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하는 선율>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일본 노인요양원에는 매일 오전 할머니들과 함께 건강체조를 한다.
건강체조 시간엔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이 매일 돌아가면서 체조 진행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어떤 체조를 어떻게 할지는 해당일 담당 직원의 개인의 역량에 맡긴다. '당일 체조를 담당하는 직원이 알아서 진행하라'는 의미이다.
내가 체조시간을 담당하는 날이 돌아왔다.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딱히 아는 일본 체조도 없을뿐더러, 알고 있는 일본 노래도 없었다.
나는 한국 민요인 아리랑을 가르쳐 드리기로 했다. 아리랑은 가사도 간단하고 음률도 잔잔하고 특히 노래가 느리지 않은가. 이 정도의 간단한 노래라면 국적이 다른 할머니들이 따라 부르시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혹여 따라 부르시지 못하시더라도 어르신들과 함께 느긋한 속도의 체조를 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들과 앞에서 아리랑 선창을 하며, 건강체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리랑을 아주 느린 속도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손을 천천히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아~리~랑~고~개~로~넘~어 간다. (모두 의자에 앉아서 발끝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참고로, 내가 있는 일본 요양원은 한국에서 오신 할머니들도 계시고, 재일교포 할머니들도 계신다. 이젠 일본에서 재일교포 1세는 거의 안 계시는 것 간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일제강점기 때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본으로 재일교포들이 이주하신 시기로부터 거의 100년이 되어가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요양원에 입소하실 정도의 연세를 가지신 분들은 보통 2~3세 어르신들이시다.
내가 아리랑을 선창 하자, 한국인 할머니들 그리고 재일교포 할머니들의 얼굴이 편안해지시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에서 한국인 할머니와 재일교포 할머니들을 굳이 따로 지칭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 같은 한국인 할머니들이시만, 한국인 할머니라고 표현하는 분들은 한국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생활하신 후에 1970~1980년대에 일본에 새로운 삶을 찾아오신 분이시다.
그리고 내가 재일교포 할머니라고 지칭하시는 분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다. 이 분들은 평생 모국인 한국에 1~2회만 가보신 분들이 많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하신 분들도 있다. 당신들의 부모님이 한국어를 사용해서 익숙하기는 하시나, 본인들은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머니의 나라, 그리고 나의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아리랑을 부르며 체조를 시작하자, 천천히 따라 부르시던 할머니들은 이내 편안한 얼굴로 큰소리로 아리랑을 부르셨다. 어떤 분은 괜스레 눈가가 촉촉하게 변하시기도 하셨다. 정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아리랑을 부르시는 모습이셨다.
아리랑을 몇 차례 반복해서 함께 부르며 체조를 했다. 얼마 지나자 일본인과 중국인 할머니들까지 아리랑을 흥얼거리시며 따라 부르시기 시작했다. 내 예상은 잘 맞아떨어진 듯 보였다. 쉬운 선율이라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 할머니들도 따라 부르시기 어렵지 않은 노래였다.
아리랑의 선율은 이곳 일본 요양원의 모든 할머니들의 마음 한편을 울린 듯 보였다. 열심히 아리랑을 따라 부르시며 즐거워하셨다. 한국할머니들은 왠지 모를 차분함과 아련한 마음으로, 외국 할머니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아리랑을 부르시는 듯 보였다.
이날 이후에도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할머니들이 체조시간이 아닌 때에도 아리랑을 흥얼거리시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의 노래 아리랑은 이런 힘과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곳 요양원에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시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시다. 중증 치매 증상은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케어가 힘들다. 그런 분들은 다른 전문적인 요양원에서 생활하신다.
일본인 마사코 할머니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시는 할머니다. 2년 전에 요양원에 입소하셨고, 2년 동안 치매 증상은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은 그런 상태로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계시는 분이다.
어느 날 오후, 마사코 할머니가 거실을 돌아다니시면서 아리랑 노래를 부르시는 것이 아닌가.
마사코 할머니는 내가 가르쳐 드린 리듬과 속도가 아닌, 댄스곡과 같은 빠른 리듬으로 아리랑을 흥얼거리시며 거실 이곳저곳을 즐겁게 돌아다니시고 계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욧쑈! 욧쑈! 와~하하하!"
하시면서 아리랑을 굉장히 빠르게 부르시길래,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마사코 할머니, 이 노래는 라틴댄스가 아니에요. 츠라이(괴롭고 슬픈 마음)한 느낌으로 불러야 해요. 예전에 할머니의 나라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적이 있어요. 그때 많이 부른 노래예요. 얼마나 서러웠겠어요. 그때 나라를 빼앗긴 한국인의 서러움을 할머니도 공감한다고 생각하시면서 천천히 불러보세요"
라고 할머니에게 아리랑 노래의 슬픈 역사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마사코 할머니는 내 말을 정말 귓등으로 들으시며 갑자기 흥분하셨다. 치매 초기 증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본인의 감정에 굉장히 솔직하며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는 분들도 있다.
마사코 할머니는 갑자기 내게 언성을 높이며 말씀하셨다. 일본어 오사카 사투리로 내게 흥분하며 다그치셨다.
“나니 윳또옹‼️와따시모 츠라이데~토시 톳따라 이찌방 츠라이요~”
(뭐라카노‼️내도 괴롭데이~ 나이 들면 그게 제일 서럽데이~”)
'아, 그... 그렇군요. 스... 스미마셍~!'

뭐가 어쨌든 대한독립만세다. 그리고 아리랑은 국적을 초월하여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