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가 될 줄 알았지

무대를 꿈꾸던 그 시절, 나에게

by K 엔젤


‘예민보스’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이제는 포털 국어사전에 정식 등재될 정도로 익숙한 단어가 되었고, 예민함은 더 이상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

예전엔 예민한 사람을 유난스럽다며 눈치 주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요즘은 그 민감함도 하나의 성향으로 존중받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예민한 나’를 아직 완전히 사랑하지 못한다.

나는 낙천적이고 둥글둥글한, 모두와 잘 어울리는 ‘인싸’가 되고 싶은 사람이니까.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였을까. 쓸데없는 감수성과 예민함을 달고 다녔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귀마개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귀마개가 밤중에 빠지기라도 하면 바람소리, 시계 초침 소리에도 바로 잠에서 깼다.

몸도 찬 편이라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자야 했고, 수면양말은 필수. 그것도 짧은 양말이 아니라 발목을 덮는 긴 양말이어야 했다.

중간에 벗겨지기라도 하면 다시 잠들기 어려워 새벽을 뒤척이며 맞이하는 날이 많았다.


심지어 자는 방향도 중요하다. 무조건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야 마음이 놓인다. 이 모든 것이 ‘예민보스’인 내 숙명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예술가들 중에도 이런 예민함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음악 감독 박칼린 씨는 시계 초침 소리 하나에도 예민해서 침대 옆에 시계를 두지 않는다고 했고, 가수 송민호 씨는 공황장애로 불면에 시달린다고 고백했다. 예술과 예민함, 불안함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예민한 기질을 지닌 채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나는 공부보다 예술 쪽에 더 끌리는 아이였다. 특히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심지어 부모님은 나의 공부를 위해 학군이 좋은 동네로 전학까지 시켜주셨지만,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꾸만 위축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나만의 무기를 꼭 찾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지인 중 연예기획사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나 오디션을 본 적도 있다. 그때 들은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수가 되려면 공부도 잘해야 해.
성적표 들고 와. 그래야 노래를 가르쳐줄 수 있어.”


그 말이 나를 조금 혼란스럽게 했다.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정작 들어야 했던 건 ‘공부부터 하라’는 현실적인 조건이었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을까. 나는 ‘재능’이라는 걸 갖고 태어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SM 연계 보컬학원까지 다녔다. 그 학원에서 소녀시대 태연이 배출되었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런 곳에 내가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한때는 꿈을 꾸기에 충분했다.

가수가 되려면 일단 기획사를 들어가야하기에 가수 린과 노을, 빅뱅의 대성이 다녔던 음악학원에 다녔고 공부보다는 노래를 배우는 것에 집중하며 수료 콘서트까지 준비할 정도로 노래에 대한 열정이 컸다. 고등학생때는 TV 속 가수들을 보며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커져만 갔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대중음악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러다 가수 홍서범이 속한 밴드 ‘OX’에서 여자 보컬을 모집한다는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되었고 부푼 마음으로 오미션 현장에서 윤하의 ‘기다리다’를 불렀지만, 돌아온 건 냉정한 "NO"였다.

심사위원은 말했다.


“xx씨 같은 음색은 한트럭이에요.
가수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 천만명중에
음색이 평범해서는 절대 이바닥에서 성공 못 합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현실의 벽을 실감했다. 노래를 업으로 삼기엔 내 재능은 평범했고, 무대 위 프로들의 퍼포먼스를 보며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수 이승철 씨도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말한 적 있다.

“가수는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타고난 재능이 더 중요하다.”

가수 박진영 역시 데뷔를 앞둔 연습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수는 데뷔 이후가 더 중요하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안 된다.”


시간이 흐르고, 내 꿈에 대한 노력은 아무런 성과없이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고 확실히 느낀 건 소녀시대 수영이 방송에서 했던 말 때문이었다.

“나는 무대에 설 생각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무대를 사랑했던 게 아니라, 단지 노래하는 순간을 좋아했던 것뿐이라는 걸.


무대 위에 선다는 생각에 전율이 이는 사람들, 그 치열한 열망과 간절함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노래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노래를 업으로 삼는 길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지금도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뛴다. TV에서 누군가가 노래로 감동을 주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스치듯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가 가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그릇이 있고, 그 그릇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결국 나다운 삶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 내가 잘하는 것을 선택해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무대는 없지만, 내 일상 속에는 여전히 음악이 있고, 무대 위의 전율은 아니지만, 내 안에 진심을 담아 부르던 그 감정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무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노래를 사랑한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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