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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은지 Oct 19. 2016

청년, 목소리를 내자.

책 <시민의 교양>, 그리고 영화 <자백>


지난 주말 서울로 가는 길에 대전역에서 성심당을 들렀다. 성심당은 전국적으로도 엄청 유명한 빵집이라 대전역을 통하는 이들은 꼭 한 번 발도장을 찍는 곳이다. 나는 대전역을 들를 때마다 성심당에서 튀김소보로를 하나씩 사 먹는다. 이 곳 성심당의 명물인 튀김소보로를 사기란 얼마나 힘이 든 지, 매장 입구 한편에 있는 매대에 따로 줄을 서야 한다. 차례가 오면 점원에게 원하는 빵의 개수를 말하고 계산을 한 뒤 점원이 건네주는 빵을 받는다. 이 곳의 규칙이다. 


그 날은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했다. 점원들은 한창 오픈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나보다 먼저 온 아주머니 한두 분이 매대 뒤쪽으로 가서 빵을 뒤적뒤적 고르고 계셨다. ‘음.. 저러면 안 되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매대 앞에 줄을 섰다. 그런데 나보다 뒤에 온 사람이 또 매대 뒤쪽으로 향한다. 이쯤 되자 갈등이 되었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을 해야 하나?', ‘난 점원도 아닌데? 막상 점원이 괜찮다고 하면 난 뭐가 돼?', ‘이렇게 가만히 서있다간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먼저 계산해야겠는데? 나도 저기 가서 빵을 골라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점원이 그들을 제지했고 가게는 질서를 되찾았다.


그들은 성심당을 처음 방문한 이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곳의 규칙을 모르는 상태일 게다. 그러나 나는? 이 곳의 규칙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오히려 손해보지 않기 위해 그들에 동참하려 했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고 있다. 다수의 이들도 그리 하지 않는데 나만 손해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옳은 길을 외면한다. 심지어 소수의 정의로운 이들이 다수를 올바른 길로 애쓰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여긴다. '바르게 살면 나만 손해 본다'는 생각.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이 친일파 청산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시대에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우리나라와 민족을 버렸던 그들과 그들의 후손은, 아직도 이 나라에서 기득권을 쥐고 의기양양 살아가고 있다.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군과 그의 후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독립유공자 가족의 70% 이상이 월 200만 원도 안 되는 소득을 받으며 살아가고 이러한 가난의 되물림으로 인해 교육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 현실로) 이와 같은 역사를 목격한 우리가, 과연 올바르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자백>은 2012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가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몰렸다가 누명을 벗게 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국정원은 허위자백과 증거조작으로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아갔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의 사주로 언론들은 왜곡된 사실들을 내보낸다. 이들을 통해 대중들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유우성 씨가 간첩이라고 믿게 되었다. 유우성 씨는 결국 3년 만에 무죄를 입증한다. 그는 승소했으나, 흘러간 세월은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다. 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넣기 위해 증거를 위조한 검사들은 고작 정직 1개월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책임 의식이 없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김기춘 실장도, 원세훈 전 원장도 그렇고. '한국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자기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 의식이 전혀 없구나'. 입으로는 당시 법률적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말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이 있다거나, 그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어서 위로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면 시종일관 그런 표정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근본적으로 '(그들이)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라고 느꼈습니다. 

그건 원세훈 전 원장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부분을 국민이 봐야 하지 않나 싶었죠. 고위공직자들이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는 나라잖아요. 40년 전에 많은 간첩을 만들어낸 분인데, 40년 뒤에 자기가 만든 게 조작이라는 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단 말이에요. 대한민국 이인자로서, 배후에서 좌지우지하면서... 그 과정에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났고, 그 상황에서 청와대는 계속 모른 척하고, 국정원은 '조작이 아니다'라고 하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얼마나 아직도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최승호 뉴스타파 PD 인터뷰 내용


우리 사회에서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는 실로 엄청나다. 그들의 죄가 낱낱이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쥐고 있다. 그들이 기득권을 계속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애초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소리 내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시민들 덕분일 게다. 왜 우리는 소리 내지 않는 것일까? 소리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텐데, 왜 우리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를 않는 건가?




자신이 국가의 노예인지 국가의 주인인지는 세금을 납부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결정되는 것만이 아니다. (...) 내가 국가의 주인일 수 있는 것은 사회의 방향과 담론의 형성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교양>, p35


이 시대를, 이 나라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긴 한가? 지금으로써는 우리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미약해 보인다. 우리는 아직 어리다. 그러나 이런 우리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첫 번째, 우리의 영향력을 행사할 때가 왔을 때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그때를 위해 각자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건설적인 토론문화를 익힌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볼 때, 미디어에 선동되지 않고 최대한 중립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나는 가치관을 정립해나가는 시기를 겪고 있다.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해 주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부정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이상하게도 분노의 방향은 엉뚱한 곳을 향한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저기 먼 곳에 있는데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하며 아웅다웅하고 있다.

나의 세계관과 타인의 세계관이 다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결코 소통하지 못할 것임을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다. 소통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소통은 내가 타인의 세계관을 논박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시민의 교양>, p.250


두 번째, 주변 이들이 국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한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도 벅찬데, 왜 해결할 수도 없는 일에  스트레스받아야 해?”라며,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인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책임감을 느낀다. 아직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들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가 더욱 중요할 수 있고, 개인의 문제와 국가의 문제에 대해 경중을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강요를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인도하는 일이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바쁜 현대인들은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회적 쟁점에 자연스럽게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 (...) 바쁜 현대인들은 안 그래도 정신 사나워 죽겠으니 사회는 소란스럽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현대인의 무관심을 깨우기 위해서라면 소리를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적 쟁점은 산으로 간다. 

시민에게는 의무가 있다.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의 이익을 고려해야 할 책임 말이다. <시민의 교양>, p.159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 사회는 목소리 크고 힘센 놈들이 이겨왔다. 이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사실과 논리에 입각한 합리적인 목소리를 말이다. 

청년들이 아직 기성세대에 비해 힘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부정부패한 기득권 세력들을 돕는 꼴이다.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미래로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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