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대학만 잘갔어도

아니 잘갔는데 문제는 나였지

by K 엔젤


사실, 지금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지 못하고 있는 게 나에게는 꽤 큰 한으로 남아 있다. 20대에는 이런 마음을 잘 몰랐는데, 서른이 넘고 결혼을 생각하게 되면서는 자연스럽게 ‘안정’이라는 단어가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직업만큼은 든든하게 붙잡고 싶다는 마음. 이제 와 고백하자면, 부끄럽게도 나는 한동안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더 잘나 보이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더 높고 멋진 무언가만을 좇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지금처럼 무기력하고 어딘가 텅 빈 ‘무직’의 나만 남아 있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은 기회를 받으며 살아왔다. 남들보다 먼저,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 부모님 덕분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덕에 괜찮은 영어 성적으로 한국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조차 몰랐다.

언제나 더 잘난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단, 더 좋아 보이는 걸 좇기에 바빴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전과와 편입을 시도했고, 어떻게든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으니, 당연히 SKY는 가야 한다는 막연한 자격지심이 생겼다. 토익 점수 985점을 받아 놓고도 현실 감각은 없었다. 무턱대고 SKY만 지원하다가 서류 전형에서 줄줄이 떨어졌고, 결국 1년을 허비하고 말았다.


결국 나는 23살의 나이에 건국대 동물생명공학과에 영어전형으로 입학했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하고, 토익 985점이라는 비교적 괜찮은 점수로 대학 진학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족이 되지 않았다.

"나는 왜 SKY가 아니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가진 건 남들보다 빠른 영어 실력과 유학 경험, 하지만 그건 그저 '나도 잘나가야 한다'는 헛된 기대를 키울 뿐이었다.


입학하고 얼마 안 가 전과를 결심했다. 동물생명학이 나와 안 맞는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유학생 출신으로 나이도 한두 살 많았지만, 학번 중심의 기수 문화 속에서는 오히려 후배처럼 굴어야 했다. 기수제 문화는 나에게 유난히 불편하게 다가왔다.

형식적인 예절, 선배 눈치,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깍듯이 해야 하는 그 분위기가 참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안에서는 내가 '틀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문화 자체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 마음의 문이 닫혀버렸다. 그런 게 싫었다. 그래서 다른 전공, 다른 환경, 다른 사람들과 섞이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엔 의상디자인학과. 좀 더 세련되고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나도 뭔가 특별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나보다 더 예쁘고 더 센스 있는, 정말 "그사세" 같은 사람들이 이미 넘쳐났다. 나는 거기서도 또다시 위축됐다.

'여기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렇게 끊임없이 도망치며, 나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누구보다 잘나가고 싶었고,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결국 누구보다 자신을 미워했던 20대 초반의 내가 있었다. 나중에 깨달았다. 도망친 건 학교도, 전공도,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걸. 모든 걸 바꾸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가장 먼저 바꿨어야 할 건 나의 시선, 그리고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


혹시 지금도, 자신이 어딘가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 나는 너무 잘 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자리에 그냥 조금 더 버티고 있어 보는 것도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는 길일 수 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조금 안아주고 싶다. 너, 참 애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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