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한테 사기당했다

점쟁이들의 망언에 휘둘린 나의 20대 실화

by K 엔젤


나는 사주 보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다.

생년월일과 시로 인생의 굴곡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워, 지금까지도 여러 번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녔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불안한 시대에 사주는 나름의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요즘 핫한 MBTI도 사주를 보는 이유와 비슷한 맥락인 듯하다. 앞으로도 엠비티아이와 사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꾸준히 존재할 것 같다.


사주는 한국 사람만 보는 게 아니다.

예전에 멕시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알게 된 칠레 친구 롤리가 있다. 롤리의 동생이 간호 공부 중이라 조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2주 동안 베이비시터를 해준 적이 있다. 롤리와 함께 동생 집에 머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남미 사람들도 사주 비슷한 걸 믿는다고 했다. 참고로 롤리는 47세, 캐나다 이민 1세대다. 대학생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아들이 속을 썩인다며 나에게 하소연도 자주 했다. 심지어 자기 아들 사주 좀 봐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나는 웃으며 돈 주고 전문 상담 받으라고 권했지만, 남미 사람들도 사주에 관심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캐나다 사람들은 별자리를 믿고, 인도 사람들은 사주를 보고 결혼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사주를 여러 번 봤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내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유치원 졸업식 때는 졸업생 대표 송사를 했고, 초등학교 때도 전학을 자주 다니며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썼다. 중학교 때는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괴로워할 정도로, 존재감에 민감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가수를 꿈꿨고, 당시 13살의 보아가 데뷔한 건 엄청난 파급력이 있었다. 나 역시 가수를 꿈꿨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알게 됐다. 나는 보아처럼 타고난 끼나 재능이 없다는 걸. 그렇다면 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공부는 뒷전이었고, 진로 고민만 머릿속에 가득한 채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머니는 진로에 대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던 나를 걱정해 몰래 사주를 보고 오신 적이 있다.

점쟁이는 딸이 무슨 일을 해도 잘 살 거니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라고 했단다. 가수 주현미도 외제차 끌고 잘 살지 않느냐며. 그 이후 어머니는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을 조금 내려놓으셨고, 은근히 가수가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하셨다고 한다.

"그래. 난 뭘 해도 잘 먹고 잘 살 거야."


대학은 가까스로 점수에 맞춰 들어갔고, 내 사주를 직접 보기 위해 남자친구와 함께 유명하다는 철학관을 찾았다. 방송에도 나온 곳이었고, 예약 후 7만 원을 입금하면 1시간 상담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점쟁이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냐고 묻더니, 아버지만 잘 만났어도 의사가 될 사주라고 했다. 내 인생이 부모님 때문에 꼬였고, 금의 기운이 강해서 원래는 미국에서 의사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한국은 놀 게 많고 유혹이 많다며, 왜 공부는 안 하고 남자랑 놀러 다니냐고 나를 나무랐다. 그럼 지금 무슨 공부를 하면 좋겠냐고 묻자, 칼을 쓰는 요리사나 침을 놓는 한의사도 좋다고 했다. 당장 미국으로 가서 의대를 들어가야 한다며, 미국은 금의 기운이 많고 한국은 목의 기운이 많아서 내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소리를 했다. 당시 나는 의대는커녕 겨우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부모님과도 딱히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치고 나왔다.


스무 살 후반, 답답한 마음에 또 다른 유명한 사주카페를 찾아가 오만 원을 주고 받아보았다.

이번엔 여자 점쟁이였는데, 나에겐 학업운이 없고 손재주가 있어 미용이나 예술 쪽이 좋다고 했다. 당시 나는 이미 미용 일을 하다가 손재주가 없다는 걸 깨닫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공부 중이었다.

간호사에 대해 묻자 기술직이라 괜찮다고 했고, 의대에 대해서도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일은 어떠냐고 물으니, 돈이 안 돼서 안 맞는다고 했다.


수 기운이 없어서 사람들과 융화가 안 되고, 융통성을 길러야 하며, 물장사를 하면 수 기운이 보충돼서 나중에 술집을 운영할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뭐가 맞는 건지 혼란스러웠고, 점쟁이 말에 점점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다 다시 또 유명 유튜버가 추천한 점집을 알게 돼 전화 상담을 받았다. 이번엔 내 사주가 회사생활과 사업을 둘 다 한다는 말이었다. 삼십 대까지는 회사에 다니고, 사십 대에는 사업을 한다고 했다. 금 기운이 강한 사주라 돈 욕심도 있고 성격도 강해서 남 밑에서 일하기 힘들다고, 결혼은 늦게 하라고도 했다. 당시 내 나이는 서른한 살. 너무 뻔한 얘기들이라 어이가 없었다.

회사 다니기 싫다고 하자 어떤 사업이 좋냐고 물었는데, 운대만 좋으면 뭐든 잘된다는 대답. 통화는 손님 많으니 끊자는 말과 함께 끝났다. 친구는 남들 앞을 그렇게 잘 본다는 점쟁이가 왜 자기 앞길은 못 보고 하루 종일 사주나 보냐며 비웃었다.


친구와 함께 내 마지막으로 들른 강남의 점집

강남의 한 철학관 방문을 끝으로 사주는 그만 보기로 했다. 사주 봐주는 남자 선생님이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나는 관리자 성향이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하더니, 선생님은 박봉이라 안 맞는단다. 그러더니 금융권, 공장 인사관리, 교육사업, 음식점, 게스트하우스까지 별별 직업이 줄줄이 나왔다. 의사 사주냐고 물으니, 전문성은 없고 정신을 다루는 쪽이라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사주를 보지 않았다.


금기운, 화기운, 수기운… 그게 대체 뭔데.

지금 나는 점쟁이들이 말한 대로 살고 있지 않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캐나다에서 정신지체 노숙자들을 돕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사주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됐다. 적어도 나는 간호사는 절대 못 할 성격이라는 것이다.


역술가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잘 꿰뚫는다. 귀 얇은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들으러 찾아온다는 걸 알고, 교묘하게 맞장구쳐 준다. 나도 그랬다. 결국,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단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너, 지금 잘 살고 있어."

지금 돌아보면, 사주를 봐도 인생이 뒤바뀐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나는 내 방식대로, 그렇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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