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환자

음주로 수술이 미뤄지는 환자

by 여행자

환자는 몇 주 전 교도소에서 출소했고 이전에도 여러 번 수감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90대 노모가 있으나 생사를 모르고 갈등으로 형제들과 관계가 단절되었다. 수감 사유가 어떻든 가정사가 어떻든 지금은 치료 필요 여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긴급생계비지원은 항상 부족하고 월세를 내고 나면 생계비의 절반이 사라진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병원비를 지급할 능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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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미 탈장으로 진단을 받았고 증상이 악화하여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입원 계획을 하고 병원비는 사회복지팀에서 지원을 검토하기로 했다.


일주일 치 약을 처방받고 입원일만 기다리면 되는 환자는 3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응급실 진료 기록에는 빠짐없이 ‘음주’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증상이 호전되자 치료가 진행 중임에도 강력하게 퇴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장은 치료비를 낼 능력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무상으로 진료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발생한 응급실 치료비는 지원할 수 없음을 안내했고 수납 창구에서는 분할납부를 안내했다. 병원비가 수십만 원씩 발생하는 것도 아니지만 환자는 행정복지센터와 지역 사회복지기관 등에 도움을 요청했고 사실 확인을 위해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다.


환자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어제도 내가 응급실에 갔는데 왜 자꾸만 병원비를 내라는 거요?!”


“최근 응급실 치료를 받으신 건 수술계획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낼 돈이 없는데 어떻게 내라는 거냐고?!”


“그래서 저희가 천천히 나눠서라도 내시라고 말씀드렸고 치료받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치료는 받고 있는데 결국 내가 병원비를 내야 된다는 거 아니오?!”


“....”


말문이 막힌다. 아파서 병원에 왔고 낼 돈이 없는데 어떻게 병원비를 내냐는 원론적인 이야기다. 치료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병원비가 발생했으니 차차 내라는 안내까지 했지만, 환자는 납부 의지가 전혀 없다. 더욱이 수술 예정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음주를 지속했다. 수술 한들 관리는 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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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일은 미뤄지고 통증도 심하니 병원에 가는 거 아니오!”


“입원 일이 왜 미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거야 술 마셔서 그렇지만 통증이 심한 걸 어쩌란 말이오!”


음주가 문제되고 있다는 것은 환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지만 폭언과 욕설이 이어져 상담이 어렵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몇 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여전히 똑같은 입장이고 폭언과 욕설을 한다. 유사 사례라고 볼 수도 없는 지인이 간암으로 사망한 사례까지 들먹이며 “죽으면 당신이 책임지시오!”라고 말한다. 분에 안 풀리는지 한참을 더 혼잣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속상하다며 또 술을 드실지도 모르겠다.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날 의지도 없는 환자에게 조금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절박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방법이 틀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는 두 딸에게 간이식을 받은 환자가 또 음주하며 건강을 관리하지 않는 모습이 나온다.

이익준 : “또 술 드셨어요? 자식이 간 기증하는 거 그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익준 : “아니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기증할 사람이 없어서 돌아가시는데….”

이익준 : “전 앞으로 환자분 수술, 진료 못 합니다. 더 오지 마세요.”


도와주지 않는 병원을 비난할 수도 있다. 돈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라고 한다면 당연히 돈보다 생명이 먼저인 것은 의심할 여지없다. 의료법에도 환자의 지급 능력은 진료를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듯 내가 근무하는 병원도 지급 능력이 없다고 환자를 거부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사회복지팀에 의뢰하고 환자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만 병원은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매년 발생하는 엄청난 금액의 대손 처리비용을 보며 고의나 악의적으로 병원비를 내지 않는 경우 병원에서도 고민하지 않을까?


도움이 필요한 환자는 너무 많다. 자원이 부족해 도움받지 못하는 환자도 많다. 사회복지사라고 해서 당연히 도울 수도 없다. 사회복지사로서 환자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지만 모두가 내 맘 같지도 않고 환자의 욕구도 다양하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며 입원 계획을 위해 검사받으러 왔다고 한다. 이미 입원 일정은 일주일 이상 미뤄졌고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받지 않아도 될 검사도 받는다. 여전히 병원비는 없지만 어떻게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검사비 지원을 결정했다. 과연 이런 식의 도움이 어려움에 부닥쳐있는 다른 환자들의 권리를 뺏는 것은 아닐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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