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친구는 안 생겼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성실함이 몸에 배어 있다. 나도 그 성실함 하나로 버텨왔고, 여기에 영어까지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점이 해외에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있다.
생각해보면, 나의 부모님은 어쩌면 내가 틀에 박히지 않은 성향이라는 걸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글로벌 시대니 세상을 넓게 보라며, 미국이라는 더 넓은 나라로 유학을 보내주신 건 단지 교육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겪은 낯선 환경과 시행착오는 그때는 그저 힘들기만 했지만, 방황을 거듭하던 20대를 지나 조금씩 내가 살아야 할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 30대가 되니 그 선택이 이제야 감사하게 느껴진다.
내가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어떤 인종이든, 어떤 배경이든 상관없이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어색함 없이 어울릴 수 있다. 누가 다가와도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힘이 나에겐 있다.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과도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며 소통할 수 있기에,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사랑받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영어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된 건 중학교 때 목동으로 이사까지 하며 “우리 딸만큼은 최고로 키우겠다”던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이었다. 그 노력 없이는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흑인이 대부분이던 고등학교를 1년 다녔고, 그 이후에는 백인, 흑인, 남미계 등 다양한 인종이 섞인 환경에서 2년을 보냈다. 그런 배경 덕분에 지금 이곳에서도 크게 낯설지 않게,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시절이 좋은 기억만으로 채워진 건 아니다. 길을 걷다가 “칭챙총,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한 적도 있었고, 수업 시간엔 친구가 눈을 찢는 시늉을 하며 “아시안 애들은 다 이렇게 생겼냐”고 묻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출신 호스트 아빠는 “미국인들은 개를 사랑하는데,
한국인은 개고기 얼마나 자주 먹냐”며 비아냥거렸고, 합창단에서는 함께 활동하던 남학생이 내 뒤에서 몸을 비비는 성추행을 했지만, 너무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들어간 육상팀에서는 달리기 연습 중 운동장에서 멕시코계 남학생이 낄낄대며 “너 섹스는 해봤냐”고 묻기도 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전혀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서서히 무너졌다.
차별도 있었고, 외로움도 있었고, 도망치고 싶었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덕분에 나는 훨씬 더 단단해졌다. 서툴고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때의 나 없이는 지금의 나도 없다. 낯선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법,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 그리고 누구와도 벽 없이 어울릴 수 있는 힘. 결국, 그 모든 건 그때의 경험이 만들어준 선물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아팠던 기억도, 방황했던 시간도 결국은 나를 위한 밑거름이었다는 걸.
지금도 사실 뚜렷하게 정해진 길이 있는 건 아니다. 뭘 해야 할지 확신이 드는 날보다 불안한 날이 훨씬 많다. 그래도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다. 겪어보니까, 살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지나가고또 어떻게든 지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아직 가는 중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도 계속 걷고 있다는 것. 그게 지금, 내게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