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걷기 #4
위의 링크 글처럼 나의 첫 회사생활 3년은 이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 변화 조짐도 있었다. 광화문에서 마포대교를 건너 당시 MBC 방송국으로 가기 위해 좌회전을 하다 보면 쌍둥이 건물이 있다. 그때쯤 광고 카피가 '사랑해요~ 사랑해요~ OO' 였던 걸로 기억하는 한 기업의 사옥이 바로 그곳이다. 방송국 주차장이 만차가 되어 들어가지 못하거나, 가끔 홍보하러 오는 음반회사 직원들 주차를 제지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그 쌍둥이 건물 바로 옆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곤 했다. 그날도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는데 쌍둥이 건물 앞 플래카드에 '경력사원 모집'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대학 전공 수업시간에 경영과학, 마케팅, 노사관리, 회계관리와 같은 것을 책으로 배웠지만, 3년 동안 정신없이 음반홍보를 하다 보니 실제로 그런 이론이 일하는 현장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쌍둥이 빌딩을 보면서도 기업이라는 모습이 생경하고 낯설었다. 물론 음반홍보 업무를 하면서도 마케팅과 PR 홍보를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산업 차이가 있다 보니 더 낯설었던 것이다. 그날 퇴근하며 3년간 다니던 음반회사 생활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그때부터였다. 부쩍 그 쌍둥이 빌딩 근처를 자주 맴돌던 시기가. 이때도 고민이 생기면 그 고민 언저리를 무작정 걷는 버릇이 있었나 보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정신 차려보니 쌍둥이 빌딩 몇 층에 있는 면접장에 앉아있게 되었다. 그 얼마간 시간 동안 경력사원 모집 공고가 있는 사이트에서 채용정보를 얻고, 이력서를 써서 지원한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면접장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여의도 한강고수부지에 늦가을하늘이 정말로 푸른색이었던 건 기억난다. 어색한 정장 차림을 한 내 얼굴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보다 더 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학 4학년 2학기 때 음반회사에 일찍 입사를 하는 바람에 어설프게나마 대기업 면접장에 정식으로 앉아보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대학졸업반 시절 취업준비하며 면접 대비를 했지만 음반회사 3년이란 시간 동안 그때 스터디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
첫 번째 회사 입사 때 면접은 대충 이랬다. 그간 드나들었던 음반회사 선배 직원에게 '이 음반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러고 나서는 정식 면접 인터뷰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나의 입사 희망이 전해진 후 연락이 와서 음반회사 사장님과 몇 차례 밥을 먹으며, 또는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다 함께 이야기 나누며 나의 인성과 열정을 어필했었다. "음악을 좋아한다. 게다가 이 회사 소속 가수들의 음악을 엄청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들의 공연이란 공연은 다 따라다녔다. (정말 많은 대중 팬을 거느린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할 듯해서) PC 통신도 잘하고 컴퓨터도 잘 다룬다."고 어필도 했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서 언제부터 출근하라는 승낙과 지시가 함께 어우러진 통보를 받고서야 음반회사 직원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뭔가 그럴듯한 형식이 갖춰진 업무프로세스는 아니지만 음반회사다운 너무나도 인간적인 면접이었다. 물론, 지금의 음반회사는 대형기획사가 많아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먼 과거의 당시 내 개인 기억을 끄집어 얘기한 것이다.
그런 첫 직장의 면접과는 달리 쌍둥이 빌딩의 면접장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면접 대기실에 앉아있자니 그 당시 나에게는 생소한 사원증이란 걸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면접장 앞에는 '경력사원 채용 면접'이라는 인쇄물 표시가 붙어 있었(을 것이라고 기억한)다. 경력사원이라고 하면 무릇 유사한 직종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거나 관련 분야 학위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당시의 나는 기업에서 원하는 '경력' 범주 안에 꼽을 수 있는 경험이 상당히 부족했다. 지난 3년간 음반과 가수를 홍보하며 다니느라 컴퓨터는 할 줄 알지만 계속 버전 업데이트되는 기업용 오피스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것도 아니고, 개발 코딩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녔다. 뭔가 취준생이 갖춰야 할 자격증도 전혀 없었다. 경력사원이라기보다는 중고신입사원이었다. 건너편에 앉아있는 다른 면접자의 업무지식보다 그간 내가 쌓은 지혜로움을 어필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면접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그렇게 면접은 폭망했나보다 생각했던 그 기업에서 며칠 뒤 합격통지가 왔다.
불가사의했다. 면접관들이 독특한 이력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이야기는 입사하고 나서 한참 뒤에 후문으로 들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인생 행운이 몇 번 있다면 이때 보너스 쿠폰 한 장을 사용해 간신히 턱걸이 점수로 기회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음반회사를 퇴사하는 나에게 L 가수는 값비싼 셔츠와 넥타이를 퇴직 선물로 건넸다. 그 셔츠와 넥타이로 코디하고 쌍둥이 건물 첫 출근을 한 나는 이렇게 두 번째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사족) 내가 다닌 첫 번째 회사는 80년~90년대 가요계의 한 획을 긋는 뮤지션들을 계속 배출하다가 IMF 당시 어려움을 겪고, 2000년대 대형 기획사들이 등장하며 다시 한번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그 회사는 서서히 기억 속에 묻히게 된다. 그 회사에 대한 글을 쓴 김에 여기 사족을 짧게 남긴다.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사족(蛇足)이 아닌 회사의 발자취, 사족(社足)이라고나 할까 보다!
일단 그렇게 시작한 두 번째 회사생활은 첫 번째의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람들이 왜 직장생활을 이야기하며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라는 말을 관용어처럼 사용하는지 느낄 수 있는 시기였다. 전선(戰線)이란 게 무엇인가? 전쟁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을 일컫는 말 아닌가! 말 그대로 그 단어 안에는 생존이란 뉘앙스가 들어있다. 서로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남보다 일 처리를 말끔하게 하려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라~ 이런 전선이 내겐 더 맞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구나 하며 전선에서 잘 싸우기 위해 전투화 끈을 질끈 묶으며 일을 했다. 앞서 말한 음반회사 일과 다르다는 게 업종에서 오는 다름도 있었지만, 기업에서 사용하는 '회사 언어'부터 달랐다. 예를 들어 두 번째 회사생활하며 처음으로 '품의'라는 말을 들었다. 내 자리 뒤에서 흘러가는 대화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김 대리, 품의 받으면 부장님께 바로 보고 드리세요."라는 말을 듣고 내 복장을 다듬으며 '품위'있는 자세로 의자를 슬며시 당기곤 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나에게도 '품의'를 올리는 일이 생겼고, 그때서야 '품의'가 '품위'가 아닌 걸 알게 되었다.
'품의'(稟議)는 직장에서 상사에게 말이나 글로 여쭈어 의논하는 걸 말한다.
회사에서는 의사결정을 위해 작성해서 보고하는 문서를 품의서라고 한다.
흔히들 '품의 올려라', '품의서로 보고해라' 등의 표현으로 쓰곤 한다
당시 내 입사동기 한 명은 부서에서 수명 업무라는 말을 듣고 갸우뚱했다는 일화를 나중에 술자리에서 풀어내 다들 웃음을 자아냈다. 선배 한 명이 해야 할 일을 시키면서 본인에게 '수명업무를 하라'고 했단다. 그는 선배의 정확하지 않은 발음을 잘못 듣고는 물아래 수면으로 잠겼다가 보였다가 하는 모습처럼 업무 횟수가 늘 있는 게 아니라서 '수면 업무'라고 하나보다 생각했다. 알고 보니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수명(受命) 업무였다는 걸 한참 후에 알았다고 한다. 회사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린 유명 웹툰 미생이 생각났다. 굳이 내용을 다시 보지 않더라도 그 웹툰 속 주인공 장그래 신입사원도 그러지 않았을까.
초년생 직장인에게는 처음 듣는, 게다가 생전 경험하지 못한 말과 일들이 쏟아지기도 한다. 신입사원에게는 신입사원 수준의 보폭이 있는 것이다. 누구나 시점 시점마다 그 수준에 맞는 숨과 보폭을 갖는다. 아마 장그래 사원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거리를 걸으며 고민을 되새겼을 것이다. 나 역시 사회초년생이 아닌 지금도 고민을 해결하고 싶을 때는 걷는다. 프랑스 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 내 걸음을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고 말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