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 있으면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을까?

아무튼, 걷기 #5

by 웰컴이안

함께 걷는 '동행'이 있으면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을까?


'기원전'을 뜻하는 BC는 Before Crist이고, '기원후'를 뜻하는 AD는 Anno Domini라고 표기한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과 후를 말하는 그 표기를 최근에는 Before Corona, After Disease라고 빗대어 말한 신조어로 바꿔 부르는 경우가 생겼다. '코로나 이전'과 '질병 이후'라고 바꿔 쓴 것이다. 코로나가 세상에 창궐(이 단어는 영화 속에서나 듣던 말인지 알았는데...)하며 코로나 시대는 많은 걸 변하게 했다. 우스갯말로 시작된 단어지만 BC와 AD의 새로운 뜻이 씁쓸했다.


지금은 웃고 이야기하지만 그땐 일상생활하며 2년 넘게 마스크를 쓰게 될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철마다 옆 동네 가듯 쉽게 오고 갔던 외국여행은 아예 엄두도 내질 못했으니까 말이다. 마스크 쓰고 사람을 대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고, '거리 두기'라는 말이 자연스레 몸에 뱄다. 밥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때 거리 두기 때문에 한 테이블에 2명 또는 4명밖에 앉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땐 한강 둔치에 걸으러 나가는 게 한동안 허락되지 않았고, 걷는 게 그나마 자유로워졌을 때에도 마스크를 쓰고 걸어야 했다. 밖으로 나가서 걷는다는 게 신선한 공기 마시며 심호흡하려는 건데 마스크를 써야 한다니 참 안쓰러운 시기였다. 마스크뿐만 아니라 걸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을 두고 걸어야 해서 함께 걷는다는 것도 어려웠다. 혼자 걷는 즐거움도 있지만 함께 걸으며 호흡을 맞춘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데 그걸 못했다니 말이다. 하여튼 그때 꽉 막힌 마스크 세상을 생각하면 맘 편하게 걷는 지금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함께 걸을 수 있으니 말이다.


거의 대부분 시간을 혼자 걷긴 하지만, 나에게 걷기와 관련해서 동반자가 두 명 있다.


자칭 워크맨(walk man)이라고나 해야 할까. 1번 워크맨(walk man)은 아들, 2번 워크맨(walk man)은 동갑내기 절친이다. 두 사람은 걷기에 치명적인 평발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내가 가끔 "아들이 함께 걸으면 얼마 안 걷다가 맨날 힘들다고 한다."며 투덜대기라도 하는 날엔 그 친구는 "네가 평발인 사람이 얼마나 걷는 게 힘든지 아냐?"며 되레 타박을 한다. '아~ 평발이었지.'라고 마음으로는 알아듣지만 육체적으로 공감이 되지 않아서인지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툴툴거린다.


'걸음을 떼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걷기 시작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준비해 오던 일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걸 말하기도 한다. 어떤 뜻이 있건 간에 나에겐 '걸음을 떼다'는 말에 아련한 기억이 있다. 아들이 걸음 떼는 게 나이 또래에 비해 상당히 느렸다. 걸어서 아장아장 걸을 연령 때에도 대부분을 앉아 지내고 걸음을 쉽게 하지 못했다. 처음엔 그럴 수 있으려니 했지만 부모로서 무척이나 신경 쓰이고 걱정되었다. 그러다가 한참 지난 후에 또래에 비해 늦은 걸음을 떼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걷지를 못하다가 두 발로 몇 발걸음 걷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남들보다 걸음이 느려서인지 전반적인 발달도 다소 느렸다. 성인이 된 지금도 아들은 또래에 비해 언어나 운동 지연이 있다. 어린 나이 걸음이 느려 자극을 받지 못해서인지 발바닥 아치 형태가 무너져 평발이 되었다. 그래서 오래 걷는 걸 힘들어한다. 걷는 거 자체가 힘드니 아무래도 걷는 걸 꺼려한다. 앞으로 살아가며 조금은 덜 힘들게 하고 싶어 저녁마다 사탕발림해서라도 걷기 산책에 함께 하려 한다. 어떤 날은 마트에 가서 군것질거리를 사자는 핑계로, 어떤 날은 코인노래방 몇 곡 부르러 가자고.


하지만 청소년이 되어서는 그런 꾐도 쉽지 않다. 차차 정공법으로 나간다. 황톳길 맨발 걷기가 열풍이라 동네 인근에도 몇 백 미터 길이의 황톳길이 생겼다. 뭐 맨발로 걷는 게 대수일까 생각했다가 1시간쯤 황톳길을 걷고 나서 그날 집에 왔더니 바로 꿀잠에 빠져들었다. (뭐, 이건 개인차가 있고 맨발로 걸으면 안 되는 질환을 갖고 있는 분들도 계시니 일반적인 내용이 아님을 미리 밝혀둠) 발바닥 지압효과가 있어서인지 정말 꿀잠을 잤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밤에 꿀잠을 자기 위해 걷자고 설득한다. 주워들은 황톳길 효과에 대해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발 닦는 수건 두 장을 준비해서 부자가 사이좋게 황톳길로 향했다. 하지만 잠시 후 작전미스를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는 그토록 꿀잠을 선사한 황톳길 감촉이 아들에게는 마땅치 않은 것이다. 평발인 데다가 발달이 더뎌 피부 감촉이 예민한 그에게는 황토 느낌이 싫은 게다. 그리고 깔끔한 성격이라 흙이 묻는 게 신경 쓰일 수 있다는 걸 간과했다. 걷는 건 정말 좋은 것인데, 각자 숨과 보폭 말고도 각자 '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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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걸을 때 길의 선호도 차이가 조금씩 있다. 아스팔트길, 시멘트길, 흙길, 산길, 운동장 인조잔디 트랙길, 푹신푹신한 우레탄길 등 저마다 걷는 맛이 다르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또는 그날 목적지와 경로에 맞춰 걷는 길을 다르게 할 때도 있다. 이건 순전히 선호도에 따라 결정한다. 유독 외면하는 길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는 걸 다시 마음속에 체크해 둔다. 이처럼 걷는 맛이 모두 다른데 내가 꿀잠 자는 효과를 누렸다고 황톳길을 불쑥 내민 것이다. 세상 살다 보니 한번 흥미를 잃으면 점차 하기 싫어지는 일들이 더러 있다. 걷는 재미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황톳길에서 발 씻고 나와 버렸다.


아들이 어릴 때, 함께 걸으며 해준 말이 있다. 한글로는 표기가 다르지만 입에서 발음을 하면 비슷한 두 단어를 언급하면서 말했다. 지금은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게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게 사는데 거름이 된다고. 황톳길이 싫으면 저쪽으로 비켜 돌아 깔끔한 트랙길을 걸으면 된다. 부디 열심히 걸어서 그 걸음이 건강해지는데 좋은 거름이 되길 바래본다.


“아들, 히포크라테스가 '최고의 약은 걷는 것'이라고 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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