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의 틈 사이에 있는 환자
퇴근 무렵 자신감 없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 등산용 스틱을 짚고 보기에도 불편한 걸음으로 사회복지팀을 방문했다. 문 앞에서 사무실로 들어오는 짧은 거리조차 힘겨워 보인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손에 움켜쥔 검사 예약지를 쉽게 내보이지 못하고 망설이는 환자의 표정에 도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보이지 않았다. 본론이 아니라 서론부터 입을 떼는 환자는 큰 기대감 없이 방문했을 것이다. 도움에 대한 기대를 하고 오는 환자는 대부분 본론부터 말하며 욕구를 분명히 표현하기 마련이다.
일주일 전 무릎을 다치고부터 통증이 악화하고 걷기도 힘들어졌다고 한다. 정형외과 진료를 받았고 MRI 검사 처방이 내려졌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환자는 검사비가 부담돼 행정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래 진료비나 검사비는 도움 줄 수 없고 그나마 2개월 뒤 별도의 후원금 정도는 지급할 수도 있으니 다시 방문해 보라는 답변을 받았다. 확답은 아니고 도움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한 통증을 2개월이나 버틸 수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회복지팀을 방문한 것이다. 앉아 있기조차 힘들어 서서 상담하는 중에도 중년 남성은 몇 번이나 눈물을 글썽인다. 무혈성괴사로 수술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 더 두려웠고 10년 전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 수술을 받기도 했다.
검사비가 부담된다는 환자의 말에 의사는 비교적 비용이 낮은 MRI 처방을 냈음에도 부담되는 것은 여전하다. 단돈 1만 원을 마련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검사비가 1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미혼으로 80대 노모를 부양하고 있다는 환자는 다른 형제의 도움도 없이 기초생활 수급비로 생활하고 있다. 그나마 1년 전까지는 노모도 수급자로 보호받아 생계비 지원으로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했지만, 중국에 살던 동생이 한국에 돌아오며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을 초과해 노모는 수급자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동생이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수급 자격에 기준이 있기에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어쩔 수 없다지만 적어도 수급 자격에서 탈락한 가정에 2~3개월 정도는 모니터링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노모가 수급 자격에서 탈락한 후 공과금부터 연체되기 시작했고 이리저리 돈을 빌려 공과금과 병원비를 마련했다. 한번 빌려 쓰게 된 돈은 매달 생계비가 지급되는 날이면 갚기에 바빴다. 모을 수도 없지만 모이지 않는 생계비는 매달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너무 힘겨워 술을 진탕 마시고 동생에게 연락해 쓴소리 했다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동생은 중국 파견이 종료되고 한국에 돌아오면서 소득이 줄었다고 오히려 어려움을 호소했다.
누구 하나 여유가 있다는 사람도 찾기 어렵지만 생존의 위기까지 느낄 정도의 어려움일까? 최소한의 도리를 기대했지만 반대로 어렵다는 하소연만 들은 채 형제의 도움은 포기해야 했다. 지금도 2~3개월 공과금이 밀리는 정도로 유지하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생존에 대한 불안감에 우울함만 가득했고 자주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 자살 시도를 해본 경험도 있고 노모 또한 죽는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있다. 병원 한번 가는 것조차 큰마음을 먹어야 하고 후련하게 증상을 말하기보다 혹시 비급여 검사라도 받게 될까 의사 앞에 움츠러든다.
행정복지센터에서는 도움 줄 수 없다는 확답이 아니라 민간 사회복지 기관에라도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사회복지 공무원의 노고는 익히 알고 있고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도 넘치니 일일이 대처하기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맞춤형 복지'라는 슬로건을 걸고 종사하는 직종이라면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맞춤형 복지'라는 말이 제도 밖의 지원까지 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좀 더 세밀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 글로 인해 사회복지 공무원에게 역풍을 맞을지 모르겠지만 10년 이상 의료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사회복지 공무원의 의지에 따라 도움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내년(2026년 3월 27일)이면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이 법은 지자체장에게 지역 주민의 돌봄에 대한 포괄적인 책임을 부여하고 지자체가 주도하는 통합 돌봄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얼마 전 다녀온 ‘의료·요양·돌봄 통합 지원 정책 포럼’에서 느낀 점은 시행일이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체계화된 조직도 인력배치도 준비되지 않았다. 2025년 기준 100개의 시군구에서 의료·요양·돌봄 통합 지원 시범 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기존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통합사례 관리 사업과 장기 요양 서비스의 기능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또한 통합 지원에 관한 업무 중 일부를 전문 기관이나 통합 지원 관련기관 등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은 지자체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어영부영하다 적당한 민간기관에 위탁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살던 곳에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돌봄 지원을 통합적으로 연계하여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오히려 내가 살던 곳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
병원비는 걱정하지 말고, 검사부터 해보자고 말하며 환자를 돌려보냈지만 매년 발생하는 일가족 사망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결말이 머리를 스친다.