우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해솔의 손가락이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그 손가락이 움직이는 자리를 따라 가상의 자국이 생겨났다.


貝鳥.


“패물 패, 새 조.”


해솔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새와 재물이야. 뭔가 생각나지 않아?”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새와 재물. 새와 재물…….

새가 알려 주는 재물.


그 언젠가 연수 형이 내뱉었던 말이 머릿속에 벼락처럼 내리쳤다.


- “지옥의 공작이 된 역천사……. 새 소리를 듣고 점을 쳐서 재물이 있는 위치를 알려 주는 악마. 뭐야? 세상에 이런 악마도 있어?”


예성1동 성당 테러 때 ‘만물의 눈’을 구분해냈던 단서. 효신의 가짜 세례명. 독수리 머리를 한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솔로몬의 72악마 중 하나.


중구난방으로 휘날리던 조각들이 그제야 하나로 맞추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홀린 듯 입을 떼었다. “........ 바르바토스.”


해솔이 짓씹듯이 내뱉었다. “그래, 바르바토스. 새 소리로 재물을 알려 준다는 악마. 이거 ‘만물의 눈’ 새끼들이잖아. 저 독수리,”


해솔이 천장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검은 독수리의 형상을 한 악마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패명’이라는 말도 결국 ‘바르바토스’를 교묘하게 숨긴 거야. 그딴 게 진짜 법명일 리 없어. 그 인간이 범인이야. 확실해. ……. 어쩐지 가운데 문에서 나오는 게 이상하더라니.”


해솔의 마지막 말에 나는 되물었다. “가운데 문으로 나오다니?”


“아까 약사전에서 그 사람 나오는 거 봤잖아. 전각에는 문이 세 개 있는데, 가운데 문으로는 웬만해서는 잘 안 다녀. 그런데 그 사람은 당당히 가운데 문으로 나왔단 말이야.”


내 표정을 본 해솔이 설명을 덧붙였다.


“경복궁 같은 데 가서도 계단 가운데 길로는 못 들어가게 하잖아? 왕의 길이라고. 사찰도 마찬가지야. 가운데 길, 가운데 문 전부 부처님 길이라고 해서 비워 둔단 말이야. 그런데 암만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명색이 스님이라는 사람이 가운데 문으로 아무렇지 않게 휙휙 다니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그것도 문지방까지 잘 즈려밟으면서.”


해솔의 차분한 목소리가 방 안에 맴돌았다.


“둘 중 하나겠지. 잘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거나. 어느 쪽이든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야. 그 인간, ‘만물의 눈’ 같아.”


약사전의 세 평 남짓한 지하에 무겁디 무거운 적막이 찾아들었다.


내가 물었다. “지금 몇 시지?”


“....... 10시 39분.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희끄무레한 초의 불빛 너머로 우리의 시선이 맞닿았다.


“어떻게, 현재로 귀환할까? 범인을 찾았다고.”


“범인임을 확신할 만한 증거를 가져가야지. 방화 현장을 습격해서 범행 직전의 순간에 잡거나, 아니면 기절을 시키든지 가둬 두든지 하고 지켜보거나.”


“그럼 운신을 못 하게 발을 묶어 두고 싶은데. 그러고 나서 화재가 예정대로 발생하는지 확인해 보자.”


그가 범인이 맞다면, 우리가 그를 사로잡아 두었을 때 화재는 나지 않을 것이었다. 나와 해솔은 암묵적인 동의를 이루어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공용 침소에 있을 텐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 사람만 끌고 나오지?”


내가 읊조리자 해솔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끌고 나오는 게 아니라, 직접 나오게 해야지. 안 나오고는 못 배기게.”


“무슨 생각이라도 있어?”


해솔이 초를 들어 천장의 독수리를 다시 비추었다. “우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면 되지.”


팔에 불빛이 가려지며 해솔의 얼굴에 드라마틱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 사이로 미소를 지으며 해솔이 말했다.


“새라도 언급해 주면 좋아서 환장할걸.”


-


공용 침소로 쓰이는 장소는 어린이법당 옆의 1층짜리 목조 건물이었다. 창호지를 덧대어 바른 창문 몇 개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침소 앞으로 다가간 우리는 눈에 띄게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앞을 서성였다. 창문 위로 우리의 그림자가 드리우도록. 그래서 우리가 왔음을 침소 안의 누군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큼.”


해솔이 헛기침을 했다.


몇십 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빼꼼 열렸다.


처음 보는 얼굴의 스님이 약간의 피로가 묻어나는 얼굴로 바깥을 향해 몸을 내밀었다. 우리를 발견한 스님은 얼결에 합장을 하고는 말했다.


“무슨 일이신지요.”


“큰일은 아닙니다. 아까 저희가 숙소 근처에서 다친 새를 발견했는데, 패명 스님이 그 새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하고 가셨거든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해솔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새는 사라져 있고, 숙소 근처에서 자꾸 새 울음소리가 들려서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패명 스님이 혹시 그 새와 관련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직접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셨던 게 기억이 나서.”


해솔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한 발음으로 해솔이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깃털은 조금 그을려 있었고, 검은 새였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패명 스님은 아실 거예요. 무슨 새인지.”


불. 검은 새. 울음소리. 당신의 법명과 ‘검은 독수리’ 바르바토스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그러나 확신할 수 없어 긴가민가하게 만드는 암시였다.


해솔이 순진무구한 웃음을 지었다. 이름 모를 스님은 자신이 들은 말의 내용을 가늠이라도 하듯 해솔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이내 자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렸다.


“말씀 전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시지요.”


패명 스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몇 분이 지난 뒤였다.


-


“스님, 야밤에 이렇게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새 소리가 워낙 시끄러웠어야 말이죠.”


우리는 숙소 뒤편의 작은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나와 해솔이 앞서 걷고, 패명 스님이 뒤를 따라오는 식이었다.


패명 스님은 특유의 맑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새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신다는데 당연히 나와 봐야죠. 그런데……”


주위의 나무들을 휙 둘러본 패명 스님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은 새 소리가 안 들리네요. 법우님께서 걸음하신 그 사이에 도망이라도 간 걸까요.”


언덕은 조용했다. 새 소리는 커녕 그 흔한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새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건 나와 해솔의 새빨간 거짓말이었으니까.

보이지도 않는 새를 찾겠다고 이 야밤에 언덕길을 빙빙 둘러 올라온 것은 순전히 우리의 계획이었다.


침소 바깥으로 나온 패명 스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깃털이 그을린 검은 새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말을 전해 준 스님이 착각한 모양이라고 둘러대며 ‘새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으니 한 번만 숙소 근처를 같이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


앞서 걷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주위를 연신 둘러보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분명히 아까까지는 엄청 시끄럽게 울었었는데…….”


해솔이 멋쩍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스님을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스님, 공연히 고생하시게 했네요.”


스님이 마주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직접 나와 봐야 마땅한 것을요.”


우리의 빠른 걸음에 맞추어 따라오느라 조금 힘들었는지 스님의 숨소리가 살짝 커져 있었다. 그걸 기민하게 눈치챈 해솔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표정을 갈무리하며 정갈한 미소를 지어 보인 채 이렇게 말했다.


“저희 때문에 괜히 헛걸음하셨네요. 목마르시죠? 물이라도 조금 드릴까요?”


해솔이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생수 병을 내밀었다.


“아, 그럼 감사하지요.”


패명 스님은 자연스럽게 해솔이 내민 생수 병을 향해 팔을 뻗었다.


나와 해솔이 티나지 않게 눈빛을 교환했다. 이 생수 병은 거의 새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니었다.

물병 안에서 찰랑이고 있는 물은 사실 수면제를 녹여서 탄 것이었다.


수면제를 먹여 재워 두고 감시하자는 건 해솔의 아이디어였다. 해솔이 무슨 이유로 작전에 임하며 수면제를 챙겨 올 생각을 다 했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덕분에 일은 수월하게 되었다.


패명 스님은 별다른 의심 없이 생수 병을 받아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해솔이 살짝 눈썹을 꿈틀했다.


“움직여서 그런가, 밤인데도 덥네요.”


패명 스님의 말에 해솔은 태연자약히 손으로 부채질 시늉을 해 보이며 맞받아쳤다. “그러게요. 오월부터 이렇게 더우면 올해 여름은 대체 얼마나 더 더울지 겁나네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패명 스님이 생수 병의 뚜껑을 돌려 열었다. 나와 해솔은 말없이 시선을 스님의 손에 고정했다.


스님이 뚜껑을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생수 병을 입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런데, 법우님.”


그리고 생수 병을 입에 대기 직전, 스님이 우리를 향해 말을 꺼냈다.


“네, 스님.”


해솔이 대답하자 스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어찌 후회할 짓을 하십니까.”


스님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게 이러시면 뒷감당을 어찌하시려고요?”


그 미소는 약사전 지하의 검은 불상과 꼭 닮아 있었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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