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계 프리패스
20대까지는 서구 문화가 다 좋아 보였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서양 사람들. 몇 살인지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모습이 그저 행복해 보였다. 서양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한때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는 만 15살에 미국에 가서, 한국인은 고사하고 동양인은 나 한 명뿐인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비교하게 되었던 것 같다.
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이를 묻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오면 나이를 먼저 묻는다. 한국에서는 왜 나이를 그렇게 따지는 걸까? 내가 어쩔 수 없는 나이에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만나서 내 나이를 먼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례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나이를 빼고 나면 대화할 주제가 그렇게 없나 싶어서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한국 사람들만 나이에 그렇게 민감한 줄 알았다.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이곳에서도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나이에 민감한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젊음을 부러워한다. 캐나다 사람들도 나이가 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그만큼 무겁고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 직장 동료이자 싱글맘인 Shawnee. 흑인 남편과 결혼해 네 살, 다섯 살 혼혈 아들을 키우고 있는 백인 여성이다. 나를 만난 이튿날, 결혼했냐며 몇 살이냐고 물어봤다. 내가 나이를 말하자, 그녀는 놀라며 "어쩜 그렇게 나이에 비해 동안이냐"며 신기해했다. 그녀는 서른다섯에 아이를 낳았고, 출산 후 몸이 아픈 곳이 없다고 했다. 자기는 나이에 비해 들어 보이는 게 싫다고, 올해는 천천히 가게 해달라는 농담을 하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한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인도나 스리랑카 같은 서남아시아에서는 문화적으로 하자 없는 여자는 늦어도 스무 살 전에 결혼해야 하고, 괜찮은 남자는 서른을 넘기지 않고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통념이 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인도 친구들도 내가 몇 살인지, 결혼했는지 궁금해한다. 나보다 한참 어린 스무 살 초중반 친구들 중에는 이미 인도에서 결혼하고, 배우자 비자 신청까지 한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가능한 한 빨리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어 한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 사람들만 유독 나이에 예민한 줄 알았는데, 사실 나이를 따지는 문화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서양인과 동양인 상관없이 모두가 어린 것을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만 늙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였던 게 아니었구나' 하고,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살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이제 와서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가 이렇게 좁았나 싶다. 나는 내 생각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온 것 같다. 여기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철없고 얄팍했던 내 사고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나는 이래나 저래나,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겪으면서 비로소 시야를 넓혀야 하는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