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키조쿠?>
일본 요양원에서 만난 카나모리 할머니는 98세 시며 재일교포이다. 언젠가 카나모리 할머니는 생후 2개월에 일본으로 오셨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카나모리 할머니는 내게 본인의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다. 쉽게 말해서 나와 친했다는 이야기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보통 재일교포 어르신들은 어두운 분위기가 약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본인이 재일교포 1세대라면 일본 정착시절에 수많은 차별을 겪었을 것이다. 2세대 역시 어린 시절에 그리고 사회에 진출한 이후 일본사회 혹은 일본인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차별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요양원에서 만났던 많은 재일교포 어르신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가족들이 살아갈 집을 구할 수도 없었고, 일반적인 회사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일본의 마을에서도 섞이지 못하여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재일교포들끼리 모여 살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내가 느끼기에는 일본사회에서는 내가 전혀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외국인으로서 건, 한국인으로서 건 그런 느낌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아마도 세월이 변하면서 일본 사회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만난 카나모리 할머니는 다른 재일교포 할머니들과 다르게 매우 밝은 분위기를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다른 재일교포 어르신들과 다르게 농담도 많이 하셨다. 본인의 감정에도 솔직하셨으며,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언제나 명확하게 표현하셨다.
할머니는 일본이름인 카나모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셨지만, 나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에게 본인은 항상 한국인이라며 자기소개했다. 할머니는 새로운 어르신이 입소하시면 항상 먼저 다가가서 본인은 한국인이라며 소개를 먼저 했다. 한국인이라는 뚜렷한 정체성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언젠가 할머니께 일본사람들에게 차별받고 사셔서 많이 힘드셨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면서 대답했다.
"글쎄? 난 차별 같은 거 받았던 기억이 없는데? 그냥 일본사람들하고 똑같이 살았어"
할머니가 사셨던 일본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할머니의 가족만이 한국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마을 사람들과 평범하고 사이좋게 잘 지냈다고 하셨다. 다른 재일교포 할머니들이 겪었던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셨다.
아마도 일반적인 도시가 아닌 순박한 시골 마을이라 그런 것인가 라는 생각을 혼자 했다. 재일교포들은 모두 차별과 설움의 세월을 겪어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닌 사람도 있구나 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 할머니는 다른 재일교포 어르신과 분위기가 다르고, 성격도 밝으셨다.
어느 날 내가 할머니께 무심코 물었다.
“카나모리 할머니? 혹시 한국이름은 없어요?”
할머니는 내 질문에 본인의 한국이름은 '최ㅇㅇ'이라고 하시며, 본인의 집안은 한국에서 대대로 양반 집안이었던 것 같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셨다.
“최 씨는 한국에서 양반 집안이래. 양반이 일본어로 키조쿠(=귀족)인가? 너 키조쿠가 뭔지 알아?”
“그래요? 알죠. 키조쿠(귀족) 집안이시네요. 와~ 멋지시네요”
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은 과장된 모습을 보이며) 환호하는 모습을 일부러 보여드렸다. 그러나 이 할머니의 연세가 연세인지라, 본인이 했던 말은 금방 잊어버리셨다. 노화로 인한 단기기억 장애다.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같은 말을 수백 번 하셨다.
"나는 한국에서 귀족 집안이었어. 한국어로 양반, 일본어로 키조쿠. 너 키조쿠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
수없이 반복되는 할머니의 양반 이야기로 인해, 내 귀에는 결국 딱지가 생겼다.

어느 날 또 같은 말을 꺼내시는 할머니.
“ 너 키조쿠가 뭔지 알아?”
내가 대답했다.
“잘~알죠! 키조쿠! 키조쿠! 토리키조쿠!!”

“응? 토리키조쿠?”
(참고로, ‘토리키조쿠’는, 일본 닭꼬치 체인점입니다)
카나모리 할머니는 보통 일본어를 사용하셨지만, 한국어를 조금 하시긴 하신다. 그러나 너무 조금만 하시기 때문에 한국어만 사용하면서 대화하기는 조금 어려운 수준이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 계시는 할머니께 나는 아침식사를 쟁반에 담아 갖다 드렸다. 할머니는 초고령이시기 때문에 거동이 많이 불편하시다. 그래서 아침에는 침대 위에서 테이블을 이용하여 식사를 하신다. 아침식사가 올려져 있는 쟁반을 들고 가서 할머니 앞에 내려 놓으며 한국어로 한마디 건넸다.
"할머니 식사 잡수세요~"
나의 한국어를 들으신 할머니는 나를 잠시 바라보시더니, 옛날 생각이 난다고 하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못하시기 때문에 이야기는 일본어로 하셨다.
"난 결혼하기 전까지 일본말만 하면서 살다가, 한국남편을 만나 오사카 시댁에서 살았어. 한국말을 남편에게 조금씩 배워서 말했었어. 시아버지에게 '아버님 친치 잡수세요'라고 열심히 말하면, 시아버지는 열심히 한국어를 하려고 하는 나를 너무 예뻐하셨지"
"친치가 아니라 진지겠죠"
"응, 진지"
"하루는 '오야스미나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한국어 표현을 남편에게 배웠어. 그리고 열심히 하루 종일 연습을 했어. 그날 밤 시아버지가 주무시려고 하실 때, 열심히 연습한 한국어를 천천히 말했어. 그러자 시아버지는 갑자기 큰소리로 웃으면서, '그래 새아가 너도 잘 자라'라고 하셨지. 그때는 왜 시아버지가 웃는지 이해를 못 했었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 호호호"
"시아버지께 한국말로 뭐라고 하셨는데요?"
"잘 주구십시오~"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