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인 유학생 가족
‘방글라데시가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후진국도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혀 발전의 희망이 없는 나라가 방글라데시였다. 2000년대 이후 공업화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이웃나라를 뒤쫓고 있다고 하지만 임금 수준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중 최저다. 2022년 이후 방글라데시는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외환보유고 감소와 심각한 인플레이션, 글로벌 경제 부진으로 인한 수출부진 때문에 경제성장률도 이전과 달리 지지부진한 상황이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출처: 나무위키]
2022년 방글라데시인 유학생 가족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엄마와 아이가 병원에 온 것이다. 풀이 죽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 방글라데시가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도 몰랐고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가진 나라인지 관심도 없었다.
방글라데시인 유학생은 동반비자로 입국한 배우자와 어린아이까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매달 나오는 연구비로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큰 기대를 안고 왔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그렇다고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연구비 지원으로 월세와 식비를 지출하면 남는 돈은 없었고, 오히려 부족했다. 유학생과 동반가족은 소득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낯선 환경과 열악한 생활 탓인지 자주 아팠고, 입원이 반복될 때마다 부모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그럼에도 꿋꿋이 버텨내는 모습에서, 이 가족의 절실함을 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유학생 가족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연구비 지원이 줄고, 둘째 아이까지 태어나면서 오히려 더 막막해졌다.
건강보험료가 체납되어 자격을 잃은 적도 있었고, 밀린 공과금으로 단전, 단수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주민에게 사회보장제도는 닿지 않았다. 아무리 절박해도 제도적 울타리 밖에 있는 것이다. 아이의 엄마는 똑똑했고 살기위해 사회복지팀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어디에서도 도움받을 수 없었고 그나마 병원에 다니며 얼굴을 익혀 두었던 우리에게, 손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처지는 충분히 이해했지만, 병원 내 사회복지팀의 역할만으로는 생계를 모두 책임질 수 없었다. 더구나 제도의 빈틈 속에 놓여 있었기에 도울 방법은 더 제한적이었다.
절박한 사정을 안 이상 포기할 수 없었고 여러 사회복지기관을 연결하고, 모금을 통해 생계비를 마련해 지원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 어느새 3년이 넘었다.
둘째 아이를 위해 분유를 미리 준비해 두기도 했다. 이따금 들어오는 후원 물품을 모아뒀고, 의류와 생필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연락이 뜸해질 무렵,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미처 연락할 틈이 없었지만, 그동안의 도움을 잊지 않고 감사 인사를 전해온 것이다. 도움받았던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메시지 속 한 문장, 한 문장은 그야말로 찬양에 가까웠다. 과장된 표현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들이 한국에서 남긴 시간은 분명 쉽지 않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사회복지팀은 작은 의지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소식이 내게는 마치 오래 알던 친구의 기쁜 소식처럼 다가왔다. 한국에서의 버팀이 결국 미국으로의 새로운 시작을 열어 주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처음 만났을 때 고작 1살이었던 아이는 4살이 되었다. 이제 막 어색함이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한국에서 유학생 가족의 삶은 너무도 힘겨웠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고, 결국 더 큰 기회를 만나 새로운 기대를 하고 살게 되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그리고 미국에서의 삶은 조금 더 평안하고 넉넉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아래는 유학생이 보내온 메시지다.
Dear Sir,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저희 가족은 지난 3년 반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OOO병원 사회복지팀의 따뜻한 배려와 끊임없는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복지사님께서 저희 가족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친절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복지사님은 저희 가족을 마치 가족처럼 돌봐주시며 많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 제 아내의 임신과 제왕절개 수술, 딸아이의 폐렴으로 인한 여섯 번의 입원, 아들의 출산 직후 입원 등 여러 의료비를 무료로 처리해 주셨습니다.
- 고가의 검사 및 약값까지 모두 지원해 주셔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매달 생활비로 50만 원씩, 건강보험료와 공과금까지도 지원해 주셨습니다.
- 지속적으로 식료품, 옷, 분유 등 필요한 물품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도움 덕분에 저희는 낯선 타국에서도 건강하게,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복지사님의 사랑과 지원 덕분에 한국에서도 외롭지 않았고, 항상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저희 가족은 현재 **미국 OOO대학교(OOO University)**에서 저의 전액 장학금 박사과정 진학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사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출국 전 바쁜 일정과 시간 제약으로 인해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한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가능하시다면, 복지사님의 공식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앞으로도 언제든지 연락을 드릴 수 있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소식을 전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훗날 제가 더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면, 저희가 받았던 사랑과 지원을 다른 분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복지팀을 통해 기부나 후원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가족을 위해 따뜻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복지사님의 은혜를 마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OOOOO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