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하는 10대에 대한 회고
#4. 쉬는 시간
"야, 솔직히 두 번째 골 내가 다했다. 인정?"
"지후이 아까 크로스 박살났는데, 아까비~"
"근데 오늘 진짜 동문이가 다 막은 게 컸다."
5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미처 끝내지 못했던 점심시간의 무용담을 저마다 풀기 시작한다. 다들 머릿속으로 본인 활약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각자 뿌듯해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물론 나도. 리뷰는 여기까지 하고 오후부터는 본업인 학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학생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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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매점 갈 사람?"
작고 소중한 나의 주머니 사정에도 오늘 같은 날은 코코팜 한 캔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 올해부터 유독 학교에서 좋아하게 된 장소가 매점이다. 평소 군것질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추억이 쌓여서인지 매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푸근함과 만남의 광장인 매점에서 다른 반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만나는 순간이 은근한 힐링이다. 짧디짧은 10분의 쉬는 시간마다 참 많은 일들을 해내고야 만다.
#5. 진짜 수업
어렸을 적부터 영어와는 정말 친해지기가 힘들다. 나름 살면서 공부에 막 뒤처지지는 않아왔지만 영어만큼은 유독 느렸다. 알파벳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뗐고, 중학교를 다닐 때도 영어 듣기 시험만큼은 항상 뒤에서 5등을 유지해왔다. 그런 나에게 영어 수업은 언제나 위기다. 매 수업마다 다양한 루틴으로 우리를 혼란시키는 영어쌤은 모든 본문 내용을 번갈아가며 직독직해를 시킨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한 문장 더~"이다. 쉴 새 없이 눈을 굴리며 나의 차례를 예측해가다 저 한 문장이면 모든 준비가 꼬여버린다. 오늘은 다행히 독해 순서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주에 속한다. 귀로는 수업을 들으며 머리로는 내가 해석할 본문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매번 드는 '이 수업 방식이 도움이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이 순간만큼은 오늘도 온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인정하기 싫게도 시험을 칠 때면 내가 해석했던 부분만큼은 첫 한두 단어만 봐도 문단이 통째로 기억난다. 일종의 감정 기억이 아닐까? 숨 막히는 긴장감에 힘입어...
"자, 다음 지훈이가 해볼까?"
"아, 네. when people face real adversity..."
나의 차례가 끝나면 묘한 도파민이 온 몸을 휘감는다. 20여분 정도 남은 수업의 뒷부분은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 할 수가 없다.
#6. 석식 시간
앞으로 600일가량 반복해야 하는 하루가 또 지났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 지나는 중이다. 요즘 어떠한 계기로 고등학교 진학 이래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시기인 탓에 정규 수업 이후 저녁 시간이 꽤나 중요해졌다. 오늘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저녁을 먹고 간단히 혼자 산책을 하기로 했다. 캠퍼스가 넓어 산책할 곳이 많은 것이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오늘 우리 반 친구들은 팀을 꾸려 오랜만에 시장 탐방을 나선다고 한다. 학교가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시장 안에 위치한 터라 종종 담을 넘어 칼국수나 떡볶이를 먹고 복귀하곤 한다. 운이 나쁜 날은 시장에서 담임쌤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 또 운이 좋은 날은 계산과 함께 모른 체해주시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날은 교무실로 불려간다. 나는 빠르게 급식을 먹고 점심시간에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운동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중학교 후배들은 이미 다 하교를 하고 난 터라 저녁 시간은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그렇게 나도 회전 초밥에 합류한다. 회전 초밥이란 유독 석식 시간에 운동장을 돌며 산책하는 우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회전 초밥과 같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소화를 돕는 적당한 운동과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엔 회전 초밥만 한 게 없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선선해 저녁인데도 새벽에 날 법한 냄새가 나는 날이다. 오후에 텐션이 높았던 만큼 저녁에는 괜히 센치해지는 듯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하고 싶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최근에 일어났던 일과 앞으로의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가면서 운동장을 돈다. 사춘기가 남들보다 조금 늦게 온 듯하다. 오늘 고뇌는 여기까지 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종소리가 들린다.
#7. 야간자율학습
정규 수업은 끝이 났지만 석식 이후에도 남은 여정이 길다. 특강을 듣고 야간자율학습과 심야자율학습까지 마쳐야 드디어 귀가다. 오늘은 특강 대신 자습을 신청한 요일이기 때문에 석식 이후로는 교실에서 계속 공부만 하면 된다. 얼마 전 학습의 개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학(學)'만을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에 너무나 공감했다. 배우는 과정을 통해 input만을 반복하고 스스로 익히는 '습(習)'의 과정을 소홀히 해 배우고 잊어먹는 악순환의 반복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선생님이 문제 푸는 것을 '구경'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말에 움찔했다. 요즘 수학 다회독에 빠져있어 이미 두번이나 반복해서 풀었던 문제집을 오늘도 꺼내들었다. 조금씩 원리를 이해할 것 같기도 하면서 막막한 분량에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답답할 때 최고의 선택은 복도다. 복도로 책상을 가지고 나가면 오늘도 친구들이 복도를 따라 나란히 앉아있다. 교실이 답답해서, 졸려서, 친구랑 떠들기 위해서, 날씨가 좋아서, 각각의 이유로 많은 친구들이 복도로 나와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모여있지만 꽤나 고즈넉히 길게 뻗어난 광경 또한 내가 좋아하는 모습 중 하나이다. 난이도가 높지 않은 수리 문제를 풀 때는 의외로 신나는 노래가 잘 어울린다. 오늘은 씨스타와 비스트, 인피니트가 나의 자습을 책임져준다. 문제집을 넘기는 소리와 비스트 'Fiction'의 도입부가 딱 맞아 떨어질 때 별것도 아닌데 기분이 참 좋다. 플래너의 체크리스트를 하나 둘 지워가며 자습을 이어가지만 오늘도 채워지지 않은 빈 상자들이 또 생겨났다. 내일은 등교하자마자 이번 주도 지켜내지 못한 플래너를 또 새로 써야한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많은 않다. 지금은 오후 10시 58분. 이미 짐도 다 싼 채로 셔틀로 뛰쳐나가기 위한 준비를 다 마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일단 고생했다..내 자신..
#8. 하교
보통 집과의 거리가 멀어 셔틀버스로 등하교를 하는 우리 학교는 11시가 되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운동장으로 향한다. 같은 셔틀을 탄다는 건 동네 친구라는 뜻이므로 중학교 동창들도 많다. 이과에 있는 친한 친구들도 셔틀에서 오랜만에 만나기 때문에 또다시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집으로 가는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집에 도착해 씻고 잠자리에 누우면 어느덧 12시가 넘는다. 내일부터는 다시 일찍 등교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깨워주시고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한 나를 위해 비빔만두를 구워 올려놓고 기다리고 계시는 엄마를 보면 오늘도 너무 감사하다. 오늘은 조금 놀고 싶은 날이라 다른 가족들의 취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방에 작은 불만 켜놓고 엄마랑 바닥에 앉아 30분 넘게 속닥거리며 수다를 떨다 자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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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활의 끝엔 어떤 대학 생활이 있을지, 또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하며 잠이 든다.
(10년 후엔 그걸 'N'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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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하..'
붉은 벽돌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 아래서(1)
위 글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현생 1회 차 한 20대 청년이 기록하는 일, 사람,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이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춘기록 #청춘을글이다 #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