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어디서든 살아남기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닐 때에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미국에서의 생활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대학생활까지 미국에서 하기는 싫었다. 특히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지만 백인우월주의 인상을 풍기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미국인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고,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그들과 나는 섞이려야 섞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소위 ‘멜팅팟’이라는 화려한 명칭 아래, 인종차별이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는 미국의 모순적 현실에 점점 더 반발심이 커져갔다. 특히 그 당시엔 지금처럼 케이팝 열풍이 그리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지 않는 이상 미국살이가 나에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따뜻하고 정 많은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워졌고, 단일민족 국가인 한국에 대한 애국심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더 이상 미국에서의 삶에 연연하지 않았고 결국 고등학교만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한국 귀국 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의 생활이 점차 지루해졌고, 따분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서의 생활이 점점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정작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한국어를 사용하며 산다는 것 외에는 그리 특별한 점이 없었다.
한국에서 20 대를 어찌어찌 보내고 갖은 개고생이란 개고생을 다 하니 캐나다에 올 기회가 생겼다.
미국 사람들이랑 말을 할 때면 종종 I am from A.M.E.R.I.CA.
나는 미국사람이야 라는 자부심이 상당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국인들은 자기 나라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미국 우월주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타문화를 배척하기보다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케이팝의 힘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별다른 인종차별도 겪은 적이 없다.
미국 사람들은 엑센트가 있냐 없냐로 네이티브 스피커인지 먼저 판단한다. 네이티브 미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상당하다. 영어 억양이 있는 사람은 명백히 미국에 늦게 온 이민자라고 구분을 짓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 해도 엑센트가 있으면 그들의 눈에는 비미국인, 즉 이방인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여기서 나고 자라서 영어가 거의 원어민 수준인 동양인들에게도 "Where are you originally from?"을 묻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미국인들이니까.
캐나다에서는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일하지만, 영어에 엑센트가 있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이다. 서로 다름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여서, 그런 점이 매우 편안하다. 너도나도 악센트 있는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함부로 "Your English is good"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미국에서는 많이 듣는 " 영어 어디서 배웠냐? 는 소리를 여기서는 거의 듣지 않는다.
하지만, 캐나다도 명백한 백인중심 국가이다. 동양인에 대한 은근히 보이지 않는 선입견과 벽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문화에 앞장서는 캐나다도 결국 미국과 같은 백인 중심의 형제나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직위가 없는 일반 사원이라 그런 부분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행여나 나중에 백인들과 진급 경쟁하게 되면 인종차별의 부조리를 겪을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종차별에서 오는 위선적인 부당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점이다. 은퇴 후 비주류로 다른 나라에서 살 것인지, 주류로 내 나라에서 살 것인지 결정할 날도 반드시 올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방인으로서 끊임없이 하게 될 고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