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 하나 먹고 출근합니다

한국인은 소주 캐나다인은 위드

by K 엔젤

몇 달 전, 영화 기생충에 출연했던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의혹에 휩싸인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고, 이후로도 연예인들의 마약 스캔들이 연달아 보도되면서 마약 문제가 더 이상 일부 계층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청소년들의 마약 범죄까지 급증하며, 학교·가정·사회 전반에 걸쳐 마약이 스며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제 한국도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약물중독은 흔히 ‘의지의 문제’나 ‘습관’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뇌의 구조와 기능에 변화를 일으키는 만성적인 뇌 질환이다. 스스로도 멈추고 싶지만, 강박적인 갈망과 반복적인 사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 결과, 판단력과 자제력, 감정 조절 능력까지 무너지고, 가족, 친구, 사회와의 관계도 점점 붕괴된다.

약물중독의 진짜 무서움은 단순한 의존을 넘어 뇌의 통제 기능까지 손상된다는 점이다. 전두엽이 망가지면 이성적인 판단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 약물중독자들과 함께 일한다.


누구도 처음부터 중독자가 되기를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우울증, 외상, 불안, 유전적 소인, 관계 단절, 중독에 이르는 길은 제각각이다. 그 복잡한 사연을 지워버린 채 "그냥 나약해서 그래"라고 단정짓는 순간, 그들의 회복은 한 발 더 멀어진다.


캐나다는 흔히 선진국,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정신질환이나 중독 문제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대마초가 합법화된 사회에서 많은 캐나다인들은 의외로 마약이나 대마초에 쉽게 노출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중독 문제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일하려면 단순한 동정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응급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꼭 필요하다.


이곳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응급 기사 자격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하며, 나 역시 이곳에 들어오기 전, 응급 처치 자격을 취득하고 증명서를 제출했다.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예고 없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이 일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실전에 가깝다.

약물에 중독되면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워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가 되기 쉽다. 그래서 그들을 마주할 때는 많은 인내심과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이 일 속에서도, 나는 수많은 약물중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작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 모든 변화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슈퍼바이저로 승진한 사라 역시, 알고 보니 약물중독에서 회복한 당사자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깊은 중독 속에 있었지만, 치료와 회복 과정을 거쳐 이제는 팀을 이끄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녀는 약물중독이 어떤 고통을 동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열정적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통해 누군가를 돕고 싶은 진심이 있었다.

그 열정은 결국 그녀를 슈퍼바이저 자리까지 이끌었고, 지금도 누구보다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일하고 있다.

회복은 가능하다는 걸,그리고 회복 이후의 삶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걸 사라는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다.

금단현상은 지옥의 고통

금단현상은 말 그대로 지옥의 고통이다. 가벼운 술 한 잔으로 기분을 풀며 견딜 수 있을 수준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휘청거리며 무너져간다.

수많은 약물중독자들을 만나왔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그 결과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약물에 의지하게 된 20대 청년들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무겁게 짓눌린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약물에 손을 댔을까.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기에, 결국 가장 손쉽게 위로를 주는 약물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끝은 늘 고통뿐이다.

그들이 금단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 그저 한 명의 중독자가 아니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누군가의 아이였던 존재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측은함과 함께, 더 깊은 연민이 생긴다.


TJ, 올해 스물여덟. 하지만 그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열 살도 채 안 되어 보인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해, 물어볼 때마다 다른 이름을 말하고, 습관처럼 손가락을 쪽쪽 빠는 모습으로 센터를 돌아다닌다. 기분이 좋아지면 바닥에 벌렁 누워버리는데,

“침대에서 자자”고 하면
“난 아기예요. 아기처럼 대해주세요. 기저귀 주세요”라며 애원한다.
그 말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6살 무렵 양아버지에게 당한 신체적 학대의 끔찍한 기억 속에 여전히 갇혀 있는 아이다. 그의 뇌는 이미 너무 많이 망가져버렸다. 이성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순간도 많고, 예고 없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일을 하다 보면, 내가 감정을 잃지 않고 끝까지 우호적으로 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마약 중독자들은 쉽게 흥분했다가도 금세 가라앉고, 가라앉았다 싶으면 또다시 폭발한다.

그들의 세계는 늘 출렁이는 감정의 바다 같고, 나는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평온한 틈을 만들어주는 조타수가 되기를 바란다.


기상 시간은 아침 7시. 청소를 시작하려면 8시 전까지는 모두 밖으로 나가야 한다.
겨울이 끝나가나 싶더니, 밤새 또 눈이 내렸다. 오늘의 예상 기온은 영하 7도.
날이 추우니 사람들은 다시 하나둘씩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8시가 훌쩍 지나도록 누구 하나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미 깊은 잠에 빠진 이들을 다시 깨우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중에서도 골칫덩어리, 센터의 문제아 '르네'가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문제를 일으킨다.
밖의 날씨를 확인하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F***! 너, 도대체 누군데 자꾸 날 깨우는 거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속으로 깊이 숨을 들이켰다.
"이건 나의 일이야. 지금 우리, 너희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잖아."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하며 르네를 달랬고, 겨우 침대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그가 빌딩 밖으로 나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센터 규정상 화장실 사용 시간은 10분을 넘기면 안 된다.
결국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르네, 이제 나올 시간이야."

그러자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르네가 다시 소리친다.

"우리를 위해 일한다고? 웃기고 있네!
넌 그냥 돈 벌려고 일하는 거잖아!"


하다 못해 매니저까지 나와서 난동을 부리는 르네를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결국 그는 일정 기간 내부 시설 이용 제한, 이른바 ‘서비스 리스트릭션’을 받게 됐다.

이곳에선 아이러니하게도, 단호하게 딱 잘라 말하면 오히려 그 말이 더 잘 통한다.
막말과 욕설을 쏟아내던 사람도 금세 사과한다. "미안해요, 방금은 제가 너무 심했어요"라며 일하는 우리에게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런 사과를 들을 때면 기분이 좋아지기보다는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잠깐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이성을 잃고,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더 마음이 쓰인다.



누군가는 물건을 여기저기 놓고는 금세 잊어버린다.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를 여러 잔이나 타놓고도 하나도 마시지 않은 채 그대로 어질러 놓고 나가버린다.

또 어떤 이는 손떨림을 제어하지 못해, 힘겹게 들고 있던 커피를 바닥에 엎지르고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뜬다.



캐나다에서는 약물 과용 방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노숙인들의 정신 건강과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서비스가 제공된다.

나 역시 정신건강 지원 담당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CMHA(Canadian Mental Health Association, 캐나다 정신건강 협회)**인데,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약물 중독 예방과 회복 지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CMHA는 정신건강 상담, 커뮤니티 연결, 주거 지원, 위기 개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다시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대마초를 피우고 나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곳에선 이런 일이 일상이지만, 마약이 불법인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풍경일 것이다. 약물 과다복용을 자주 반복하거나, 스스로 절제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센터에서는 **harm reduction kit(해악 감소 키트)**도 제공한다.

이 키트에는 깨끗한 주사기, 거즈, 알코올 스왑, 나눔용 루션 등이 들어 있으며, 감염병 예방과 안전한 사용을 돕는 데 목적이 있다.

사람들이 키트를 받아갈 때면, 우리는 수령자 명단에 간단히 체크를 하고 배포한다. 그 누구도 강제로 막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정죄가 아니라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방지 키트를 만드는 동료 엔젤라


키트는 총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이 키트들을 직접 만드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사람들이 언제든 키트를 안전하게 사용하고 폐기할 수 있도록, 화장실 안이나 건물 구석구석에 노란색 폐기통을 배치해두었다. 사용한 키트는 반드시 이 노란 통에 버려야 한다. 감염 위험을 줄이고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꼭 지켜야 할 원칙이다.



약물 중독자들이 복용하는 약은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배급된다. 복용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고, 약물 오·남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체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 업무는 동료 **질리언(Jillian)**이 맡고 있다. 질리언은 각 이용자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약을 전달하고, 복용 여부를 꼼꼼히 확인한다. 간단해 보일지 몰라도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이 과정이, 결국은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일로 이어진다.

사망을 막는 응급약, 날록손 키트(Naloxone Kit).
센터 안팎에서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주의 깊게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날록손 키트’는 오피오이드 과다복용으로 인한 호흡 정지를 되돌리는 응급 약물이다. 스프레이와 주사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하면 뇌 손상과 사망을 막을 수 있다. 나 역시 이 스프레이와 주사기를 늘 소지하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가 쓰러졌을 때, 단 몇 초 만에 생명을 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며칠 사이,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올해 65살인 그레그 할아버지다.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무려 5분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한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레그는 40대부터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해, 수십 년째 약물중독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분이다. 오랜 시간 누적된 약물 사용은 결국 몸의 한계를 하나둘씩 드러내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부축되어 안정을 찾고 침대로 옮겨졌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 Dawa. 결혼 후 두 번의 유산을 겪으면서 인생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었고, 그 고통은 결국 심각한 약물 중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Dawa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언제나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늘 긴장한 채로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게 된다. 가방을 들고 들어가지 말라고 말해도, 그녀는 완강히 거부하며 소리를 지르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인다. 다루기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한 번은 화장실 안에서 몰래 약물을 사용하다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불안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Dawa는 화장실 안에서 쓰러졌다. 원인은 일시적인 심장 정지.

곧바로 전문 응급 구조사들이 도착해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인은 술에 찌들어 살고, 캐나다인은 마약에 찌들어 산다. 오늘은 최근에 입사한 레인(Rain)이라는 친구와 함께 아침 근무를 섰다. 그런데 오늘 레인을 보니 뭔가 이상했다. 눈이 풀려 있고, 졸린 듯한 모습이 딱 내 눈에 들어왔다.


"피곤해 보여. 요즘 무슨 일 있어?" 하고 슬쩍 물었더니, 몇 달 전부터 젤리 형태의 대마초(weed gummy)를 소량씩 먹고 있다고 했다. 어젯밤에도 젤리 하나를 먹고 잤는데, 너무 깊이 잠들었고,

"지금도 자고 있는 기분으로 일하는 중"이라고 말하며 피식 웃었다.


한국인들은 소주를 찾고, 캐나다인들은 대마초를 찾는다. 한국에선 마약은 멀고 낯선 이야기지만, 여기선 대마초가 너무나도 일상처럼 스며들어 있다.


한때는 천국처럼만 보였던 캐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마약이 너무 쉽게 일상에 스며들고,사람들은 ‘하이’ (high, 기분이 분 뜽 상태)로 하루를 견딘다. 웃으며 일하고, 대화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잠깐의 망각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풍경들을 마주할 때면, 이곳도 어쩌면 또 다른 이름의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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