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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훈 Jun 06. 2023

붉은 벽돌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 아래서(1)

20대에 하는 10대에 대한 회고

#1. 등교

맑고 선선한 공기에 비 냄새가 떠다닌다.

'냄새가 싱그러운 것을 보니 비는 안 오겠다.

.

.

.

오늘 점심시간에 8반이랑 축구해야 되는데...(안도)'


2학년이 되고 아침 시간을 써보겠다며 6시가 좀 넘은 시간이면 첫차에 가까운 427번 버스를 타고 나선 지 한 달여 만에 오랜만으로 정상 등교를 하는 중이다. 그렇다 할 이유는 없고 그저 조금 더 자고 싶은 날이었다. 방학까지 더하면 두 달 넘도록 오늘 같은 활기찬 등굣길을 못 봐왔던 탓에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올해부터 학주가 된 지리쌤은 소문대로 역시나 날이 곤두선 채 교실로 향하는 50계단을 막아서 계셨다. 잘못한 건 없지만 괜히 눈 마주쳐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 발 빠르게 지나쳐 계단을 마저 올랐다. 옆으로는 어김없이 유도부 선후배들이 짝지어 한 명은 계단을 손으로 짚은 채 다른 한 명은 그 친구의 다리를 들어 올려 잡고는 어제의 비가 아직 덜 마른 돌계단을 새로 적시고 있었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대단하다. 여담으로 우리 반에 정말 힘도 덩치도 좋은 친구와 오랜만에 교실에 들린 유도부 친구가 팔씨름한 적이 있었는데 유도부 친구는 170이 조금 안되는 작은 덩치로도 웃으며 1-2초여만에 가뿐히 넘겨버리곤 유유히 교실을 나갔던 적이 있다. 매일 아침 우리를 적당히 숨차게 하면서 잠을 깨워주는 50계단 끝에는 교감 선생님이 계신다. 너무 일찍 오거나 늦게 오는 몇몇 학생(어제까지의 나처럼)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마다 전교생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반겨주신다. 정말 파이팅 넘치는 날엔 포옹까지도 한다. 이미 1년 넘게 반복되어버린 일상이 가끔 지겹기도 하지만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교감 선생님을 보면 그 생각이 잠깐이나마 가신다. 등나무 벤치를 지나 건물에 다다르면 이미 내 양옆에는 친구들이 와있다. 매일같이 보는데 무슨 할 말이 이렇게나 많은지 당사자인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하다.


#2. 수업

이번 학기의 꿀 시간표는 화요일, 바로 오늘이다. 이동 수업 한 번에 미술, 체육 후면 오전 시간이 녹아버린다. 그중에서도 점심시간에 반 대항전이 있는 오늘은 오전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수업 시간은 점심 시간을 위한 전초전에 불과하다. 각자 저마다 머릿속으로 구상한 그림을 쉬는 시간마다 모여 재구성한다. 의견이 분분하다. 평소에는 4교시 체육시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이만한 선물이 없다. 우리의 집단 지성을 테스트해 볼 시간이다. '하루쯤은' 이라는 생각으로 오전의 영어, 사문, 미술은 가볍게 스킵하고 결전의 4교시가 다가왔다. 학교 계단을 30개가 넘는 축구화 신은 발들이 다그닥 거리는 소리로 가득 채우며 내려간다. 오늘은 반드시 축구 연습을 해야 함을 빠르게 체육쌤에게 어필한 후에 이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학교에는 운동장이 2개가 있는데(사실 정확히 '우리' 운동장은 하나다.) 그중 큰 운동장을 차지하려면 미안하지만 중고등학교가 같이 붙어 있는 터라 중학교 동생들을 밀어내야 한다. 중학교 체육 선생님과의 합의도 빠르게 끝내고 각자 자리를 찾아간다. 꼭 두어 명 정도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항의의 표시로 운동장 구석에서 보란 듯이 공놀이하는 후배들이 있지만 오늘은 신경 써줄 틈이 없다. 나를 포함한 스무 명 정도의 우리 반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3. 점심시간

우리 학교는 나름 급식이 맛있기로 유명한데 오늘은 샐러드 파스타가 나왔다. 빠르게 먹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가기 알맞은 메뉴다. 주전 친구들은 양보를 받아 먼저 급식을 받고 몸이 무겁지 않을 만큼만 먹은 후에 약속된 시간보다 5분 먼저 운동장에 도착한다. 학교가 오래된 터라 듀오백 의자와 최신식 사물함에 어울리지 않게 우리는 급식실에서 식판부터 급식까지 모두 가져다 교실에서 밥을 먹어야 했는데 사실 이번 주 나는 모두가 기피하는 식판 담당이었다. 우리 반의 승리를 위해 흔쾌히 담당을 바꿔준 민규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전교 회장 선배의 선거 공약으로 시작된 교내 축구 대회는 모든 학우들에게 한 달 동안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줬다. 오늘은 마지막 예선전이었지만 우리 반과 상대 반 모두 본선 진출이 확정된 터라 평가전 느낌이었다. 하지만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며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결과를 보여줘야 했다. 더구나 오늘은 옆 반 여자 아이들(우리 학교는 남녀가 구분된 분반으로 이뤄져있다)도 구경을 오기로 했기 때문에 특히 중요했다. 결과는 3:1 승리.


(다음 편에 계속)


붉은 벽돌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 아래서(2)


위 글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현생 1회 차 한 20대 청년이 기록하는 일, 사람,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이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춘기록 #청춘을글이다 #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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