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에, 당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이 뭔가요?
한 회사의 R&D부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스무명 남짓한 우리 부서는 다양한 전공을 가진 이들로 구성되어 있고, 나의 학부전공은 산업디자인이다. 사옥투어를 통해 방문하는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는데,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이들로부터 '디자이너로써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다시 되묻는다.
- 당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 당신이 하고 싶어하는, 좋아하는 디자인은 어떤 일인가요?
'디자이너로써'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은 어쩐지 내가 하고 있는 (또는 하려고 하는) 일을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제한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은 Decoration과 유사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문제를 탐색/정의/해결하는 과정이다. 아이디어를 실체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지, 그것이 곧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필드에 있는 사람이더라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정확하게 정의해놓고 시작하지 않으면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커리큘럼에 따라 개인이 이해하고 있는 디자인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수업을 들었더라도 디자인에서 개인이 좋아하는 부분은 다르다.
내가 UX 디자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리서치를 통해 나온 결과를 분석하고 흩어진 정보들 속에서 큰 흐름을 발견하는 지점이다.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이던 정보들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통찰을 얻는 순간이 즐겁다.
누군가는 영감을 통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우리는 학창시절부터 장래희망란에 선생님, 의사, 정치인, 공무원 등 명사로만 표기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하나의 명사로 설명되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고, 각기 다른 재주를 타고 태어나며, 취향도 모두 다르다.
'어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은 어떤 건가?
- 왜 하고 싶은거지? 어떤 부분이 재미있어서?
하고 싶은 '직업'을 찾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것인지를 찾는 것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이라면 알겠지만, 같은 직군이더라도 회사에 따라, 팀에 따라, 프로젝트에 따라 역할은 달라지기 십상이다. 맡게 되는 역할이 달라질 때마다 정체성이 혼란이 오고, '아, 디자이너가 원래 이런건가?'하며 슬럼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 이러한 혼란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글은 다소 전문성이 낮은 직종에 해당되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여전히 혼란스러움 속에 있지만, 이러한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더 돌아보고 알아감으로써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