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선생의 오후 Jan 20. 2022

2021학년도 축제를 마무리하며

또 한 해를 보냈다. 3월 신학기를 맞이하며 새로운 아이들과 만나면서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2021학년도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30년 차 교사로서 맞이하는 새로운 해는 사뭇 이전과는 감회와 느낌이 남다르다. 교직 초창기에 만난 아이들보다 요즘에 만나는 아이들에 대해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은 이제 교직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일까? 지난해 아이들과 정말 많은 것들을 같이했다. 그중의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에서 하기 힘든 축제를 온라인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창의인성교육부 부장으로 축제는 내가 맡은 1년의 업무 중에 가장 큰 일이다. 학생들이 하는 동아리 활동을 축제와 연결시켜 하루의 축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코로나가 처음 터진 2020학년도에도 우리 학교는 축제를 온라인으로 기획해서 2시간짜리의 영상으로 만들어 축제일에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감상하도록 했다. 주변의 많은 학교들이 축제를 포기하고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창의인성교육부의 기획으로 동아리 활동과 축제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부장님이 미술 선생님이었는데 축제를 영상으로 만들어 온라인으로 내보낸다는 기획을 했다. 나는 "축제를 어떻게 온라인으로 한다는 거지?" 하며 부장님이 참 대단하다라고만 생각하고 축제 제작 지원업무만 담당했지 영상 만드는 것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온라인 축제는 아마 학교 축제 역사상 최초의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2020 축제를 온라인으로 치러냈다. 당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고 나 또한 축제를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하고 약간은 감동을 했다. 최초의 온라인 축제를 기획한 부장님이 개인 사정으로 명퇴를 하고 그 뒤를 내가 물려받았다. 사실 영상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작년처럼 온라인 축제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나 자신도 들었지만 작년에 기획을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부장을 맡기지 않았나 싶다. 2021학년도에는 축제를 오프라인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보았지만 1학기가 다 지나가고도 코로나 사태는 잠잠해지지 않았고, 결국은 올해도 축제를 하려면 온라인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11월 초로 계획된 축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려면 2학기부터는 모든 동아리 활동이 축제에 대비해서 준비하는 체제로 돌입을 해야 한다. 동아리 중에 특별히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활동이 축제 영상의 주된 콘텐츠가 된다. 댄스반, 보컬반, 풍물반, 교사밴드, 반 별로 만든 브이로그 영상, 영화 패러디 영상, 학생회에서 만든 축제 인트로 영상, 학생회에서 만든 먹방 영상, 축제에 대한 교사들의 메시지 영상, 학생들의 1인 미디어 콘텐츠 영상, 그리고 동아리 활동 중에서 미술 작품이나 수공예 작품들의 영상 등등 정말 다양한 영상을 1부, 2부로 나누어 120분 정도 분량의 영상으로 최종 만들어내는 일이다. 흡사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고 해도 지나치치 않은 표현이랄까?

사실 50대의 교사로서 영상제작이나 편집은 정말 나에게 익숙지 않은 영역이었고 공립학교 영어교사로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필요한 분야는 아니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는 온라인 수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수업, 영상에 대한 이해와 편집, 제작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많은 내 또래의 선생님들이 명퇴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아직 퇴직할 준비는 안되어 있는데 갑자기 정신 차려하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여하튼 유튜브 관련 연수, 코딩에 관한 연수, 다양한 영상 제작 관련 유튜브 영상 등을 보고 공부하고 새로운 온라인 세상에 올라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내게 맡겨진 업무를 해내기 위해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컴퓨터에서 고작 워드 작업, ppt 제작, 온라인 자료 검색이나 쇼핑 정도의 생활만 해 오던 나에게는 신세계와 같은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매일 네이버 검색을 하고 쇼핑을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SNS라든지 클라우드라든지 영상 제작하는 다양한 툴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영상 제작하는 과정을 모르고는 이 전체의 축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일정을 짜기도 어렵고 영상편집 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요청사항을 충족시키기도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코로나를 통해서, 또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온라인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준계기가 된 것 같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오프라인 세상을 주 무대로 살아왔던 나에게 코로나라는 위기는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아이들과도 재밌게 지낸 한 해로 기억이 될 것 같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 왜 아이들과의 공감대가 점점 줄어들까를 내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며 학교 생활이 힘들고 재미가 없어져갔다. 그런데 아이들과 같이 영상을 만들고 편집하고 소통하면서 아이들과 나 사이에 막혀있던 장벽이 없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물론 아이들은 젊은 선생님들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나이가 있는 교사도 아이들의 세상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하면 그들과 소통하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왔다 갔다 하는 학사 일정에서 축제를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행복해하고 자신감을 갖고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자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많이 느꼈다. 수많은 계획서와 기안하기, 프로그램 만들기, 도표 만들기, 포스터 구상, 영상 만들기와 관리, 동아리 강사 관리, 축제비용 지출 등의 업무와 함께 축제는 무사히 끝났다.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1회만 공개한 축제 영상의 조회수가 2,000이 넘게 나왔다. 축제 영상을 평일 학교 일과시간 중에  500명 정도의 우리 학교 학생 외에 다른 사람들도 많이 봤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있지 않았나 하는 것으로 스스로 평가한다. 

모든 축제업무가 끝날 즈음부터 아프기 시작한 어금니를 방학이 되면서 지금 뽑고 임플란트 시술을 하려고 한다. 풍치가 진행이 돼서 어금니 2개가 흔들거리고 문제가 생겼는데 그중에 1개를 먼저 뽑은 것이다. 정말 힘들게 축제를 준비했다. 너무 바빠서 점심을 거르기도 하고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남아서 일한 날들도 많았다. 코로나라는 위기에서 맡겨진 업무를 포기하지 않아서 내게 남겨진 2시간짜리 영상은 내 교직생활의 한 기록이자 추억으로 간직이 되지 않을까? 이 영상에 참여한 아이들이 내가 가르친 수많은 학생들의 대표로 나에게 남지 않을까 하며 2021학년도를 회상하며 일기처럼 이 글을 마무리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원급 비교 문법 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