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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은지 Sep 09. 2016

타인의 존재로 작품이 아름다워진다.

미디어아트 전시 <팀랩월드> 후기

요즘 SNS에서 핫한 전시, <teamLab World>에 다녀왔다.

사실 작년 도쿄 디자인 위크 TDW 2015에서 작품 중 일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경험이 굉장히 좋았었고 분명 좋은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 팀원들을 졸라 방문하게 되었다.


■위치 : 잠실 롯데월드 어드벤처 입구 근처
■입장료 : 24,000원(12세 이하 어린이) / 20,000원(청소년 및 성인)
■운영시간 : 오전 10시 - 오후 9시 연중무휴 
http://seoul.teamlabworld.com


팀랩 teamLab.은 일본의 미디어아트 그룹이다.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CG애니메이터, 수학자, 건축가, 웹디자이너, 에디터, 그래픽 디자이너 등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아트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들이 추구하는 전시의 목표는 굉장히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이었다. 

보통의 전시에서는 작품과 나와의 관계만이 존재하며, 그 사이에서 타인은 장애물이 될 뿐이었다. 그러나 팀랩은 타인의 존재로 작품이 더욱 아름답게 변화한다면, 사람들의 관계성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작품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철학을 가지고 작품에 임했다.

사실 디지털 기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은, 디지털 기술이 차갑고 자극적이며 비인간적이라고 말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그럴지도 모른다. 실제로 기술을 활용하여 더욱 자극적인 걸 만들고 빠르게 소비해버리는 컨텐츠를 만드는 이들도 물론 있다. 기술이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문제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인간은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이 적절히 조합된다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몇 배로 확장할 것이다. 바로 팀랩의 작품처럼 말이다.


팀랩월드 전시는 총 11가지의 컨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11가지의 작품 중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는 컨텐츠는 10가지. 대부분이 체험형 컨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를 관람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체험형 컨텐츠이기도 하지만,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머무르는 관람객들도 많이 보였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팀랩월드'로 검색하면 6천여개의 업로드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팀랩월드와 함께라면 온 국민이 사진작가다, 정말. 


인상깊었던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한다.



Flower and People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한 고찰.


사방이 꽃으로 가득한 공간. 관람객이 서 있는 곳에서 꽃들이 탄생하고, 꽃을 밟으면 꽃잎이 떨어져 시들어버린다. 키넥트로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컨텐츠가 빔 프로젝트로 영사된다. 반응속도가 빠르지 않아 별 흥미를 못 느끼고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도 많았다. 나는 왠지 그 몽환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좀 더 머물렀다.

내가 누웠던 자리.

서 있거나 누워 있으면 내 몸 쪽을 향해 꽃이 피어난다. 꽃 위를 빠르게 걸어다니면 꽃잎이 흩날리며 시들어버린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고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봄에 쿠니사키반도(国東半島)를 방문했을 때 산속에는 벚꽃이, 산 자락에는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 중 얼마나 많은 꽃이 인위적으로 심은 것이고, 자연적으로 피어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 곳은 많은 꽃들이 흘러 넘쳐 굉장히 기분 좋은 장소였습니다. 이렇게 꽃이 많은 이유가 인간의 개입에 의해 생태계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자연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의 경계선은 극히 모호합니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은 대립 되는 관계가 아니며,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자연이란, 사람과의 조화를 포함한 생태계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을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는 전제 하에, 인간이 수년 간 쌓은 업적이야 말로 이 기분 좋은 자연을 있게 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개입에 의해 많은 꽃들이 '인위적으로' 심겨지기도 하고, 인간의 개입에 의해 많은 꽃들이 죽어버리기도 한다. 자연의 힘이 세다면 인간은 그 곳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이고, 인간의 힘이 세다면 자연은 파괴될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울 때 비로소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상호작용에 의한 우연성'이다. 녹화된 영상이 반복해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며 탄생되는 컨텐츠이기 때문에 절대 같은 풍경을 다시 볼 수 없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은 언제,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고, 이러한 이유로 좀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Story of the Time when Gods were Everywhere

상형문자에서 탄생하는 세계와 이야기.


전시를 보러 가기 전부터 너무 너무 보고 싶었던 작품. 동화적인 요소가 가득해서 그 공간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벽에 둥둥 떠 다니는 상형문자를 만지면 그 문자가 가진 '세계가 탄생'하고, 다른 관람객들이 불러낸 '세계'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예를 들어 늑대가 나타나면 양이 도망가고, 나무에는 새가 앉고, 관람객이 다가가면 소는 공격한다. 

하나의 문자를 만졌을 때 단순히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세계가 함께 탄생한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가상 세계 안에서 각 객체간의 상호작용, 관람객과 객체간의 상호작용 등 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하는 호기심에 오래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Crystal Universe

숨막힐듯한 아름다움.


팀랩월드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큐브 LED로 우주공간을 표현한 설치 미술인데, 어마어마한 시청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팀랩월드'라는 이름 대신 '크리스탈 유니버스 전시'로 더 유명하다니 그 명성을 알만하다. 

사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갔을 때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생각보다 LED 사이의 간격이 넓어서 사진만큼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스마트폰 앱과 함께 나타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크리스탈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컨텐츠(우주의 탄생, 별똥별, 오로라 등)를 선택할 수 있는데, 눈 앞에 정말 장관이 펼쳐진다. 전시를 보러 간다면 꼭 스마트폰 앱을 다운받아서 해보기를 추천. 



인사이트

전시를 통해 얻은 몇 가지 인사이트.


1. 제작자의 철학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의도가 뚜렷하다. 단순히 겉만 화려한 것이 아니다.‘타인의 존재로 작품이 더욱 아름답게 변화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관계성에 변화를 주겠다’라는 하나의 메시지가 전시회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었다. 


2. 스토리텔링

각 작품별 세계관이 뚜렷하다. 언뜻 보면 ‘애들 장난’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각 작품의 스토리를 이해하고 감상하면 어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3. 상호작용성 & 우연성

같은 공간 안에 있는 타인의 행동에 따라 컨텐츠가 변화하며, 가상 공간 안에 어떤 객체들이 있느냐에 따라 컨텐츠가 변화한다. 언제,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경험하게 되는 컨텐츠는 달라지고 그것은 다시 반복될 수 없다. 상호작용에 의한 우연성으로, 관람객들은 작품에 대해 더 흥미를 느낀다. 


4. 포토존, 그리고 '인생샷' 마케팅

아름다운 작품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을 수 있다. 요즘 대부분의 전시는 포토존을 가지고 있다.  팀랩월드도 실제로 SNS를 통한 입소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연인, 친구와 함께 방문해보고 싶게끔 만든다. 과거에 비해 전시회가 많이 캐쥬얼해지고 대중화된 데에는 SNS의 역할이 크다. 예술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며 벽을 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움직임인 것 같아 보기 좋다. 


팀랩월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일반인부터 전문가까지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담고 있다. 팀원들과 전시장을 떠나며, 친구들과 다시 한번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샷을 찍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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