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때리는 캐나다 이민 이야기(3)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른다. 정도(正道)를 걷자

by 지미행

뼈 때리는 캐나다 이민 이야기(3)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른다. 정도(正道)를 걷자


나는 국제학생으로 한국에서 캐나다로 건너와 용접학과 1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 후 취업비자(Post Graduation Work Permit)를 신청했다. 체류자격을 변경하는 데에만 한 달 정도가 걸렸는데, 그렇게 된 데에는 최근 발표된 이민법 개정과 연관이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PGWP 신청시 졸업장, 성적증명서, 기존 비자 사본, 여권 사본 정도만 제출하면 되었는데 갑자기 영어시험 점수 제출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필 그 개정안이 발효되는 시점이 딱 내가 PGWP를 신청하는 때와 맞물려서 부랴부랴 IELTS 시험을 봐야만 했다. 사실 이 환란을 비껴갈 수도 있었다. 졸업 시점과 개정안 발효일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거든. 그 사이에 신청을 한다면 300불이 넘는 영어시험을 보지 않아도 됐다. (물론 이후의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어떻게든 한번은 응시해야 했겠지만) 그렇다면 왜 2주 안에 신청을 하지 못했느냐? 그 이유는 학교 행정실에서 졸업장과 성적증명서를 처리하는데 졸업시점으로부터 무려 4주가 걸렸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업무 처리 속도이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이미 졸업 전부터 담당직원이 사복사복 준비를 해서 아마도 졸업 당일 서류를 수령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받고 보니 대단한 서류도 아니다. 특수 인쇄된 졸업장과 일반 인쇄 성적증명서가 전부였거든. 11월 1일부터 개정안(영어시험 제출 요구)이 발효되었는데 나는 내 졸업 문서를 11월 6일에 받았다.


다행히도 PGWP 신청시 영어시험 점수 제출을 요구한 개정안은 나의 이민 여정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의 교육기관에서 입학시 요구하는 영어점수가 PGWP 신청 자격으로 제출해야 하는 점수 보다 높으므로 사실 정상적 수순을 밟아 입학한 국제학생에게는 아무런 충격이 없는 조치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어차피 이후의 캐나다 체류에서 공인 영어시험 점수는 어떤 형태로도 요구되는 것이기에 응시료를 그냥 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유학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영어점수 부족해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달콤한 말에 넘어가서 조건부 입학을 했다가 졸업 즈음에 청천벽력 같은 개정안 발표를 들었다면? 그 때는 재앙이었으리라. 앞서 말했듯이 학교는 내 속이 타들어가는 줄도 모른 채 천천히 '정상적인' 속도로 졸업 관련 문서를 준비해주었을 것이고. 나는 한차례 학교측에 이메일을 보내서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빠른 업무 처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처음 보냈던 안내문에서 4주 정도 소요된다는 부분만 발췌, 붙여넣기해서 달랑 답신을 보내왔다. 씨발 내가 그걸 몰라서 다시 묻겠냐? 만약 이게 내 운명을 가르는 상황이었으면 멱살 잡았다 진짜. 나의 경우 학생비자는 만료시기가 12월 말일이었고 개정안 발표가 10월 초순이었으니 그 때부터 발등에 불 떨어져서 미친 듯이 IELTS 공부를 해도 2개월 안에 요구점수를 맞추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을 생각을 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대행업체에 전화해서 울부짖어봤자 “저희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했겠지. 학교 생활하면서 영어가 좀 늘지 않았겠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실전 영어가 늘었다고 반드시 시험 점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닐 뿐더러 국제유학을 결심하는 순간마저도 영어 문제를 어떻게든 비껴 가보겠다고 했던 사람이 갑자기 새사람이 되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노력했을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더 뻔뻔해져서 “영어 못해도 사는데 크게 지장 없구만”하고 영어공부와 더 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학기초 오리엔테이션 때 꽤 많은 숫자의 어학원 출신 학생들을 보았는데, 걱정스러울 정도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예 스마트폰의 번역기를 켜놓고 다니기도 했는데,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저 상황에서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있을까 싶었다. 조건부 입학의 원래 취지는 자체 어학원 수업을 통해 입학요건에 상응하는 영어실력을 갖춘 다음 본격적인 학업을 시작한다는 것이지만, 실제적 의미는 조금 다른 듯하다. “입학조건으로 제시된 공인 영어점수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네가 추가 요금을 낸다면 입학 시켜줄게.” 쉽게 말해서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조건으로 통행세를 받는 비즈니스다. 진지하게 고려해보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는 가물가물하지만 대략 한 달에 어학 수업료만 거의 200만원씩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학교 입장에서는 꽤 짭짤한 수입원이다. 일단 재료비가 안 들잖아. 교실에 한 명 더 앉힌다고 해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유학원에서 학생을 유치하면 학교로부터 커미션을 받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걸까.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캐나다 유학이 (순수한 학업이라기 보다는) 영주권을 향한 ‘쵸크다마(스타트램프)’의 성격이 짙다고 본다면 그 중간과정의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해도 구매자는 어쨌든 그것을 지불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왜 캐나다 정부에서는 갑자기 영어점수 요구를 하기 시작했을까? 이른바 가짜 학생을 골라내겠다는 것이다. 조건부 입학은 그래도 불법행위는 아니지만 아예 유령 학교를 세워놓고 오직 체류,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국제학생을 받는 곳들이 있다. 이런 가짜 유학생들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올커니, 정상적인 유학생이었다면 당연히 갖추고 있을 영어실력을 한번 체크해보자 이거다. 정도(正道)를 걸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야매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는 조건인 것이다. 신청자(학생)를 향해서는 제출 서류 항목이 한 가지 늘어나는 정도로 끝났지만 후속조치로 가짜 학교들을 적극적으로 가려내는 행정적 실천이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층 더 깊이 들어가면 이민자 숫자 조절에 실패하고 집값 폭등을 야기한 실정으로 인해 내년 선거에서 패배가 확실시되는 현 집권당이 민심을 돌리기 위해 뭔가 확실한 액션을 보여줘야 했는데 그 대상이 이민법이 된 것이다. 캐나다가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설령 지금 이민의 문호를 좁히는 이 상황에서 조차 변하지 않는 명제라고 본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고 보는데, 열이 많이 올랐다고 해열제를 과도하게 투여하면 어느 시점을 지나 다시 저체온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처럼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현격하게 줄어든 외국노동자(임시체류자)의 숫자를 다시 늘리는 과정에서 섬세하지 못한 접근을 했고 그 후폭풍-집값 폭등, 일자리 부족, 실질 소득 하락-을 제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연방정부 관계자는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는 외국 학생들에게 시민권과 영주권이 결코 약속처럼 여겨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 공식입장으로서 이해는 되지만 이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것이, 정부에서도 학교들이 유학생 장사하는 구조를 모를 리 없고(꼭 가짜 학교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유학생들을 장기투숙 관광객으로 본다면 캐나다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일텐데, 큰 고객을 향해 너무 부주의한 발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막말로 영주권과 연계되지 않았을 때도 캐나다 교육 서비스가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서 까지 경험하고 싶을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서로 좀 솔직해지자. 그리고 가짜 학교가 여론몰이(정부의 실책에 따른 불만을 잠재운다는 측면에서)에서는 주요 쟁점이 되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상적인’ 대학들이 그 누구보다도 유학생 장사에 혈안이 되어서 열심히 뛰어다닌 것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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