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며칠 전 남자친구랑 쇼핑을 하러 토론토 시내를 걸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남자친구가
"아이원뚜 겟어따뚜 섬데이. 렛츠 고또 겟어따뚜 뚜게더"라고 말하는데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어서 두세 번 더 물어본 끝에 남자친구가 하려는 말이
"I want to get a tattoo someday. Let's go to get a tattoo together."이라는 것을 알았다.
타투를 "따뚜"라고 발음하는 인도영어에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인도사람들은 "T" 발음을 정확하고 강하게 내기 때문에 우리가 인도 영어를 처음 들었을 때 짧게 끊어 읽는 발음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문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Matter'도 [매 떠]라고 발음한다고 하는 인도사람들.
p와 k 발음도 같은 이유로 인도에서는 p [쁘] k [끄]라고 발음한다. 인도 사람들의 영어발음 기호를 알고 나니 학기 초에 내가 처음 알게 된 인도 여자애가 생각이 났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BTS 팬이라며 나한테 한국인들은 피부가 어쩌면 그렇게 하얗냐며 부러워하는 친구였는데 이 친구가 나에게 " You have pretty face" [유 해브 쁘리띠 뻬이쓰]라고 나에게 기를 쓰고 하는 말도 귀에 잘 안 들어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한국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사귀고 있는 내 남자 친구는 뉴델리 출신의 북인도 사람이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힌디어와 함께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어느 정도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당연히 힌디어를 못하고 남자친구는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하고 있다.
인도 남자랑 사귀면서 문화차이에서 오는 큰 문제는 아직은 없었지만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인도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대화하는데 고충을 겪기도 했다. 한 번은 우리가 대화하는 도중에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이해 못 한 단어를 종이에 써준 적도 있다.
나는 지금 캐나다에서 학생 신분으로 인도 룸메이트들과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어서 인도식 영어를 자주 듣게 된다. 내가 혼자 방 안에서 있으면 "왔츠더매 떠 위 뜨유" (너 무슨 일 있어?) 라며 내 방문을 열어서 괜찮냐고 물어보는 인도 룸메이트 친구들. 미국인 원어민 영어로 공부해 온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지 그들의 영어가 가끔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웃기는 건 여기 원어민애들은 인도애들 발음을 척척 다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듯이 인도애들 입장에서 볼 때, 원어민이 아닌 나의 영어발음을 좋아하겠는가. 어차피 내 남자 친구가 인도인이니 피할 수 없으면 내가 익숙해져야 하는 건 아닌가. 게다가 이제는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마트에서나 인도애들을 자주 마주치니까 인도사람들의 독특한 억양이 오히려 귀엽게 들릴 때도 있다.
나는 그동안 왜 인도식 영어 발음에 대해 반감이 들었던 것일까. 어쩌면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인도' 하면 오른손으로 카레 먹고 왼손으로 똥 닦는 미개한 나라로만 생각해서 무의식 중에 인도사람들을 무시하는 마음으로 대했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기는 한 가보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엄청나게 많은 인도애들의 센 억양에 거부감이 생겨버려 대화를 하기 싫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인도사람들과 지내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다.
인도 사람들에 대해 알기 전에는 인도사람들과 대화 때 영어 발음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속으로 깔보는 마음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도인 남자친구를 사귀고 인도 룸메이트들과 지내면서 인도식 영어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세상 일이 모두 생각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