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쉼터

오늘도 콘돔 옆을 지나친다

by K 엔젤

나비처럼, 그들을 보내며

– 죽음과 삶, 존엄을 지키는 작은 공간의 기록


1. 단순한 쉼터가 아니다

내가 일하는 이곳은 단순한 노숙자 쉼터가 아니다.
이곳은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이 모여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공간이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사람들이 숨을 나누며 살아가는 곳.

캐나다는 마약이 합법인 나라다.
하지만 합법이라는 말이 곧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약물은 쉽게 손에 들어오고, 오남용은 일상이 된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누군가가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심정지, 호흡곤란, 당뇨, 폐암 등
삶을 온전히 살아보지도 못한 채 스러지는 생들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자발적인 인류애, 그것만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2. 창문에 남겨진 이름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창문 곳곳에 붙어 있는 수많은 나비 종이와 알파벳 이니셜이 눈에 들어왔다.
장식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건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니셜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이 꼭 크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 작고 얇은 나비 종이에 적힌 이름 하나. 그건 그 사람의 존재와 삶을 잊지 않겠다는 조용한 존엄의 표현이다.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나비 종이를 꺼낸다. 그 위에 정성스럽게 이름을 써서, 하늘을 향해 날아가듯 벽 한편에 붙인다.

그 사람이 이제는 고통 없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으로 우리는 하나의 이름, 하나의 나비를 조용히 보내준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아프고, 조용하며, 인간적이다.



3. 당신의 이름은 아름다워요

“자신감은 아름다움의 또 다른 이름이야.
너 자신을 절대 의심하지 마.”

센터 벽 여기저기에는 이런 힘이 되는 문장들이 붙어 있다.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에게
이 짧은 문장은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온기가 된다.

누군가에겐 스쳐지나갈 문장이지만,
누군가에겐 생을 이어가게 해주는 유일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주는 공간이다.


4. 생명을 지키는 작은 배려

– 노숙자들과 콘돔, 그리고 생명의 존엄


이곳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는, 콘돔이 생리대와 함께 공공장소에 자연스럽게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찾기 쉽게 해줘서 고마워요.”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이건 단순한 물품이 아니라,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사회의 배려이자 존중이라는 것을.

삶이 불안정한 이들에게도 사랑이 있고, 관계가 있고, 충동이 있다. 하지만 그 관계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이 사회는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콘돔이 있고, 생리대가 있고,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가져갈 수 있다.

그 진열대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당신의 삶은 소중해요.
당신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해요.”


이곳은 죽음을 마주하지만, 동시에 삶을 지키는 곳이다. 작은 나비 한 장, 짧은 문장 하나, 투명한 콘돔 통 하나에도 이 사회가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곳은 그렇게 오늘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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