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걷기 #1
내겐 사소하지만 작은 즐거움을 주는 습관이 있다. 바로 '걷기'이다. 말장난 같겠지만 '걷기'와 '걷는다'는 나에게 그 의미가 아주 다르다. '걷는다'는 건 때로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생활하기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행위이다. 하길 싫다고 내 마음대로 피할 수 없고 무조건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생존 행위이다. 그에 반해 그 생존 행위를 벗어나 내가 애써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온전히 내 몸과 맘을 위해 하는 습관이 '걷기'이다. '걷는다'는 생존 행위이고, '걷기'는 힐링 습관이라는 차이가 있다. 아무튼 나에겐 그렇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한참 전, 젊은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보계를 허리춤에 달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젊은 놈이 아저씨처럼 웬 만보계’라고 놀리는 주변사람들도 있었지만 하루에 내가 얼마큼 걸었는지 알려주는 만보계에 매력을 느꼈나 보다.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크다는 홍보문구를 보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일제 만보계는 500원짜리보다 훨씬 컸다. 벨트 허리춤에 달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하루 마무리하는 저녁에 만보계의 걸음수를 체크하는 재미가 있었고, 다음날 아침 하루의 시작은 만보계를 리셋해서 0으로 만들어서 허리에 차면서 출근하곤 했다. 그 당시 만보계 또는 만보기라고 불리는 이 기계는 왜 굳이 걸음수를 그 많은 숫자 중에서 10,000으로 정했을까라는 궁금증도 있었다. 말이야 쉽게 '만보'라고 하지만 1만 걸음은 꽤 많이 걸어야 달성할 수 있는 수치이다.
1960년대 일본 야마사토케이(山佐時計)라는 회사에서 걸음수 측정기를 출시했다고 한다. 그 기계를 출시하며 건강을 위해 '하루 1만 보 걷기 캠페인'을 벌이며 만보계(万歩計, 만포케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캠페인이 건강을 좋아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목받으며 덩달아 이 만보계도 잘 팔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일본의 이 기계 영향을 받아 걸음수를 측정하는 기기를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나 보다.
(사족 : 위에서 내가 언급한 젊었을때 차고 다녔던 만보계가 일본 YAMASA라는 회사에서 만든 기기였다. 그 기기가 야마사토케이 회사와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름이 같은 거 보니 그럴지도~)
나중에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가 걸음걸이 숫자 세는 걸 대체해 줘서 이젠 쓸모없어진 물건이지만 나에게 처음으로 걷는 즐거움을 알려준 물건이 만보기였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걸음수를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헤아려서 데이터 기반으로 엄청난 분석을 해주겠지만, 걸을 때마다 작은 소리로 ‘딱딱’ 소리를 내며 걸음수를 올려주는 예전 만보계 아날로그 기판이 아직도 그립다. 비록 몇 걸음 더하고 덜 하는 허수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걷기를 정말 좋아한다. 어색한 중의적인 표현일지 몰라도 나 자신이 하는 일(work)을 더 잘하고 싶어 걷기(walk)를 더 좋아하기도 하는 듯하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딱딱한 보고서 작성 업무와 여러 회의에 치여 퇴근 이후 '직장인 모드'에서 쉽게 벗어나긴 어렵지만, 그래도 시간을 쪼개며 저녁에 '걷기 모드'로 변환하려고 노력한다. 퇴근 후 컨디션이 좋은 날은 8~10km 정도, 과로에 지쳐 다크서클이 진할 때는 3~5km 정도, 과도한 음주로 비틀거릴 때는 단 1km 이내라도 걸으며 그날 스트레스는 풀려고 한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스트레스란 건 푼다고 쉽게 풀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스트레스가 뭉쳐버려 날 압박하기 전에 그 원인이 되는 생각들을 잘라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그 생각들에 사로잡히기 전에 몸을 바쁘게 움직이면 훨씬 나아진다. 쌓이려는 스트레스 뭉치도 작아지게 한다. 그게 반복되다 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분명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나만의 노하우가 걷기이다. 어쨌듯 걷기는 단순 걸음걸이가 아닌 수십 년 회사생활을 버티게 해 준 피로회복제이자 비타민이었다.
어느 역사학자가 걷기에 대해 이렇게 찬양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주치의 두 명이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이다."라고 말이다. 나 역시 오늘도 하는 일(work)을 더 잘하고 싶어 틈날 때마다 그 두 다리로 걷기(walk)를 한다. 그 일(work)이라는 게 꼭 업무만은 아니다. 육아나 집안일이기도 하고, 취미생활이기도 하고, 공부이기도 하다. 남들과의 인간관계도 당연 포함된다. 아무튼 걷기는 모든 일에 활력이 된다.
이처럼 걷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걷기에 대한 여러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아무튼, 걷기>라는 에세이로 일상의 스펙트럼이라는 관점에서 걷기라는 단순한 행동만이 아니라 걷기를 비롯한 여러 에피소드를 풀어 가려고 한다.
"여러분은 왜 걷기를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