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천국? 아니, 배려지옥

싸움은 나도 감동은 있다

by K 엔젤


강한 자가 앞서는 사회가 아니라, 약한 자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
어쩌면 그게, 진짜 ‘선진국’의 기준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내가 밤 근무 중이던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노숙자들 사이에 시비가 붙었고, 결국 폭행까지 이어져 경찰이 출동하게 된 사건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극심한 약물중독자인 알렉사(가명)가
“왜 내 옆자리에 남자를 붙이느냐”며 울고불고 항의하면서 시작됐다.

이곳은 남녀공용 노숙자 쉼터다. 시설 운영 방침상 성별 구분 없이 자리 배정을 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 옆자리에 배치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알렉사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랐다며,
“저 남자 옆에서 잘 수 없다. 당장 내보내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매니저까지 나서서 “정해진 자리는 바꿔줄 수 없다”고 설득했고, 알렉사의 괴성은 점점 잦아들었다. 우리는 일이 잘 마무리된 줄 알았다. 하지만 알렉사는 결국 경찰에 거짓 신고를 했다. 센터에서 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를 속이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들이닥쳤고, 사건은 다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조사 도중, 새로 입소한 노숙자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도 되냐”며 알렉사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또 다른 입소자 마크가 알렉사를 감싸며
“그 기억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냐”며 반박했고, 두 사람의 말싸움은 곧 몸싸움으로 번지게 됐다. 경찰이 다시 출동했고, 그제서야 상황이 정리됐다.

결국 경찰 수사 결과, 알렉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다. 센터는 알렉사에게 정신건강 상담사를 연결해주었고, 폭행에 연루된 마크와 코디는 1주일간 프로그램 참여 제한 조치를 받았다.


시설 출입이 제한된 명단


놀라웠던 건 다음 날 마크의 태도였다. 그는 우리 스태프에게 먼저 다가와
“밤중에 소란을 피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다”며 진심으로 사과를 전했다.

그리고는 “지금은 도울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깝다”며 자발적으로 봉사하겠다고 나섰다.
그날부터 마크는 2주 동안 청소와 저녁 준비를 돕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상처 많은 여자를 감싸려다 싸움에 휘말린 사람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책임을 피하지 않고, 조용히 행동으로 사과를 실천하는 모습은 의외로 단단하고 깊은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그 실수를 어떻게 책임지느냐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 그날 이후, 나는 마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갑질’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2층 침대 대신 1층을 쓰도록 자연스럽게 양보하는 문화가 있다.

“못 올라가니까 바꿔줄게요.” 별다른 말 없이도 이런 배려가 오간다.

또 과체중이나 합병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1층 침대를 우선 배정해주는 모습은 힘 있는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더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문화를 보여준다.

똑같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이라고 해도 장애등급이 더 높은 사람들은 몸의 불편함이 더 크기 마련이다. 상대를 고려해서 높은 장애등급인 사람에게는 방 선택의 우선권을 준다.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제이콥에게는 센터에서 따로 1인실을 제공해주고 있다. 움직임이 불편한 그에게는 조용한 공간과 최소한의 프라이버시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제이콥의 방에 들어가 침대보를 걷어내려다가 침대가 젖어 있는 걸 발견했다.

순간 당황한 나는 순수한 의도로 "왜 침대가 젖어있지?" 하고 방을 나와 같이 일하는 안젤라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안젤라는 갑자기 손짓을 하며 말했다.

“쉿! 조용히 얘기해.”

알고 보니, 제이콥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 밤사이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실수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도 모른 채 단순히 침대보가 왜 젖었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혹시 목소리를 너무 크게 냈나 하고 머쓱해지던 순간, 제이콥과 함께 생활하던 노숙자 친구 샘이 내 옆을 지나가며 조용히 말했다.

“다음엔 작게 물어봐. 사람들이 알게 되면, 민망할 수도 있잖아.”

그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도움이란, 마음만큼 말의 크기도 중요하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됐다.

그날 밤, 나는 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휠체어와 목발이 24시간 상시 비치되어 있었고, 몸 상태가 심각하게 좋지 않은 이들에겐 특별 요양 침대를 제공해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작은 도움처럼 보이지만, 이런 세심한 배려들이 이곳을 단순한 쉼터가 아닌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심장이 약하고 기저 폐질환이 있는 클라라와 밥은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늘 산소공급기를 착용하고 생활한다. 몸도 약하지만, 마음까지 불안해지지 않도록 우리는 두 사람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줄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조용히 곁을 지킨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이곳의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 캐나다는 상식이 통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keyword
이전 05화이상한 나라의 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