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미래다"
암을 영어로 ’cancer'라고 하는 것은 암세포가 주위 조직으로 퍼지는 모습이 게(crab)가 다리를 벌린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16세기에 그리스어로 ‘게’를 뜻하는 ‘카르키노스(karcinos)’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혹은 집게발로 잡은 모습과 유사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암은 세포의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나 비정상적으로 세포가 변하여 불완전하게 성숙하고, 과다하게 증식하는 것을 말하며 주위 조직 및 장기에 침입하고 다른 장기로 전이될 수도 있다.
고령화 사회에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통계적으로도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정밀 의료, 신약 개발, AI 진단 등 과거와 다르게 ‘암’이 ‘죽음’과 직결된다고 할 수 없다. 진단 시기나 전이 여부 등에 따라 죽음과 직결되는 예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각종 보험 광고와 뉴스를 보면 암이 고령자의 전유물인 듯 느껴지기도 하지만 유전적 요인, 생활 습관,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암은 모든 연령대, 모든 부위에서 발병할 수 있다. 청년도 암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국가암검진 수검 대상에도 제외되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몇 해 전 ‘청년 암 환자를 위하여’라는 어느 의사의 ‘브런치’ 글을 읽었다. 소아암에는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지만, 청년 암 환자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암 환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굳이 통계를 찾아보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지만 유독 20대에서 암 발병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몰랐다. 인구 10만 명당 발병률을 나타내는 조발생률은 60대부터 압도적이라 비교하는 데 의미가 없지만 노인의 암 발병률에 비해 20대 발병률 증가 폭은 독보적이다.
암을 포함한 모든 환자는 어떤 형태이든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지만 청년 암 환자는 학업 단절, 실직, 구직 제한 등 경력 단절로 인해 사회복귀에 어려움을 겪으며 치료 후에도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한다. 청년 실업자 28만 명 시대에 치료를 위한 경력의 공백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청년 암 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기존 정책이나 민간사업에 대해 찾아봤지만, 비주류에 속하는 청년 암 환자를 위한 사업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제도적 지지 체계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2024년 기준으로 내가 근무하는 종합병원에 약 60명의 청년(20~30대) 암 환자가 내원한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병원 내 사회복지팀에서 구직을 도와줄 수도 없고 주거를 해결해 줄 수도 없다. 그나마 도와줄 수 있는 병원비는 생각보다 많이 발생하지 않고 개인 보험에 가입되어 있기도 해서 크게 의미가 없다.
(아마 수도권 병원에는 더 많은 청년 암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을 것이다.)
입원 치료를 받는 청년 암 환자를 스크리닝 했고 지원 기준을 충족하면 진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원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정말 어려울까?’라는 의문도 있었지만, 실제 상담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가 상태이거나 1년 이상 질병 휴직자도 있었고 불과 몇 개월 전 개인회생 후 신용회복을 한 청년도 있었다. 20대에 아이를 양육하거나 암이 재발한 청년도 있었다. 부모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는 청년도 있지만,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사례도 있었다.
그동안 알지 못했지만, 누구 하나 어렵지 않은 청년이 없었다. 병가나 휴직을 무기한 사용할 수 없어 결국은 실직하게 될 것이고 소득의 단절로 다시 신용불량이 될 수도 있다. 표현은 안 했지만, 치료 후 사회복귀의 어려움을 몸소 체감하고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노인 암 환자와 다르게 청년 암 환자에게 심각한 우울함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지켜보는 내가 우울해지는 기분이다.
‘청년이 미래’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청년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청년들이 바라는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실질적인 해결책보다 위로하기 급급한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고 있다. 장기적인 대책도 없다. 청년이기 때문에, 젊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스스로 이겨내라고 다그치기만 한다.
‘청년이 미래’라는 허울뿐인 말보다 이 시대의 청년이 살아가는 삶을 이해하고 청년들이 바라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이 원하는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