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누구나 보폭이 서툴 때가 있었다

아무튼, 걷기 #3

by 웰컴이안

처음에는 누구나 보폭이 서툴고 어색할 때가 있었나 보다


그 날은 차를 놔두고 출근한 김에 퇴근하면서 좀 걸으려고 했다. 회사를 나와 작정하고 걸으려는 찰나, 상가들이 모여 있는 먹자골목에서 <회 사 가 는 날>이라는 간판이 눈에 보였다. 이제 막 사무실을 나와 퇴근하며 본 터라 '회사 가는 날' 문구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러나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니 '회사 가는 날'이 아닌 '회 사가는 날'이었다. 회사 가는(go to work) 게 아니라 회를 사가는(buy sashimi) 거였다. 새로 열린 횟집이었던 게다. 나름 센스 있는 작명이지만 나처럼 퇴근 하는 직장인이 그 곳으로 발길을 재촉하고 싶은 음식점일까라는 우스운 생각은 계속 맘속에 맴돌았다. 회사에서 나온 후 다시 회사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마음이란 게 엄청 싫기 때문이다. 뭔가 일이 잘못 되었거나, 급히 처리해야 할 긴급사항이 생긴 게 주된 이유이다. 꼭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니더라도 회사 가는 걸 누가 좋아하랴! 그런데 퇴근길에 우연이라도 그런 간판이 눈에 보이니 마음이 조금 꼬였던 모양이다. 일단 그게 회사이든, 횟감이든 간에 말이다. 직장인들이 출근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바로 '퇴근'이라는 유머가 있다. 예전 인기 있었던 개그쇼 프로그램이 일요일 저녁에 방송되었는데, 그 방송 재미와는 별개로 프로그램 홈페이지 댓글엔 '방송 끝마칠 때 나오는 밴드 연주를 들으면 주말이 끝난 거 같아 슬프다. 아~ 벌써 내일이 출근이구나!' 라는 둥의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대부분 직장인은 출근을 그리 반겨 하지 않는다. 그냥 가야 하니까 가는 것이리라. 월요일이 오니, 또는 아침이 밝아오니(물론 점심이나 저녁에 출근하는 직장인도 많겠지만 흔히 출근이라고 하면 아침을 이야기하니 이렇게 써두겠다) 마지못해 출근하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아! 드디어 출근이구나. 마음이 설렌다. 얼른 가고 싶다. 이번 주에는 과연 무슨 일이 펼쳐질까?'라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있긴 있겠지만 아주 소수 의견이니 이런 케이스는 그냥 넘어가도 되겠다. 월요병을 치유하는 방법이 인터넷에 여러 가지 올라와 있다. 뭔가 조삼모사 같긴 하지만 일요일에 출근하면 월요병이 없어진다는 사람도 있고, 정말 갖고 싶던 물건을 주문해서 월요일 사무실로 받을 수 있게 주문해 놓으면 택배 기다리는 마음으로 설레며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다.


회사는 그런 곳이고, 출근은 그런 것이다. 그렇고 그런 출근 생활을 벌써 수십 년째 하고 있다. 일년, 이년, 삼년 지나 이렇게 수십 년째 하다 보니 좀 무덤덤해졌다. 아까 말한 월요병처럼 마냥 싫거나 거부감만 드는 건 아니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져 자연스레 움직이는 어떤 박스들처럼 이제 자연스럽다. 그 돌고 도는 컨베이어벨트 일상 덕분에 내 일생도 지금껏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덕분에 내 입출금통장도 그럭저럭 화색이 돌고 있는 셈이니 고맙기도 하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회사 첫 출근할 즈음은 얼마나 들떠 있을 때인가? 처음은 그런 것이다. 나에게 최고 취미인 걷기 역시 입문할 때가 가장 기분 좋지 않았던가. 우연히 보게 된 '회 사가는 날'이라는 횟집 간판을 보다가 이처럼 처음 입문할 때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나의 사회생활 처음은 어땠지 하는 생각이 들며 말이다.


사회 초년생의 시작은 우연한 기회였다. 초고속인터넷을 넘어 우주 위성인터넷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인데 새삼 전화선에 연결해서 뚜뚜뚜 연결음을 내는 모뎀 세대를 얘기하긴 싫지만, 나는 그 시절 PC 통신을 즐겨 하다가 <D 음반회사>에서 첫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당시 PC 통신에 가수들의 팬클럽 커뮤니티가 있었다. 대학생 때 L 가수의 팬클럽을 좋아해 자연스레 그 가수의 공연과 소속사를 몇 번 찾으며 안면을 익히다가 아예 온라인을 포함한 음반홍보 업무를 맡으며 그 회사에 들어갔다. 그렇게 입사한 첫 번째 직장은 마당이 있는 고급주택을 사옥으로 사용하던 광화문 소재 음반회사였다.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던 몇몇 밴드가 그 회사에 소속되어 나의 10대 감수성 8할은 그 음반회사의 LP 음악을 들으며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이 바뀌며 본격적으로 음반홍보 업무를 하게 되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당시 방송국이 모여 있던 여의도로 매일같이 외근을 갔다. 스튜디오에서 신곡을 녹음하고, 방송국과 언론사에 새 음반을 소개하고, 소속 가수들의 방송 일정을 잡고, 지방공연을 다니며 좋은 곡이 라디오와 무대에서 퍼져가길 진심으로 바라며 열심히 일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동경하던 뮤지션들과 일하던 3년 남짓 그 첫 번째 직장생활은 말 그대로 아련하기만 하다. 안 좋은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훨씬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던 시절이다. 대학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이 일을 하면 얼마나 일을 잘했겠냐 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 기억 속 그 당시는 씁쓸함보다는 달콤함이 더 남아있다. 뭐든 첫 번째의 기억은 그런 게 아닐까.


우리가 흔히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 중에 선택하라는 밸런스 게임 비슷한 질문을 때때로 받는다. 난 좋아하는 일을 첫 번째 직업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그게 일이 되니 좋아하던 음악도 오히려 덜 듣게 되고, 공연장에서도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입장이 되었다. 내가 선택한 일자리에 대해 무턱대고 긍정 마인드만 갖기에는 그때 상황과 처지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일단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리 '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첫 직장에 또래가 비슷한 직원이 한 명 있었다. N 매니저이다. 동년배이긴 하지만 그는 공연과 음반 쪽에서 일을 먼저 시작해 경력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여러 선배들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내 윗선배였다. 그 후로 내가 세 군데의 회사를 다니며 세 명의 멘토를 만났는데 N 매니저는 나의 첫 멘토였다. 침착하고 늘 판단이 빠르고 서글서글한 성격을 소유한 그의 최대 장점은 '유연함'이었다. 상대를 질책할 때도 기분 나쁘지 않게, 엄해야 할 때도 무겁지 않게, 정중해야 할 때도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나중에 3년차로 접어들어 내 진로를 고민할 때 그는 동갑내기답지 않게 냉철한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좋아하는' 일을 했던 거고, 그는 '잘 하는' 일을 했던 거다."


걸음걸이의 보폭이 있듯 일하는 데도 보폭이 있다. 처음 걷기를 시작할 때 나는 1km를 걷는데 십 몇 분이 걸렸다. 그러다가 걷는 게 내 몸에 맞춰지고 익숙해지니 10분 이내가 되었고 그 이후 9분 안팎으로 시간이 줄었다. 큰 시간차이가 한꺼번에 확 줄어든 건 아니었지만 알게 모르게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내 보폭이 걷는데 조금 더 최적화된 덕분일거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일의 보폭이 조금씩 익숙해지며 일하는 능력이 더 나아지는 것이다.


걷기를 오래 하거나 바르게 걷지 않으면 허리나 무릎 통증이 온다. 나는 5km 이내일 때는 덜한데 그날 걷기를 10km 이상 하면 허리가 아프다. 그러다가 전문가 인터뷰 기사를 통해 너무 오래 걷는 건 통증을 유발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걷는 거리에도 최적이 있는 것이다. 그 이후는 가급적 1시간 이내에서 걷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가 걷는 시간을 알게 되고, 그 기준에 맞춰 걸으니 정확한 거리를 알게 된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일하는 보폭 기술이 늘어나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업무 범위가 정해지게 마련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N 매니저는 단련되고 숙련된 보폭으로, 난 그에 비해 익숙지 않은 서툰 보폭으로 걷던 시기였다.


(후일담이긴 하지만) 그렇게 유연함을 무기로 가진 N 매니저는 계속 그쪽 바닥(왠지 음악 홍보 분야는 '업계'라는 말보다 '바닥'이란 말이 어울려 보여서 이 단어를 쓰는 걸 그쪽 바닥 계시는 분들은 양해 바랍니다)에서 승승장구하며 나중에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어마어마(?)한 뮤지션의 매니지먼트를 책임지는 업계 최고 베테랑이 된다는.



작가의 이전글매일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배달하는 사람이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