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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엔젤 Nov 08. 2023

한국인과 영어의 상관관계

동양인인 게 죄는 아니잖아요


 나는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증이 누구보다 심했다.

고등학생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다는 것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았던 것 같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려면 만 4세 이전에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야 하고 최소한 10살 이전에 이민을 가서 한국어를 차단하고 생활을 해야 그나마 원어민 언저리 끝에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생각해 보면 끽해야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간 주제에  너무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졌던 것이 아닌 가 싶다. 물론 지금은 이룰 수 없는 걸 알고 다 내려놓았지만.


나에게는 영어는 결국 외국어일 뿐이다.
 


미국에서 아무리 애써도 죽어도 본토 미국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음을 알게 된 건 미국에서 간호학과 진학을 준비하면 서였다.


 당시 나는 백인들만 99% 인 곳에서 동양인 여자는 사람 취급도 안 해준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미국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 얼마나 좋은 학교를 다니는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상관없이  백인들의 눈에는 동양인들은 애초에 경쟁상대로 여기 지도 않았다. 미국에서 살면서 백인들과 지나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비주류라는 걸 깔고 들어가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기가 죽어서 다 못하고 집에 오는 날도 많았는데 열심히 살려는 마음가짐이 동양인 여자라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들으면 사 기가 점점 꺾이기도 했다. 아시안 사람이 영어를 하는 걸 마치 신기하게 생각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 때문에 영어를 쓰는 것도 점점 지겨워졌다.


백인우월주의 국가에서 살면 살수록  느낀 건 아시안 사람은  설령 영어를 모국어처럼 할지언정 피부색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 것을 감수하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나는 그들에게 찢어진 눈을 가진 중국인이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나마 쉽게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파란 눈의  금발의 치어리더 애들이나 풋볼팀의 친구들의 그룹에 끼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은 너드 같은 친구들과 주로 어울려 지냈던 것 같다. 대학에서는 같은 한국사람들 아니면 아시아권 문화권인 국제학생들하고만 친해지기 일쑤였다.  


백인우월주의 국가에서 동양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벽을 깨기란 참으로 어려웠던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교포조차 백인그룹에 스며들지 못하고 같은 동양인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에서 사는 것에 회의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검은 머리를 한 교포들이 가수를 하거나 배우를 하는 것도 현지에서는 동양인 가수가 성공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을 그려내는 '김씨네 편의점'이 인기를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 중에는 아시안계 캐나다인 배우들이 백인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고 받았다고 하니 동양인으로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인정받고 살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결론은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쓰면서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인종차별 걱정 없이  맘 편히 사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미국에서 간호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한국에 돌아와서 어떻게든 자리 잡고 살아보려는 노력을 했었다.


한 가지 웃긴 건 한국이 그리워서 한국에 돌아가서  3개월 정도 있어보그제야  비로소 내 생각이 짧았구나 하는 걸 알게 되고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 천국이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된다. 특히 나처럼 중고등 시절을 외국에서 지낸 사람들은 결국에는 돌고 돌아 어릴 때 지낸 문화권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게 조기유학생들의 숙명이 아닌 싶다.


 내가 한국에 가고 싶은 이유는
한국이 그립다기보다는 한국사람들이 그리운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언어적▪︎문화적 장벽이 향수병을 유발하는 원인이었던 듯하다. 한국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내 외국생활의 발목을 잡았다.


지금은 사소한 차별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낯선 타지에서도 계속해서 담담하게 걸어 나갈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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