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척의 기술
나는 단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은 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 기준에서 늘 멀게 느껴졌다.
가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그 재능 하나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런 이들은 길을 고민하거나 방황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마치 처음부터 인생의 방향이 정해진 것처럼. 그런 걸 보면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실제로 연예인들 중에는 일찌감치 “얘는 연예인 팔자야” 같은 말을 무속인에게 들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재능이 뚜렷한 사람들은 마치 운명처럼 자기 길을 따라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니까. 아직도 뭘 잘하는지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선택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무엇을 하며 먹고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어쩌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죽을때까지 안고가는 숙제일 것이다.
별다른 특별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내게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불안’이었다. 특히 인생의 방향이 흐릿해질 때, 불안이라는 감정은 불쑥 먼저 나를 찾아온다. 어떤 책에서 봤다.
"우리의 불안은 ‘애매한 재능’에서 온다. "
그 문장이 유난히 유독 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SNS도 불안을 더 키운다. 인스타그램에는 왜이렇게 이쁘고 잘난 사람들이 많은지. 처음엔 단순히 유명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을 팔로우하면서
“아,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구경하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와 자꾸 비교하게 되었다. 명품 가방, 고급 레스토랑,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삐까뻐쩍한 집 내부에 비싼 가구로 꾸며진 인테리어들. 그들의 일상은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데, 내 일상은 왜 이렇게 초라한 걸까. 나는 왜 저런 걸 누릴 수 없을까. 인생의 출발선부터 다르면 영영 그들처럼 누리고 살 수는 없는걸까. 그렇게 조금씩 자존감이 깎여나갔다. 인스타그램을 켤 때마다 나는 점점 없어졌고, 대신 화면 속 남들만 더 크게 보였다. 날 모르는 사람이 올리는 사진 한 장, 짧은 글 한 줄이 내 마음을 얼마나 움츠리게 하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가만히 보면, SNS는 비교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정교하게 자극하는 도구인 것 같다. 누구보다 잘 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괜찮아 보이고 싶은 마음. 그런 욕망을 교묘하게 건드리는 구조. 사진 한 장, 좋아요 숫자 하나에도 하루종일 마음이 들썩이고, 자존감이 휘청인다.
예전에 누군가 SNS를 ‘시간 낭비 서비스(SNS)’ 라고 부른 걸 본 적이 있다. 그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를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결국, 인스타그램을 탈퇴하고 나서야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마 싸이월드 시절부터 SNS의 민낯을 경험해 본 세대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조금 숨통이 트였다. 비로소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시작된 느낌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자존감이라는 건, 결국 누군가가 나를 부러워할 때 비로소 생기는 감정 아닐까.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에게 그건 꽤 현실적인 감정이었다. 누군가 내 삶을 동경해주는 순간, 비로소 내 존재가 조금쯤은 괜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제 세상을 떠난 누군가는 오늘도 살아 있는 나를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어딘가에는, 지금의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살아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단순한 사실조차 나는 너무 자주 잊고 살아왔다.
누가 그러더라. 태어나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이라고. 고(故) 신해철도 그런 말을 남겼다.
“생명을 부여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예전에는 그 말이 좀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다. 현실을 너무 모르는 이상적인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가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쩌면, 그저 태어난 김에 살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굳이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할 필요 있을까. 내게 주어진 이 삶을, 조금 더 내 방식대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