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는 법 검색하며 하루 수입 천 원을 벌던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일 저 일 기웃거리며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방황했던 20대. 좋은 회사에 들어갈 용기조차 없었던 나는 그냥 손에 잡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미용실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시절,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새벽 한 시를 훌쩍 넘긴 시간. 샤워할 기운도 없어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든 날이 수두룩했다. 너무 힘든 날엔 정인의 ‘오르막길’, 이적의 ‘말하는 대로’ 같은
청춘을 위로하는 노래를 들으며 밤새 뒤척이기 일쑤였다.하루 종일 서서 머리 감기고, 청소하고, 눈치 보고 욕먹고.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갔다.
사실 처음엔 미용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 왠지 멋져 보였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머리 감기랴, 바닥 청소하랴, 하루 종일 서 있으면서도 한 마디 말 실수에 눈치 봐야 하는 구조 속에서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하는 미용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그리고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결국 2년을 버틴 끝에 그만뒀다. 그땐 몰랐다.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견딘' 시기였다는 걸.
미용을 그만둔 그때, 내 나이는 서른.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겠다는 위기감에 고용노동부 취업 프로그램에 등록했고, 6개월간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괜찮은 곳'이라 소개받은 한 사회복지 기관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일해보니, 미용일과 사무직의 차이는 몸이 고되냐, 정신이 고되냐의 차이뿐이었다.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 그로 인한 무기력과 자괴감은 미용실이든 사무실이든 다르지 않았다. 미용실에선 최저시급도 못 받고 일했지만, 사무직으로 일해도 월급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점점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튜브에 “부자 되는 법”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부자들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절약하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돈은 ‘얼마나 버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했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한겨울, 버스비를 아끼려고 퇴근길 눈보라를 뚫고 걸어서 집에 오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도 죄짓는 기분이 들어 손이 가지 않았다. 주말 아침이면 맥도날드에서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옷가게 앞을 지나칠 때면 ‘이건 사치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새 옷을 사 입은 게 언제였더라. 어느새 2년이 넘었다.
그렇게 사소한 것 하나에도 벌벌 떨며 아끼는 생활이 이어졌다.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지 몰라도,
내게는 천 원, 이천 원이 한 달을 버티게 해주는 생명줄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아껴도 통장은 늘 바닥이었고, 내 삶은 점점 더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대체 언제쯤 숨 좀 쉬며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돈을 아끼는 게 습관이 되다 못해, 이젠 나 자신에게 쓰는 돈조차 겁이 났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밥 걱정은 없었지만, 화장품 하나 사는 데도 며칠을 망설여야 했다.
‘이거 다 쓰면 다음 달엔 못 사겠지.’ ‘이 정도는 없어도 괜찮겠지.’ 드럭스토어 앞에서 몇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날이 많았다. 거울 속의 나는 점점 초라해졌지만, 그조차 사치라고 느껴졌다.
브랜드 커피는 내게 사치였다. 카페에 가고 싶을 때면 집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를 지나쳐 20분을 걸어 맥도날드에 갔다.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그곳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 순간만큼은 커피 한 잔 가격으로 내 몫의 여유와 위안을 조금이나마 누릴 수 있었으니까.
자기계발?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빴고, 취미? 돈 드는 거라 애초에 관심을 끊었고, 연애? 내 삶 하나도 못 챙기는데 누굴 챙겨. 그래도 사람 사는 게 그렇듯, 아무리 힘들어도 또 어찌어찌 하루는 지나갔다.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가, 그 시절엔 최고의 성과였다.
그럴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누구는 자기 개발에 투자하고, 누구는 여행을 다니고,누구는 '워라밸'을 말하는 시대에. 나는 겨우 버스비, 커피값 아끼느라 하루하루를 ‘생존’하듯 살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을까.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삶이 습관이 되고, 체념이 되고, 결국은 나였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살지?’라는 질문은 어느새 ‘원래 나는 이렇지 뭐’로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할 때,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나 같은 걸 왜 사랑해야 하지?’
가끔은 안 쓰는 물건들을 당근에 올려서 용돈 벌듯 수입이 생기기도 했다. 심지어 헌혈하고 받은 5천 원짜리 문화상품권도 팔아봤다. 하루 수입은 단돈 천원이었지만, 그날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마치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그래도 너는 열심히 살고 있잖아”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냥 그날그날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눈보라 속을 걸어가던 그날도, 당근에서 문화상품권 팔던 그날도, 그냥 오늘 하루를 넘기기 위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