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 없는 백말띠 인생

머무는 법보다 떠나는 법이 익숙한 여자

by K 엔젤


“역마살이 있나 봐.”

사람들은 가볍게 말하지만, 나에게 그 말은 오래전부터 마음 깊이 내려앉은 그림자 같은 말이었다.

한 곳에 정을 붙일 만하면, 또 다시 떠나야 했다. 적응이란 단어가 익숙해질 즈음이면 새로운 곳, 낯선 사람들, 다른 공기 속으로 내 삶은 자꾸만 밀려났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초등학교만 세 군데를 다녔다. 낯선 책상, 낯선 교실, 낯선 친구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정든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짐을 싸야 했다. 그래도 그땐 몰랐다. 그게 평범한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입학했다. 그래, 이제는 안정되겠지 싶었지만 2학년을 마친 뒤 나는 또 다른 세계로 발을 디뎠다.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도, 20대도, 늘 ‘머물기’보다는 ‘떠나기’의 연속이었다. 졸업 후에도 나는 파견직, 계약직을 전전하며 ‘안정’이라는 두 글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그럴 때면 문득, 스스로가 못나 보이기도 했다. 왜 나는 하나를 오래 붙들고 가지 못할까? 왜 내 마음은 늘 떠돌까?


그런 나에게, 뜻밖에도 위로가 된 말이 있었다.


“XX 씨는 외국을 오가며 사는 게 정말 잘 어울려요.”

“인생은 긴데, 굳이 한국에서만 살아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내가 XX 씨 같으면, 해외에서 자리를 잡고 자유롭게 살 것 같아요.”


그 말들을 들으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이 ‘역마살’이라는 운명,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머무르지 못한다는 건, 동시에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한 자리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대신, 나는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떠도는 나 자신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불안정함 속에서도 나만의 리듬으로, 내 속도대로 살아가는 삶.

그게 나다운 삶이라면, 그 길을 기꺼이 사랑하며 걸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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