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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Oct 24. 2021

대안학교 나오면 뭐 해?

달력이 7월, 8월을 지나 9월로 넘어가고 후끈했던 공기가 한풀 가라앉을 즈음이면 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학기의 문이 열린다. 여름에 헤어져 가을에 다시 만난 친구들은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다. 이전보다 한결 차분해져 있고, 한결 과묵해져 있곤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무렵 온몸으로 떠안게 되는 막막한 진로 고민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대안학교 나오면 뭐 해?


3학년 2학기. 이제는 정말로 진로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인지, 그리고 그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통상적인 다른 학생들보다 더 일찍 '입시'라는 관문을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대안학교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민할 거리가 있나? 계속 대안학교에 다니면 되지 않나?' 와 같이 생각하기도 하는데, 중학교를 대안학교로 선택하여 진학하는 것은 비교적 자유롭고 거리낄 것 없는 선택일지 몰라도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진학한다는 것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슬프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대학 입시 때문이다. 대안교육이 아무리 가치관에 맞고 마음에 든다 해도 완전히 학벌을 등한시할 것이 아닌 이상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는 이 학교가 대학 진학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따져 보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안학교는 그 질문에 최선의 답이 되어 주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일반적인 고등학교보다 훨씬 적은 학생 수를 지니고 있는데, 같은 학년 인원이 적다는 것 역시 대학 입학 제도에서 어느 정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가치관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을 해야만 한다. 우리네 교육의 현주소가 딱 이 정도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까.  


사람들은 대안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어디로 진학하는지를 궁금해하고는 한다. 그러나 '대안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가는 길' 은 딱 '대안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삶의 수' 만큼 많기에, 일관된 하나의 공식을 세울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대안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은 선배들이 먼저 닦아 놓은 길을 참고하기도 하고, 주변으로부터 조언을 구하기도 하며 각자가 갈 길을 그려 나가곤 한다. 


이맘때면 아이들이 희망하는 상급 학교 진학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대안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염두에 두는 친구들이다. 아무래도 비슷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익숙함 때문에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같은 이름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가장 많고, 다른 대안학교를 찾아 그곳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가는 친구들도 적지 않게 존재하는 편이다. 두 번째 부류는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친구들이다. 비교적 현실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온전히 입시를 준비하는 데 최적화된 교육 커리큘럼에 집중하고 싶은 학생들이 자주 택하는 길이다. 셋째는 그 외의 특수목적고등학교나 특성화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꿈꾸는 친구들로, 모두가 저마다의 진로와 적성에 맞추어 앞으로 무엇에 집중하고 싶은지를 고려하며 상급 학교를 선택하곤 한다. 


그러나 같은 학교로의 진학을 희망한다고 해서 그 기저에 같은 이유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학교에 가려고' 라며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아이들일지라도 그 속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른 것이다. 대안학교로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아이들 중 누군가는 정말 대안교육이 좋아서 그런 선택을 내리는 반면,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학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립 학교를 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저 '나쁘지 않은 선택지' 정도로 대안학교를 고른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는 아이들 중 누군가는 자신이 정말 그곳으로 진학하기를 원해서 그 길을 선택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입시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일반 고등학교라는 길에 발을 들이는 경우도 많다. 우리 학교에 처음 발을 들이기 전 열심히 발품을 팔아 퍼즐 조각을 모으고 그것을 맞추어 본 뒤 심사숙고해서 원서를 내었듯,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생활 반경을 선택할 때에도 아이들은 수많은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끼워맞춰 보고 자신과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곳을 신중히 택하는 것이다.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정했다면 이제는 입시를 준비할 차례다.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의 입시가 가장 먼저 시작되고, 대안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의 입시 일정이 우수수 그 뒤를 따른다. 각자 자신이 원서를 낼 학교를 찾아 확정하고, 심혈을 기울여 자기소개서를 쓰고, 밤을 새워 가며 면접을 준비한다. 한때 '댄싱클럽', '찜질방', '게임방' 등으로 사용되곤 했던 기숙사의 방은 어느새 아이들이 모여 예상 질문을 준비하고 서로에게 모의 면접 질문을 던져 주는 입시 준비 학원으로 탈바꿈해 있다.    

거듭되는 고민과 걱정으로 3학년 아이들의 얼굴에는 점차 생기가 가시기 시작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맘때쯤이면 축 처진 분위기에 약간의 반전을 줄 수 있는 3학년들만의 여정인 '농촌봉사활동'이 가까워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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