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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속 세계지도

부엌에서 맺은 평화조약

by K 엔젤

매운 찌개와 김스낵의 국제정치

타이완에서 온 셀리는 저녁마다 뭔가를 끓인다.

된장찌개 같은 걸 만들길래 하루카와 같이 한 숟갈 얻어먹었다.


“이거 먹어봐.”


첫 입에 매운 맛이 확 올라왔다.


“오, 맛있다. 타이 음식이야?”
“아니, 중국 음식이야.”


그날 먹은 찌개는 된장 맛도 살짝 나면서 칼칼했다. 한국식 된장찌개 같으면서도, 마라탕의 사촌 같기도 했다. 매운 음식 좀 먹는다 자부하는 내 입맛에도 기가 막히게 맞았다.

알고 보니 타이완은 중국 음식 문화권이라 마라탕, 훠궈 같은 매운 요리를 즐겨 먹는다. 셀리는 특히 매운 걸 사랑한다며 마라탕 맵기 5단계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고 했다. 아, 이 친구는 매운맛 세계 챔피언 리그 소속이구나.

냉장고를 열어보니 답 나왔다. 생강, 칠리 어니언, 고추기름, 간장, 고추장. 냉장고만 봐도 “나 매운 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명함을 내미는 수준이었다.



김스낵, 누구의 것인가

저녁을 마친 후 셀리는 후식이라며 아몬드가 박힌 김스낵을 내밀었다. 한입 베어무니 단짠의 조화가 입안에서 춤췄다. 단짠에 미친 한국인 DNA가 즉시 반응했다.

방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미 여러 버전의 김스낵이 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


.....그럼 이거 도대체 원조가 어디지?


순간 깨달았다. 음식이 비슷하면 문화전쟁이 벌어지고, 문화가 달라도 갈등이 벌어진다.

인간은 결국 뭐 하나로도 싸울 명분을 찾아낸다.



음식으로 보는 민족의 운명

몇 년 전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백인 룸메이트들과 함께 potluck 파티를 했는데, 나는 한국인의 자존심 김밥을 싸갔다. 결과는 처참했다.


“이거 미끄덩거려. 먹기 힘들다.”


김을 다 뜯어내고 밥만 집어먹다가 결국 야채까지 쓰레기통으로 직행.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미역과 김은 특정 민족의 전유물일 수 있겠구나.

그런데 몇 년 지나니 붉닭볶음면이 미국 마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삼각김밥이 백인 아줌마들 장바구니에 들어가고, 라틴계 산모들이 미역국을 먹는 시대가 왔다. 인류는 결국 미역도 극복하는 생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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