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녀 상미가 말하는 남자, 결혼, 그리고 살아남는 법
노숙자 지원센터의 오후 근무는 대체로 느긋하게 시작된다. 보통 오후 3시나 4시쯤 출근해서, 밤 10시 혹은 11시까지 이어지는 일정. 아침처럼 정신없이 쓸고 닦고 치울 일은 적다. 오전에 한바탕 분주하게 지나간 자리 위에, 잠시 숨 고를 틈 같은 시간이다. 오전 중에 입실했던 사람들은 오후 4시 반쯤 퇴실했다가, 저녁 식사가 준비되면 다시 돌아온다.
들어오는 발걸음마다 하루치 피로와 이야기가 묻어 있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그들을 맞이하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준다. 크게 특별한 일은 없지만, 그 ‘별일 없는 하루’가 지속되는 게 이곳에선 가장 평화로운 일이다.
하루 세끼 중 가장 따뜻하게 나가는 한 끼라, 준비할 때부터 신경이 쓰인다. 특히 라자냐는 인기가 많아서 개수 맞춰 준비해도 순식간에 바닥이 난다.
음식 나눠줄 때마다 느껴지는 눈빛의 간절함,
“오늘 라자냐 있다며?” 하고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들어오는 사람들.
하지만 어느새 “메인은 다 나갔어요"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기대를 안고 돌아온 사람 한 명이, 메인 없이 빵만 들고나가는 뒷모습을 볼 때면 내가 더 속상하다. 괜히 죄지은 기분마저 든다.
매주 수요일이면, 지역 자원봉사자 Jenna가 센터에 온다. 제빵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아침 일찍 구운 빵을 직접 들고 온다. 그날따라 센터 안은 갓 구운 시나몬 롤의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찼다.
쫄깃한 식감, 따뜻한 시나몬 향.
입안 가득 넣고 천천히 음미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잠시나마 거리의 피로가 사라진 듯 평온함이 스쳐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돈다. 도움 주는 입장이지만, 그날만큼은 나도 그 향긋한 한 조각이 간절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 따뜻한 빵 한 조각으로, 잠시나마 위로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녁 50~60명을 대접하고 나면, 주방 한편엔 수북이 쌓인 접시들이 기다리고 있다.
뜨끈한 단호박찜이 남긴 갈색 국물 자국, 라자냐의 치즈 자국이 벽처럼 쌓이고, 코울슬로에서 떨어진 채소 조각들이 접시 밑을 수놓는다.
"대망의 설거지 타임"은 그 자체로 일과의 마침표이자, 다시 시작을 알리는 숨 고르기 시간이다. 물비누 거품 속에 스치는 접시들의 멜로디, 뜨거운 물이 튀며 만들어내는 찰랑이는 리듬. 마주 선 동료들과 나누는 짧은 한마디.
“오늘도 수고했어요”, 혹은 “이제 좀 쉬어도 되겠죠?”속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묻어난다.
설거지를 마치고 손을 씻은 뒤, 불이 꺼진 주방 한편에 남는 건 비로소 깨끗해진 접시들뿐. 그 접시들이야말로, 방금 막 사람들의 끼니를 채웠다는 가장 선명한 증거이자,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는 표시다.
오후 6시, 사람들이 잠시 퇴실하고 나면 센터 안은 다시 조용해진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잠깐의 여유가 아니라 다시 밤을 준비하는 분주한 시작이다. 한 시간 동안 바닥을 밀고, 음식 자국이 묻은 테이블을 닦고, 하나둘 간이침대를 펼친다.
철컥철컥, 침대 다리 펼쳐지는 소리, 쓱쓱 밀대로 닦이는 바닥의 결. 누가 보지 않아도 늘 같은 자리, 같은 방식으로 정리한다. 익숙한 손놀림 속엔 묵묵한 책임감이 깃들어 있다.
이 공간은 다시 누군가의 ‘하룻밤’이 될 준비를 마친다. 바닥은 말끔히 닦이고, 침대 위엔 깨끗한 담요가 놓인다. 밤이 오기 전, 센터는 그렇게 또 한 번의 하루를 맞을 채비를 한다.
침대를 펴고 나면, 그 옆에 각자의 물품을 담아둘 보관 상자도 함께 놓아야 한다. 이 작은 상자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루 동안 품고 다닌 전 재산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목발 없이는 걷기 힘든 Josh 할아버지는 오늘도 먼저 입실 대기줄 앞에서 눈에 띄었다. 덥고 지친 얼굴로 조용히 서 있던 그를 보고 우리는 특별히 안쪽 의자에 먼저 앉아 기다릴 수 있게 해 드렸다.
“괜찮으세요, Josh?”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네” 하고 짧게 웃었다.
작은 배려 하나에 사람의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그날 밤, Josh의 침대 옆 보관 상자 위에는 조용히 개켜진 담요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어느덧 오후 7시. 입실 시간이 되었다. 잠시 고요하던 센터에 다시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루를 길 위에서 버티고 돌아온 얼굴들. 누군가는 땀에 젖은 셔츠를, 누군가는 축 처진 어깨를 끌고 천천히 앞으 로 들어온다. 입구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체온을 재고, 각자의 침대로 안내한다. 누군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누군가는 “오늘도 감사해요”라며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그 짧은 눈빛, 그 말 한마디에 하루치 피로가 조금은 녹아내린다.
또 다른 밤이 시작된다. 여기서는 ‘저녁’이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안정을 되찾는 유일한 시간이다.
찬 바람이 뺨을 스치고, 숨을 내쉴 때마다 허공에 하얀 김이 맴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오늘, 센터 문 앞에는 입실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삼삼오오 모여 있다.
두툼한 패딩 사이로 얼굴만 내민 채,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서 있는 모습.
어떤 이는 손을 비비고, 어떤 이는 호호 불어가며 손난로를 쥐고 있다. 긴 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은 잠자리 하나가 아니라
‘그래도 오늘은 따뜻하게 잘 수 있다’는 작은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하루하루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이곳이 누군가의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마음 깊숙이 다가온다.
오늘은 전날 많이 남았던 파스타 두 그릇을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나눠 먹었다. 입실 시작까지 딱 10분 남짓한 짧은 틈.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조금은 식은 파스타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조용히 웃고, 누군가는 오늘 있었던 작은 해프닝을 이야기했다. 그 순간만큼은 바쁜 업무도, 센터의 긴장감도 잠시 옆으로 밀려난 듯했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시간이 참 좋다. 소리 내 웃을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그 짧은 10분이 어쩌면 오늘 하루 중 가장 따뜻했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간식으로는 치토스, 도리토스 같은 칩 종류에 캐나다의 국민 간식이라고도 불리는 바나나 브라우니가 나왔다. 짭짤한 과자에 달달한 디저트까지. 잠깐이지만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었다. 바나나 브라우니를 집어 들고 “이거 진짜 좋아해요” 하는 사람도 있었고, 칩 봉지를 들고 몰래 웃던 이도 있었다. 어쩌면 별것 아닌 간식이지만, 이 작은 간식 하나에 사람들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걸 보면 음식이 주는 위로란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이런 작고 소박한 순간들로 채워진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입실 시간이 되면 명단을 들고 침대 번호를 하나씩 확인하며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낸다.
“Dave, 14번.”
“Maria, 오늘은 7번이에요.”
이름을 부르고, 고개를 들어 서로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 짧은 인사, 작은 미소 속에 낯선 하루를 함께 살아낸 동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날그날 컨디션이 다른 사람들, 말없이 눈인사만 하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오늘 진짜 추웠어요”라며 툭 던지듯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같은 이름표는 아니지만, 이 시간만큼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그 작은 질서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다시 붙잡을 수 있게 해주는 고리처럼 느껴진다.
화장실 앞에 Jamie가 조용히 서 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 그 옆에서는 Bone이 중고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소리 없이 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인다. 두 사람은 말이 없지만, 어쩐지 익숙한 동료처럼 나란히 있다.
센터엔 화장실이 두 개뿐이다. 이용자가 많은 데다,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약물을 사용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직원이 열쇠를 들고 다니며 직접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화장실 앞엔 늘 짧은 줄이 생긴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에도 누군가는 조용히 있고, 누군가는 게임을 하거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 짧은 순간들이 쌓여 이곳의 하루가 만들어진다. 아무 일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감정과 사연들이 조용히 오가는 시간이다.
밤이 되면 센터는 겉으로 보기엔 한층 고요해진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엔 항상 긴장감이 숨어 있다. 도난 사건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지니고 있는 물건이 전부인 이들에게 ‘하룻밤 짐’은 생존과도 같은 것. 그 때문에 작은 물건 하나에도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끔은 말다툼이 격해져 주먹이 오가고, 그럴 땐 근무자가 경찰을 불러야 한다.
범죄나 폭력 상황에 대비해 오후 근무자와 새벽 근무자가 24시간 치안을 살펴야 한다는 건 이곳의 일상이다. 약물 중독이 심한 이용자들 중 일부는 예고 없이 갑자기 쓰러지거나 심정지, 호흡 곤란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망설일 틈 없이 911에 전화를 걸고, 동시에 나머지 이용자들의 안전도 챙겨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공간을 가능한 한 ‘안전한 쉼터’로 지키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우리 센터에는 남성 이용자보다 여성이 더 많다. 그런데 이 동네는 아시안이 거의 없는 지역이라 아시아 여성은 특히 보기 드물다.
얼마 전, 중국인 여자와 한국인 여자가 입실했다는 소식을 듣고 괜히 마음이 먼저 반가워졌다. 낯선 곳에서 비슷한 언어와 문화권의 누군가를 만나는 건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직접 말을 섞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방 안을 오갈 때마다 어깨너머로 익숙한 표정, 익숙한 몸짓이 보여 괜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이곳은 하루하루가 낯설고,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않는 공간이지만, 그날은 조금 덜 외로운 느낌이었다.
우리 센터에는 여성 전용 방이 따로 있다. 그날도 평소처럼 방을 지나치다, 헤드폰을 끼고 조용히 누워 있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인 여성 상미 씨였다. 무엇을 보고 있나 싶어 살짝 고개를 기울였더니, 화면 속에는 박신혜와 장근석이 나오는 드라마, "미남이시네요"가 재생 중이었다. 그 익숙한 장면에, 괜히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상미 씨는 중국에서 이혼을 두 번 한 이혼녀였다. 스무 살, 혼전임신으로 첫 이혼을 겪고, 2004년,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새 삶을 찾아 캐나다로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외로움은 끝이 아니었다.
온라인 데이팅앱에 빠져 이 남자 저 남자와의 만남을 반복하다가, “이 사람이다” 싶은 백인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했지만 그 남자는 그녀의 전 재산을 가지고 미국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상미 씨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홈리스가 되었다.
나는 조심스레 아들의 안부를 물었고, 그녀는 “이미 나를 떠난 지 오래”라며 소식조차 끊겼다고 했다.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사랑했고, 의지했고, 믿었던 것들의 끝이 모두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한쪽을 철렁 이게 했다. “그 남자가 그 남자야. 두 번 다시는 안 해.” 상미 씨는 담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 “남자는 애 아니면 개다, 그놈이 그놈이지”
평소엔 웃어넘길 농담 같지만, 상미 씨의 삶 앞에서는 차마 농담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결혼이란 건, 사랑이란 건 과연 누구에게나 같은 모양일까.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울타리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끝을 바꾸는 돌이킬 수 없는 낙인이 된다.
상미 씨가 조용히 다시 드라마를 재생한다. 드라마 속 웃고 있는 얼굴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어떤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밤 11시가 되면 최종 입실이 완료된 사람들의 이름과 침대 번호를 화이트보드에 하나하나 적는다.
그날그날, 센터에 머무는 사람들이 몇 번 침대에 있는지 직원들끼리 공유하기 위해서다.
통금은 밤 10시. 그 시간을 넘겨 돌아오는 사람에겐 최대 세 번의 경고가 주어진다. 계속해서 시간을 어기면, 언제든 강제 퇴실이 이뤄질 수 있다. 센터가 쉼터인 동시에 ‘규칙이 있는 공동체’ 임을 상기시키는 시간이다.
그렇게 저녁 식사 준비부터 입실 체크, 화장실 관리와 응급상황 대처까지 한바탕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고 나면 밤 11시를 넘기며 서서히 센터는 고요해진다. 누군가는 침대 위에 누워 휴대폰 불빛을 바라보다 천천히 눈을 감고, 누군가는 담요를 턱까지 끌어올린 채 조용히 잠에 든다. 그리고 그렇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는 다시 흘러 조용히 아침이 찾아온다.
이곳에 들어와 지내는 이들 역시, 겉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가슴속에 각자의 사연을 묻고 하루를 견뎌낸다.
나는 그들의 슬픔을 다 헤아릴 수 없다. 노숙자가 된 이유가 무엇이든, 그 길 끝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절망이 있었든, 감히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바라는 것은 하나. 이곳을 거쳐가는 모든 이들이 언젠가 자신만의 평온과 행복을 되찾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