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걷기 #7
하루에 한 번은 제대로 된 걷기(생존과 벌이를 위한 '걷다'가 아닌, 시간과 의지를 기꺼이 내서 내 몸을 위해 하는 '걷기')를 생활화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걷기를 할 때 가장 힘든 코스가 있다. 그건 비탈이 심한 오르막길도 아니고,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어 힘이 빠진 상태로 걷는 끝 무렵의 길도 아니다. 걸으러 나가려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첫 코스, 바로 침대부터 신발장까지의 길목이다. "내일은 휴일 아침이니까 일어나면 바로 걸으러 나가야지"라고 최면 걸 듯 중얼거리며 잠든다. 이렇게 전날에 잠들기 전 야무진 계획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신은 그 인간을 비웃는다."
어떤 소설에서 읽은 이 구절과 어찌 그리도 똑같은 상황이 생기는지 모른다. 신이 내 계획을 비웃는 상황 말이다. 전날 잠들기 전 아무리 마음먹었더라도 막상 일어나면 이불을 걷어차고 걸으러 나가기까지의 고민이 계속된다. 날씨 탓일 수도, 컨디션 탓일 수도 있다. 수만 가지의 변명거리가 마음속에 늘 준비되어 있다. 그렇지만 나갈지 말지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일단 나가면 걷는 게 그리도 좋을 수가 없다. 이렇기 때문에 침대에서 벗어나 운동화를 신는 그 코스가 가장 길다는 건 헛소리만은 아니다. 지시를 내리는 머리부터 내 마음속에서 실행하는 심장까지의 한 뼘도 안 되는 거리가 참 멀다. 걷는 걸 꽤 오랫동안 해와서 줄어들긴 했지만 나갈지 말지 고민은 여전하다. 비단 걷기뿐이겠냐? 달리기, 자전거, 수영, 피트니스 등. 뭐든 운동하러 나가는 그 시작행위는 대부분 귀찮고 번거롭다. 그래서 약간의 동기부여가 필요하긴 하다. 체중 감량이 눈에 띄게 보이는 체중계가 될 수도 있고, 그전과 비교해서 팔다리의 근육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 보이는 옷장 전신거울도 될 수 있다.
나에겐 그런 동기부여 중의 하나가 스마트워치이다. 스마트워치 화면을 보면 걸으러 나가기 귀찮은 그 짧은 순간의 고민을 타파해 준다. 아무래도 스마트워치에 걸음수가 숫자로 매일 업데이트되니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동기가 생긴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걸음 숫자를 알려주는 건 만보계이다. 그 숫자를 올리기 위해서는 허리춤에 차고 걸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있었다. 고급 만보계가 아닌 대부분의 만보계는 매번 걸음수를 리셋하면 과거 데이터를 보긴 쉽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요즘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는 어제 내가 걸은 걸음수, 지난 한 달 걸은 걸음수, 일정기간 누적된 걸음수 등 모든 게 기록으로 남는다. 그 데이터를 쉽게 찾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확실히 걷고 싶다는 마음이 동하게 된다. 간단한 메시지 확인뿐만 아니라 통화도 되기 때문에 스마트워치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지만, 아무래도 건강과 헬스 용도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특히 스마트워치를 선호한다. 혈압이나 체지방처럼 건강과 관련한 수치를 체크할 수 있고 운동할 때 내 움직임을 인식해 헬스 데이터도 분석해 준다. 내 주위만 봐도 헬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스마트워치를 착용하는 비율이 확실히 높다.
스마트워치로 유명한 Garmin 브랜드에서 '2025년 Garmin Connect 데이터 리포트'를 발간했는데 그 내용을 보니 우리나라 하루 평균 걸음수가 9,969 걸음으로 조사되었다. 사무직으로 일하는 직장인은 하루에 2~3천 걸음도 걷지 않는데 무슨 1만보에 가까운 걸음수가 평균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특정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사람들의 걸음수를 조사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즉,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균이 아니란 거다. 아무래도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사람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운동을 좋아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기에 움직임도 평균 수치보다는 높을 확률이 크다. 하여튼 거의 만보에 가까운 수치이다. 만보라고 하면 뭔가 꽉 찬 느낌이다.
그럼 우리는 왜 오래전부터 걸음수를 이야기할 때 흔히들 '만보'라는 수치를 이야기했을까? 천보도, 오천보도, 칠천보도 아니고 콕하니 만보를 꼬집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링크) 아무튼, 걷기 #1
위 링크 글에도 썼지만 걸음수를 세는 기계를 만든 일본기업에서 그 기계의 이름을 '만보계'라고 지칭하면서 흔히들 "오늘 좀 많이 걸었다" 하면 그 측정 기준이 만보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기계를 만들면서 아날로그 숫자가 업데이트되게 만들다 보니 계기판 넓이도 고려했을게다. 100, 1000, 10000, 100000 등 숫자 칸의 자릿수를 초기 기획단계에서 설계했을 것이다. 1000을 넣자니 수치가 너무 적고, 그렇다고 100000을 넣자니 하루에 십만보를 걷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적당한 수준으로 타협을 본 것이 만보, 10000이라는 숫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인공지능 AI 챗봇에게 "사람들은 걸음수를 측정하는 기계를 만들 때 왜 '만보계'라는 이름을 지었을까?"라고 물어보니 이런 선문답을 해줬다.
[1만 보 걷기 권고는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건강 관심이 높아지며 ‘만보계(萬步計)’를 판매한 일본 업체의 상술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설명이 제기됩니다. 1965년 일본에서 ‘Manpo Meter(만보 계량기)’라는 이름의 보수계가 판매되었고, 이를 통해 1만 보 목표가 대중화되었다는 설명이 제시됩니다. 단, 일부 보도에서는 하루 1만 보가 건강 이익이 계속 증가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하루 7,500~8,000보가 최적점이라는 관점을 함께 소개합니다.]
백보이던, 천보이던, 만보이던 어쨌든 간에 걷는 건 참 좋은 흐름을 만들어준다. 발바닥이 가장 뜨거워지는 순간, 오히려 머릿속은 가장 냉철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