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똑똑해서 망한 인생

이력서보다 긴 회고록

by K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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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루 종일 직업을 검색하다가 잠들기 전, 우연히 40대의 진로 고민을 담은 글을 보게 되었다.

나도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 나이에도 여전히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 문득 이상한 감정이 밀려온다. 불안함일까, 위로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삶에 대한 질문’에 대한 공감일지도 모르겠다.


그 글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친 뒤, 우울증이라는 핑계를 대며 나는 미국 조지아주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시 입학했다. 당시엔 그저 ‘미국 명문대로 편입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조지아텍의 컴퓨터공학과 편입을 목표로 코딩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나는 ‘공대 머리’가 아니었다.

결국 수업을 드롭했고, 그때부터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뭐지?

그렇게 나는 또 다른 수업들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회계도 도전해봤다. 미국에선 회계사가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말에 솔깃해 한때 회계 전공으로 편입하는 것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또 금세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러다 ‘그나마 현실적’이라고 느낀 게 치위생사였다. 인체학 수업 1, 2만 이수하면 되는 구조였지만, 미국 유학생 규정상 한 학기에 최소 12학점을 들어야 했고, 졸업해도 시험은 유학생은 응시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만 시험이 가능하다는 제약도 있었다. 결국 나는 인체학 수업 1은 패스했지만 실습에서 낙제했고, 지친 몸과 마음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2년제 자유전공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3년을 보내고도 손에 남은 건 거의 없다는 허망함만 가득했다.

"열심히 살긴 했는데, 되는 건 하나도 없네."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지친 마음을 안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법륜스님의 강연을 접하게 되었다. 그 계기로 한국에 돌아와 ‘깨달음의 장’에 참여했고,그곳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나’라는 이미지조차 사실은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미국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자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마음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자. 하루라도 빨리, 내 두 발로 밥벌이를 시작하자.


그래서 파주의 핸드폰 공장에서 3개월을 일했고,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일하는 시간이 꽤 즐거웠다. 그 경험 덕분에 '기술이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용실에 취업했고, 그 인연으로 요양시설에서도 일하게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선택한 길 같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길 위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닐까. 우연처럼 보였던 수많은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여정이었던 것처럼.


만약 그때 건대 축산학과를 그대로 졸업하고, 진로만 잘 설정했더라면 어쩌면 지금쯤 공공기관이나 유명 식품회사에서 꽤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을지대 임상병리학과에도 합격했었고,

점수로 봐도 치위생과 진학도 충분히 가능했다.그냥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묵묵히 걸어갔다면,
지금쯤은 의료 자격증을 가지고 캐나다에 이민 와 전문직으로 대우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땐 그렇게도 대학 이름에 목을 맸을까. 마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열망처럼 포장된 욕심이 사실은 감사하지 못했던 마음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왜 눈앞에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귀한 기회였는지를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제는 결혼도 생각해야 할 나이다 보니, 안정적인 직업과 복지를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부럽다는 마음이 든다.

특히 의료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그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제야 유학원들이 보건 계열 진학을 그렇게 권했던 이유를 알겠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전문직을 원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치위생이나 간호 같은 고난이도 프로그램에 도전한다는 건 그 자체로도 큰 부담이다. 한 과목만 실패해도 전체 학기 등록금을 다시 내야 하니까.

경제적·정서적 리스크가 너무 컸다.


나는 지금 의료행정 전공으로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전공이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오히려 옛날에 포기한 보건 분야에 대한 미련이 자꾸 떠오른다. 정말, 그땐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도 난 내게 주어진 축복을 몰랐고, 늘 더 높은 것, 더 좋은 것만 좇으며 살았다. 하지만 만약 그때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렸더라면, 나는 아마도 지금처럼 신앙에 의지하는 삶은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되려 한다. 두려움 대신 믿음으로 살아가며, 조금 늦었더라도 내 인생을 다시 잘 가꿔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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