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했던 동행자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아무튼, 걷기 #6

by 웰컴이안

함께 했던 동행자가 없었으면 너무 재미없어 어쩔 뻔했을까?


아무튼, 걷기 #5


위의 링크 글에 쓴대로 나에겐 걷기와 관련해서 동반자가 두 명 있다. 자칭 워크맨(walk man)이라고나 해야 할까. 1번 워크맨(walk man)인 아들 얘기는 위 링크 글(아무튼, 걷기 #5)에서 풀었다. 다른 한 명 2번 워크맨(walk man)은 동갑내기 절친이다.


2번 워크맨(walk man)은 같은 회사 다니며 알게 된 사회생활 친구 J이다. 초중고 학창 시절 친구에 비해 사회에서 만나면 그리 깊은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무래도 어린 순수한 마음보다는 각박하거나 계산적인 마음이 불쑥 나와서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영혼의 단짝이 되어 이제는 절친 사이다. 코드도, 결도 모두 잘 맞는 그런 친구이다. 불쑥 세계여행을 다니고 싶다며 회사를 관두고 퇴직금으로 여기저기를 여행 다녔다. 지금은 여행 작가 겸 여행 블로거가 되었다. 가끔 만나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J는 여행을 다니고, 난 회사를 다니니 직장인과 여행가 시각으로 스토리를 써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로 머리를 맞댄 적도 있다. <공항버스 기다리는 남자 vs 통근버스 기다리는 남자, 공항남과 통근남이 들려주는 '공/통/남/자'>라는 나름의 네이밍까지는 만들었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도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딱 이 수준이다. 언젠가 그 친구가 해외에 몇 달 여행 나갔다가 국내에 들어와 있을 때쯤 짧게 걷는 여행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서로 말을 안 해도 워낙 잘 통하다 보니 숙소에서 일어나 말없이 김밥 한 줄 각자 배낭에 넣고 거의 말없이 걷기만 하는 여행이었다. 일명 '공항남' J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네 번이나 다녀왔다. 갈 때마다 그곳을 여러 코스별로 수십일 씩 걸었고, 제주도 올레길도 여러 번 완주했다. 걷기와 관련해서는 난 J에게 명함조차도 못 내민다. J는 수준급 걷기 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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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 제주도 올레길 그 친구와 함께]


과연 걷기 프로는 걸을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물어보니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인 워킹화를 꼽았다. 그 외에도 무릎 부담을 덜어주는 스틱, 그리고 각종 무릎 보호대와 발목 보호대, 발에 물집이 생기면 바로 시술하기 위한 실 바늘 세트 등 다양하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양말 역시 중요도 면에서는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발과 가장 밀착해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엄청 예민하기도 하다. J는 오래 걸을 때 확실히 발에 물집이 덜 생기는 효과가 있다며 발가락 양말을 선호한다. 근데 대부분 발가락 양말은 너무 얇다며 그 위에 일반 양말을 하나 더 덧신더니, 어느 날인가 두툼한 등산양말 재질의 발가락 양말을 찾아내고는 무척 흐뭇해했다. 우리가 흔히 신는 일반적인 통짜 양말은 오래 걷다 보면 발가락끼리 간섭을 한다. 그 간섭 과정에서 서로 밀착과 마찰이 반복되며 피부 특정 부위가 부풀어 오르며 물집이 생긴다. 물집이 커지고 그 부위에 통증이 느껴지면 걷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오른쪽 다섯 개, 왼쪽 다섯 개 발가락을 각자 구멍으로 독립시켜 줘서 마찰을 피하게 하는 게 발가락 양말이다. 마치 밀도 높은 공동주택에서 서로 마찰을 빚던 입주자들이 모두 단독주택을 얻어 나가며 평온이 찾아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옆집사람, 아니 옆집발가락 신경 쓰지 않고 살다가 저녁에 발가락양말을 벗을 때나 옆집발가락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하니 너무나 속편하다. 고질적으로 찾아오던 발가락 물집에서도 해방되니 정말 축복 그 자체이다.


며칠간 걷느라 피곤한 몸을 숙소 침대에 누었는데, J와 나는 이렇게 발가락 양말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별것도 아닌 양말 얘기에 이처럼 희희낙락할 수 있는 활력을 주는 게 바로 걷기이다. 참 신기한 마법 같은 힘이 걷기에 분명 있다. 걸으면서 생각이 단순해지니 오롯이 발가락에 집중하게 되고 급기야 발가락의 마음이 이해되었나 보다. 어쨌든 수준급 걷기 프로인 친구 J는 발가락 양말을 너무도 사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난 아무리 걸어도 발에 물집이 잘 생기지 않는 편인데, 그는 물집이 자주 생긴다. 입만 열면 본인은 군대에서 주특기 보직이 보병이라서 수색정찰 훈련을 밥 먹듯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걷기는 신물이 날 정도로 이골이 났다고 떠들어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을 때마다 금세 물집이 생기는 그를 보면 참 아이러니 하다. 그 약한 발가락 피부를 가진 J는 물집이 생기면 그날 저녁 숙소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 수술(?)을 집도해 응급 처치하며 스스로 잘도 해결한다. 그러게! 그리스 철학자 디오네스가 "걸으면 해결된다."고 말했다는 책 구절이 떠오른다.


아무튼 아들이던 친구이던 함께 걸을 수 있는 동행이 있다는 건 그 걸음을 더 오래, 더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해 준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달리기의 페이스 메이커처럼 걷기에도 동행은 큰 힘이 된다. 이처럼 함께 했던 동행자가 없었다면 얼마나 그 길이 재미없고 심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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